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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누구를 위한 제주 제2공항인가

등록 2021-03-27 08:14수정 2021-03-27 09:30

[토요판] 커버스토리
주민 상처 깊어가는 제2공항

‘결정에 반영’ 협의한 여론조사
제2공항 반대 의견 더 높은데도
국토부는 제주도에 공 넘기고
원희룡 지사는 ‘강행’ 뜻 확고

찬성-반대 갈린 친구·이웃끼리
성산 지역 내 갈등 갈수록 심해져
전체 도민과 피해주민 의사 존중해
하루빨리 사람 위한 ‘결단’ 내려야
제주 제2공항이 다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정책 결정에 반영하기로 한 제주도민 여론조사 결과는 반대가 높았지만, 국토교통부는 판단을 미루고 있고 제주특별자치도는 예정대로 진행하기를 요구했다. 정부는 책임을 미루고 제주도는 민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틈바구니, 지난 15~18일 만난 제주도민들은 찬성이냐 반대냐를 떠나 “대통령의 결단”을 원하고 있었다. 찬반 양쪽 주민들 사이 깊어가는 갈등의 골은 ‘누구를 위해 제2공항이 필요한가’를 묻고 있었다. 한편, <한겨레>와 인터뷰에 나선 원희룡 제주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기존 모든 평가에서 꼴찌였던 가덕도 공항을 어떤 절차도 안 밟고는 적극 추진하라고 공개적으로 지시하는 순간, 제2공항은 정책 문제가 아니게 됐다”며 문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렸다. 사진은 지난 17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대수산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제2공항 예정 부지 일대다. 제주/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제주 제2공항이 다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정책 결정에 반영하기로 한 제주도민 여론조사 결과는 반대가 높았지만, 국토교통부는 판단을 미루고 있고 제주특별자치도는 예정대로 진행하기를 요구했다. 정부는 책임을 미루고 제주도는 민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틈바구니, 지난 15~18일 만난 제주도민들은 찬성이냐 반대냐를 떠나 “대통령의 결단”을 원하고 있었다. 찬반 양쪽 주민들 사이 깊어가는 갈등의 골은 ‘누구를 위해 제2공항이 필요한가’를 묻고 있었다. 한편, <한겨레>와 인터뷰에 나선 원희룡 제주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기존 모든 평가에서 꼴찌였던 가덕도 공항을 어떤 절차도 안 밟고는 적극 추진하라고 공개적으로 지시하는 순간, 제2공항은 정책 문제가 아니게 됐다”며 문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렸다. 사진은 지난 17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대수산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제2공항 예정 부지 일대다. 제주/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 ‘해석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반대 의견이 조금 더 높게 나온, 제주 제2공항 추진 여부를 둘러싼 제주도민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서다. 찬성 쪽과 반대 쪽 모두 절박한 이유가 있다. 그 사이, 이렇게 계속 제주 관광객을 늘리는 방향이 지속가능한가라는 문제제기도 거세다. 제주도민들과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나 이와 관련한 생각을 들어봤다.

“‘토론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이미 제주도민의 최종 의사가 확인된 만큼 그 뜻을 받드는 것이 저와 정의당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제주도민의 민의를 존중하고 실현에 앞장서야 할 원희룡 제주지사가 민의를 거스르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제주 연동 제주도청 앞,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제주 제2공항 백지화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시작했다. “심상정 꺼져라! 정의당 꺼져라!” “제주도 뭘 안다고 여기 와서 떠드냐!” 4차선 도로 건너 제2공항 찬성 단체 회원 두세명이 ‘생목’으로 낸 소리가, 마이크와 앰프를 거쳐 증폭된 심 의원의 목소리를 이겼다. 기자회견 내내, 길 건너 자리잡은 제2공항 찬성 단체 한 무리 사이에선 야유와 고성이 쏟아졌다. 아예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쪽으로 건너와 위협을 하는 이도 눈에 띄었다.

