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가 18일 오후 제주도청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원 지사는 제주도민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더 높았던 제2공항과 관련해 “반대가 높으니 무산시키자는 건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국책사업인 제주 제2공항이 정부에서 홀대받는 것을 넘어 정치적으로 이용당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제2공항은 제주의 일자리와 미래 산업발전전략”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런 계획의 추진을 머뭇대는 대통령과 국가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도 반복했다. 당정협의로 “정책 결정에 반영”하기로 한 제주도민 여론조사에서 반대 여론이 앞섰는데도 제2공항 추진을 촉구하고 있는 원희룡 제주지사 얘기다. 지난 18일 오후 제주도청 집무실에서 원 지사를 만나 그런 결정의 배경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물었다.
―제주 제2공항을 무산시켜선 안 된다며, 페이스북과 인터뷰 등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정책 이슈를 정치 쟁점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가덕도만 그렇게 안 했어도 ‘대통령이 고민이 많으시구나’ 했을 거다. 그림(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계속 가라앉는 뻘에 바다를 메꿔서, 을숙도 철새 떼 위로 비행기가 나는, 김해공항과 20㎞도 안 떨어진 공항을, 기존 모든 평가에서 꼴찌였던 그 방안을 어떤 절차도 안 밟고는 적극 추진하라고 장관에게 공개적으로 지시하는 순간, 제2공항은 정책 문제가 아니게 됐다. 국토교통부 장관과 관료들이 계속 반대했는데도 가덕도 끌고 가서 공항을 추진하라고 한 그 결단이면, 계획 다 나와 있고 예산까지 잡힌 제2공항은 왜 판단 안 하나. 자기편이 거기(부산)선 공항 요구하고, 여기선 반대하니까 국가를 위한 책임과 미래를 위한 계획보다 내 편 논리, 이중 잣대에 흔들린 거다. 정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했던 것보다 수준 이하다.”
―17일 도의회 현안질의에서 “제2공항의 대안이 있다면 대통령이 무산시키고 (그 대안 추진을) 약속하라. (제2공항을) 죽이든 살리든 대통령이 결정하라”고 한 것정하라”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인가?
“가덕도의 10분의 1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문 대통령이 성산에 왔어야 한다. 가덕도는 선거 앞두고 왜 가냐고 야당이 시비를 걸었는데도 갔다. 제2공항 조기 개항은 대선 공약인데도(정확히는 사업추진의 절차적 투명성 확보, 지역주민과의 상생 방안 마련을 전제로 한 조기 개항 지원이다) 와본 적도 없고 말 한마디 안 했다. (제주도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반대 단체랑 숙덕공론하면서 제주도도 빠진 당정협의 결과를 강요해 여론조사까지 하게 됐다. 대통령이 ‘왜 이렇게 싸우냐, (제2공항 반대하는 쪽에서 지적하는) 환경 문제는 정부가 도와줄게’ 이랬으면 여론도 이렇게 안 가고 도민들끼리 싸울 필요도 없다. 오히려 제주 균형발전과 환경 투자를 위한 힘으로 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장관이 반대하는데도 가덕도는 대통령이 직접 찍어눌렀고, 제2공항은 집권당이 반대 단체랑 합의를 안 하면 못한다고 하면서 이 정부 4년 내내 한 발짝도 못 나갔고 시간을 끌었다. 이건 국가가 아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국민이자,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터전을 걱정하는 입장에서 이런 자세는 인정할 수 없다. 국정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의 책임과 판단을 도민에게 떠넘긴 거다. 그러니 도민들 싸움 붙이지 말고 대통령이 판단하라는 거다.
제2공항을 무산시키려면 두 가지 대안을 내야 한다. 안전 문제를 어떻게 할 건지, 제주의 일자리 창출과 미래 산업발전전략을 어떻게 할 건지. 특히 일자리 정부를 자처했는데, 관련된 직접적 일자리만 5만개인 공항을 무산시키면 그 대안은 뭔가? 대안을 제시하면, 우리가 그에 반대를 하더라도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는 식의 상대적인 선택을 할 수 없다. 만약 대안 없이, 도민끼리 찬반이 갈리니 난 모르겠다고 하면 대통령이, 국가가 왜 있나. 그런 대통령과 국가는 인정할 수 없다.”
―제2공항 추진 뜻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왜 이토록 민감한 시기에 국토부가 제주도의 입장을 다시 묻는지 (중략)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면이 컸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여론조사를 한 건, 국토부와 민주당과 제주도의회가 이 절차를 안 거치면 제2공항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해서다. 그 대신 이 여론조사는 어떤 의견이 많이 나왔냐에 따라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찬성이 많으면 많은 대로, 반대가 많으면 많은 대로 갈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보완하자는 거고, 결과는 우리(제주도)의 주관을 반영하지 않고 국토부에 전달했다.
그러면 국토부가 판단을 해야 하는데, 10일에 ‘제주도지사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앞으로 이 사업을 어떻게 할지 의견을 공문으로 주시오’라고 해서 대답한 거다. 이 시점에 왜 이런 ‘종이비행기’를 날리는가, 국토부에 실무협의 차원에서 물어봤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제주도의 추진 의지가 약하므로 국토부는 빠지겠다’는 식으로 악용될까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단호하게 ‘내 생각은 알지 않냐’고 얘기한 거다. 그 대신 여론조사에서 성산 지역 주민들은 찬성이 높았고, 제2공항이 먼 지역이나 현재 공항과 상권으로 엮인 지역의 반대가 좀 높았다. 20~30대와 여성은 환경 문제로 반대가 조금 더 높다. 경제적 이익, 생활상 편리 이런 게 반영된 결과니 보완할 건 보완해야 한다고 회신을 한 것이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18일 오후 제주도청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제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전체 도민 여론조사는 반대가 높았는데, 왜 이 결과는 언급하지 않고 성산 지역의 찬성, 지역적 의견 차이만 얘기하나?
“어느 지역이 반대하고 찬성했다고 도민을 나누는 걸 가급적 언급 안하려고 했다. 하지만 반대가 높으니 (제2공항을) 무산시키자는 건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갤럽의 조사는 오차범위 이내의 차이여서 통계적으로 어디가 많다고 말할 수 없다. 다른 조사(엠브레인퍼블릭)에선 표본 자체가 현 정부 지지층이 한국갤럽보다 높게 잡혔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20~30대 여성도 한국갤럽 조사에선 반대가 조금 높았을 뿐