“제2공항 찬성 단체가 두 곳인데, (다른 한 곳과 달리) 저긴 제주나 성산 사람들이 아니라 다 외지에서 온 부동산업자들이에요.”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한 성산읍 주민이 설명했다. 10여개에 그쳤던 성산 지역 부동산중개소는 제2공항 계획 이후 70여개로 늘었다고 한다. 심상정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4년 월평균 255.5건이던 성산 지역 토지 거래량은 2015년 557.1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제2공항 입지를 발표한 2015년 11월 거래량은 1278건에 이르렀다. 땅을 산 사람 가운데 외지인 비율은 2014년 월평균 60.1%에서 2015년 64.4%로 늘었는데, 그해 11월에만 69.9%였다.

15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제2공항 백지화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 시각, 길 건너에서 찬성 단체 회원들이 ‘맞불집회’를 열고 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5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제2공항 백지화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 시각, 길 건너에서 찬성 단체 회원들이 ‘맞불집회’를 열고 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여론조사 ‘해석 전쟁’

제주도가 다시 갈등과 혼란의 폭풍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달 18일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제주도민 찬반 여론조사 결과 발표 이후부터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1월 제주 성산 지역에 제2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제주의 여론은 둘로 나뉘었다. 한달 뒤 <한국방송(KBS) 제주방송총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71.1%로 반대(28.9%)를 압도했지만, ‘의견의 강도’는 반대가 훨씬 높았다. 제2공항 수용 예정지 5개 마을 가운데 신산리, 수산리, 난산리 3개 마을 주민들이 ‘제주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원회’(반대대책위)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사전타당성조사, 예비타당성조사가 ‘날림’으로 이뤄졌다고 공론화하고, 환경 문제와 오버투어리즘(수용 정도를 넘어선 과잉 관광) 문제를 제기했다. 제주도청 앞에, 광화문에 천막을 쳤고, 단식농성(난산리 주민 김경배씨 42일 단식)도 불사했다.

민심이 움직였다. 2019년 9월 <제주 문화방송> 등 제주 언론사 4곳이 한 여론조사에서 찬성(47.9%)과 반대(45.4%) 의견이 팽팽히 맞섰고, 지난해 9월 <제주 문화방송> 조사에선 찬성이 32.2%로 역전당했다(반대 17.5%, 현 공항 확충 47%).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찬성 여론이 미끄럼틀을 타다시피 한 상황에서 지난 2월 실시한 여론조사는 이전까지와는 ‘급’이 다르다. 제2공항 추진 여부를 두고 “국토교통부는 향후 제주특별자치도가 합리적, 객관적 절차에 의해 도민 의견을 수렴하여 제출할 경우 이를 정책 결정에 충실히 반영, 존중한다”는 2019년 2월 당정협의 결과에 따른 조사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와 도의회, 시민사회가 오랜 시간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제주도기자협회 소속 9개 언론사가 주관하고, 여론조사 전문기관 2곳이 제주도민 각 2천명씩을 상대로 실시하는 조사에서 ‘찬성이냐, 반대냐’를 묻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엠브레인퍼블릭 조사에선 반대가 절반을 넘었고(반대 51.1%, 찬성 43.8%), 한국갤럽 조사에선 반대 47.0%, 찬성 44.1%로 오차범위(신뢰수준 95%에서 ±2.2%p) 안에서 반대가 조금 높았다.

‘도민 의견을 정책 결정에 충실히 반영하겠다’던 국토부는 이런 결과를 받아든 뒤 “관련한 제주도의 의견을 달라”며 제주도로 공을 넘겼다. 이에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10일 “예정지인 성산 지역 주민들은 제2공항 건설에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지역 주민 수용성은 확보된 것으로 이해하며, 적극 추진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며 제2공항 추진 뜻을 밝혔다. 이어 “(제2공항을) 죽이든 살리든 대통령이 결정하라고 하라”(17일 제주도의회 긴급현안질의), “국민과의 약속이자 제주도민과의 약속인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드시 정상적으로 추진해야 한다”(19일 정세균 국무총리 면담)며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연일 압박하고 나섰다.

원 지사가 ‘적극 추진’의 근거로 든 것은 제주도민 전체가 아니라 성산 지역 주민 500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다. 이는 원 지사의 요구로, 지난달 도민 여론조사와 동시에 별도로 진행한 것이다. 엠브레인 퍼블릭 조사에선 반대 33.0%, 찬성 65.6%, 한국갤럽 조사에선 반대 31.4%, 찬성 64.9%로 두 조사 모두 찬성이 두 배가량 많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성산읍 14개 마을 중에 직접 피해를 보는 3개 마을 인구는 성산읍 전체의 14%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수혜지로 꼽히기 때문이다.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박찬식 제주 제2공항 강행 저지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박찬식 제주 제2공항 강행 저지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박찬식 제주 제2공항 강행 저지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은 “갈등을 계속할 수는 없어서 피해 지역 주민들이 ‘제주도민이 찬성하면 따르겠다’고 대승적으로 양보해 이뤄진 여론조사다. 그런데 3개 마을도 아니고, 원희룡씨가(반대 단체들은 10일 원 지사가 제2공항 추진 뜻을 밝힌 이후 “도지사로 인정할 수 없다”며 “원희룡씨”라 부른다) 요구해서 넣은 성산읍의 조사 결과로 주민 수용성이 확보됐다고 하는 건 피눈물 흘린 피해 마을 주민을 농락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지난 6년 동안 도민들끼리 수많은 토론을 거쳐 제주 미래비전을 결정했고, 이제 그에 따라 이 문제를 매듭짓는 과정이 시작될 수 있었는데 원희룡씨가 없는 갈등, 해결된 갈등을 다시 만들어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관계와 지속가능한 제주

부동산이 아니어도, 따지고 보면 제2공항 찬성·반대의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다. 기본계획상 500만㎡(152만평) 규모의 제2공항 부지에 직접 수용되지 않는 성산읍 9개 마을은 공항이 들어서면 관광객이 늘어날 것을 기대하는 곳이다. 예정지에 포함된 5개 마을 가운데서도 고성리는 수용되는 땅이 많지 않고, 섭지코지 같은 관광지와 숙박시설·음식점 등이 밀집해 있어 ‘제2공항 낙수효과’를 예상한다. 온평리는 공항 예정 부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70%가량을 차지하는데, 터미널 등 사람이 드나드는 부대시설이 들어서기로 해 마찬가지로 개발이익이 클 것으로 내다본다.

고성리에서 16년째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오병관 제2공항 성산읍 추진위원장이 답답함을 토로했다. “제주에서 성산이 제일 낙후돼 있다. 이게 성산이 공항 입지로 선정되는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 지역에 젊은 사람이 없다. 내가 올해 74살인데,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나를 (추진위원장으로) 앞세웠겠나. 지금은 코로나로 사람이 안 들어와서 죽게 생겼는데, 제주는 외지인이 들어와야 된다. 제주 균형발전과 성산의 미래를 볼 때 공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제2공항이 생기면 제주시 도심에 몰려있는 교통, 쓰레기, 오폐수, 소음 문제도 (성산으로) 분산되면서 제주시가 쾌적해지고, 제2공항은 만들 때부터 인프라를 제대로 갖출 것이므로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추진위 부위원장인 강정민 성산읍상가번영회장이 거들었다. “지금 숙박시설 가동률이 절반밖에 안된다. 민박집이고 게스트하우스고 웬만한 덴 다 문을 닫았다. 아직도 관광객이 부족하다는 거다. (성산읍 인근, 제주 동쪽) 구좌, 표선, 남원 사람들 일주일에 한두 번 제주시를 안 가면 생활이 안 된다. 병원도, 학교도, 학원도 모든 인프라가 다 그렇게 돼 있다. 공항이 안 생기면 이건 안 바뀐다.”

오병관 제2공항 성산읍 추진위원장. 17일 만난 그는 “성산의 미래를 볼 때 제2공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오병관 제2공항 성산읍 추진위원장. 17일 만난 그는 “성산의 미래를 볼 때 제2공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제2공항 반대 여론의 중심지인 신산·수산·난산리는 이와는 다른 이해관계다. 이들 3개 마을의 수용 예정지엔 활주로가 들어선다. 보상을 받고 땅을 팔고 나가려 해도 규모가 크지 않다. 그 대신 소음, 분진 피해가 예상되고 농사에도 제한을 받게 된다. 공항 주변 3㎞ 이내에선 비행기와의 충돌 우려 때문에 새가 날아들 만한 농작물을 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제2공항이 들어선다면 주민의 90% 이상이 농사를 짓는 이 마을들 밭에 있는 귤, 한라봉, 천혜향, 무, 양채류를 다른 작물로 바꾸거나 농사를 포기해야 한다. 공항에 가로막혀 고립되다시피 하는 난산리는 교통도 지금보다 더 불편해진다.

이달 초까지 수산1리 청년회장을 지낸 오창현(46)씨의 반대 활동도 거기서 출발했다. 오씨는 대학과 직장을 제주시에서 다니다 10년 전 고향마을로 돌아와 부모님이 하시던 한라봉, 귤 등의 농사를 짓고 있다. 2015년 11월9일, 정부의 제2공항 계획 발표를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우리 동네 근처인 것 같은데 거기가 어디지? 왜? 갑자기?” 계획을 홍보하는 관공서의 펼침막이 곳곳에 나붙기 시작했다. “뭐지? 어떡하지? 얼마 전에 하우스 만든 곳 바로 앞이 예정지라는데 그럼 저 하우스는 어떻게 되는 거지?”

오씨처럼 수십개, 수백개의 물음표를 품은 마을 주민들이 총회를 열어 이듬해 초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고, 곧 이웃한 신산·난산리와 함께 반대대책위를 구성했다. 반대대책위 주민들과 함께 정부가 벌인 사전타당성조사, 예비타당성조사, 환경영향평가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공부를 계속했다.

반대의 이유에 돈이나 편리로 환산되지 않는 것도 포함되기 시작했다. “사전타당성조사에선 안개일수를 조작했고(주민들은 연평균 17일이 12일로 축소됐다고 지적했지만, 국토부는 오류였다고 밝혔다), 예비타당성조사에선 근처 오름 10개를 깎아내야 한다고 돼 있는데 이게 안전한 건가?(비행기가 착륙을 못할 경우 선회비행을 해야 하는데 이때 오름이 장애물이 될 수 있어 수십m씩 깎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자 국토부는 오름을 깎지 않겠다고 밝혔다) 환경영향평가 초안엔 새가 지상 100m까지밖에 못 난다고 돼 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15일 오후 심상정 정의당 의원(가운데)이 강원보 제주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오른쪽 둘째)의 안내를 받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독자봉(오름) 전망대에서 제주 제2공항 예정지를 살펴보고 있다. 강원보 위원장은 “이 전망대는 제2공항 계획 발표 뒤 ‘윗분’들이 오면 예정지를 보여주려고 급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5일 오후 심상정 정의당 의원(가운데)이 강원보 제주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오른쪽 둘째)의 안내를 받아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독자봉(오름) 전망대에서 제주 제2공항 예정지를 살펴보고 있다. 강원보 위원장은 “이 전망대는 제2공항 계획 발표 뒤 ‘윗분’들이 오면 예정지를 보여주려고 급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이런 식으로 제주가 지속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엇갈리는 이해관계 속에서 등장했다. 올레 열풍, 저가항공 운항 증가, 중국 관광객 등에 힘입어 연간 제주 관광객은 2013년 1천만명, 2016년 1500만명을 넘는 등 폭증세를 이어왔고, 코로나19로 여행업이 얼어붙은 지난해에도 1천만명 이상이 제주를 찾았다. 제주 면적의 3배인 발리, 15배인 하와이의 연 관광객도 1천만명에 못 미친다. 이 때문에 제주는 영국 <비비시>(BBC)가 2018년 4월 선정한 ‘너무 많은 관광객과 씨름하고 있는 전 세계 관광지 5곳’ 가운데 하나에 포함되기도 했다.

사람이 많으면 문제가 생긴다. 배출되는 쓰레기를 제때 처리하지 못해 그대로 방치되기 시작했고, 생활하수가 정화되지 못한 채 바다로 쏟아지는 날이 늘었다. 제주도는 대책을 세웠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2019년 구좌읍 동복리에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를 지었고, 하수처리장 역시 도내 8곳의 현대화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처리 용량’을 늘리는 게 답일까?

제2공항 추진의 주된 근거는 2016년 사전타당성조사에서 제주공항 이용객이 2035년엔 450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예측되는 등, 현재도 포화상태인 제주공항이 더는 이용객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항은 제주에 갈 때와 돌아올 때, 두 차례를 이용하니 예측된 이용객 규모를 단순 계산하면 관광객이 역대 최고치보다 700만명 많은 2200만이 넘는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이렇게 관광객이 더 늘어나면 쓰레기와 생활하수 처리 용량을 또 늘리고, 그보다 더 늘면 또 늘리고…, 이런 반복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 가능할까? 제주도민 찬반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고민의 결론일지도 모른다.

깊어가는 갈등의 골

16일 오후 강원보 제주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 겸 신산리 이장이 신산리 마을회관에서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6일 오후 강원보 제주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 겸 신산리 이장이 신산리 마을회관에서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그등애. 신산리의 옛 이름으로, ‘끝동네’라는 뜻이다. 바닷가 끝에 자리잡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일제강점기 때 근본 없는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게 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강원보 이장의 설명이다. 제주에서 한라산을 볼 수 없는 마을 3곳 가운데 하나여서 ‘한라산이 숨겨놓은 보물’로도 부르지만, 큰 인물이 안 난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제2공항이 들어서면 활주로 남쪽 끝동네가 될 운명이다. 얄궂다.

“동창회를 갔는데, 친구가 ‘공항을 왜 반대하냐. 저 땅을 팔아야 빚도 갚는다’면서 울더라. 우리 마을에도 ‘샤이 찬성론자’가 있다. 노부모만 마을에 살고 자식들이 농사 안 짓고 타지에 나가 있으면, 그 땅 팔아서 자식들한테 줄 수 있으니까. 마음은 아프지만 제주도 전체, 나아가 한국 전체를 보면 제2공항은 아니다. 우리 마을은 500년이 넘었고, 수산리는 1천년이 됐다.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공동체가 여기서 살아오려고 돌 하나하나 치우면서 일구고 사랑한 옥토다. 여기에 공항이 들어오면 떠나는 사람이 생기고, 마을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공동체에 금이 간다. 제주도 전체가 난개발되면서 확인한 것 아닌가. 제주의 가치는 자연환경과, 제주 사람 중심의 인문환경이다. 제주인의 삶이 빠진 제주는 ‘관광자원’이 아니다. 그래서 생업은 생각도 안 하고 제2공항 저지에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한테 공항은 먼 얘기고, 과수원 약 치러 가는 게 더 시급한 일이니 힘들 때가 있다. 언젠가 어느 여름엔, 동네에 제2공항 반대 깃발을 교체하려고 혼자 미친놈처럼 다니는데 눈물이 나더라.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너무 서글퍼서 나중엔 펑펑 울어지더라.”

울음은 환갑을 바라보는 강 이장만의 것이 아니다. 제2공항에 찬성하는 오병관 위원장은 “이웃 마을이라도 다들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지내는데, (반대하는 쪽에선) 조카뻘 되는 후배들이 이제는 인사도 안 하고 외면한다. 마음이 아프다”며 “사이좋게 오순도순 지내던 사람들이 공항 때문에 찬반으로 갈려 공동체가 깨지고 무너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정민 부위원장도 “제2공항이 성산 주민이 원해서 여기 오기로 한 게 아니다. 정부가 발표를 했으면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하는데, 6년 가까이 오다 보니 갈등만 심해졌다”며 “이럴 거면 차라리 하지를 말든지, 정부가 빨리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정민 제2공항 성산읍 추진위원회 부위원장. 17일 만난 그는 “정부가 (제2공항 추진) 발표를 했으면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하는데, 6년 가까이 오다 보니 갈등만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강정민 제2공항 성산읍 추진위원회 부위원장. 17일 만난 그는 “정부가 (제2공항 추진) 발표를 했으면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하는데, 6년 가까이 오다 보니 갈등만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여기, 사람이 산다

제주도의회는 25일 ‘제주 제2공항 갈등 종식을 위한 조속 결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해, 정부가 공항 건설 추진 여부를 하루빨리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정세균 총리는 지난 19일 제주를 방문해 “제2공항 문제는 상당히 오래 지속된 문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결론을 빨리 내려야 한다. 국토부가 제주도 의견도 참고하고 제주도민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하는 방안을 곧 마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절차적으로 현재 국토부는 환경부가 요구한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서를 마련하는 단계다. 당정협의를 거쳐 실시한 제주도민 여론조사 결과가 여기에 담기진 않지만, 공항을 지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 참고해야 하는 자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장관의 임기가 ‘시한부’인 상황에서 국토부가 엇갈리는 여론을 무릅쓰고 어느 쪽으로든 속히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도 눈치를 보는 건 마찬가지다. 그냥 밀어붙이기엔 도민 전체의 여론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고, 철회하기엔 야당 지지층을 결집시킬 가능성이 크다. 찬성 쪽도 반대 쪽도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배경이다.

16일 오후 제주 성산읍 수산리에서 오창현 전 수산1리 청년회장이 제2공항이 들어서면 마을이 어떻게 변할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16일 오후 제주 성산읍 수산리에서 오창현 전 수산1리 청년회장이 제2공항이 들어서면 마을이 어떻게 변할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결단의 바탕은 ‘사람’이어야 한다. 오창현씨는 수산초등학교 38회 졸업생이다. 부모님이 7회, 누나가 36회 졸업생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건너갔던 마을 사람들이 광복 이후 고향에 돌아와, ‘아이들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성읍리 폐교에서 자재를 가져다 지은 학교다. 1975년부터 급식을 시작했고, 1992년엔 ‘전국 아름다운 학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2공항이 생기면, 제주의 상징인 토종 홑동백이 봄까지 흐드러지는 이 학교는 어떻게 될까? “학교랑 공항이 직선거리로 800m가량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아이들이 비행기 바퀴를 보면서 학교를 다니거나, 학교가 아예 문을 닫을 수도 있다. 그렇게 마을과 역사가 무너질 수도 있다. 제주공항 바로 옆에 용담레포츠공원이 있다. 그 전엔 7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수근동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항이 생긴 뒤 주민들이 다 이주해 마을이 사라졌다. 광주공항 근처 송정마을에선 비행기 착륙 10~15초 뒤에 큰 ‘뒷바람’이 불어 심할 땐 비닐하우스가 다 찢어진다고 한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일 중요한데, 그런 얘긴 아무도 안 한다.”

그래서 오씨는 원희룡 지사에게 화가 난다. “몇 년 동안 청년회장 하면서 얼굴 한 번 못 본” 원 지사가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성산포 주민들과 수십 차례 소통했다’고 하는데, 소통한 건 찬성 단체 쪽뿐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공항이 들어서는 반대 마을은 성산포 주민 아닌가? 왜 우리는 배제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제2공항 삽을 뜬다면 강정마을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치지 않을까 불안하고 걱정된다”고 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는 건 제주의 ‘수눌음’ 정신(상부상조)을 지키고 싶어서다. “반대운동 시작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땅 보상 잘 받아서 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땅도 없이 세 들어 사는 우리 마을 삼촌들(어르신)은 어떡하나. 다 혼자 사시는 분들이고, 이주비라고 받아봐야 몇백만원 수준일 텐데. 어릴 때부터 ‘창현아, 창현아’ 하던 분들인데 그분들 놔두고 내가 어딜 어떻게 가겠나. 땅값 올라서 좋은 거 아니냐고? 농사꾼들은 안 그래도 잘 못 버는데, 땅값 오르면 세금만 올라서 더 힘들다. 개발, 개발 하면서 땅값 올려놓으면 농민들은 설 곳이 없어진다. 제2공항 강행? 경해도(그래도) 싸움칠 거라.”

등단 시인이기도 한 강원보 이장은 신산리 오름을 소재로 쓴 ‘독자봉’이라는 시의 마지막을 이렇게 이렇게 읊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높은 고향 하늘이다/ 고독한 자는 저 하늘을 보며 다짐한다/ 저 하늘 위로 종이비행기 하나조차 날릴 수 없다고/ 이 하늘에는 오직 새와 나비, 자유로운 자의 영혼/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꾸는 희망의 꿈만이 날갯짓할 수 있다고”.

제주 제2공항 예정지와 직선거리로 800m가량 떨어진 성산읍 수산리 수산초등학교. 주민들은 제2공항이 들어설 경우 75년 역사가 깃든 이 학교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제주 제2공항 예정지와 직선거리로 800m가량 떨어진 성산읍 수산리 수산초등학교. 주민들은 제2공항이 들어설 경우 75년 역사가 깃든 이 학교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제주/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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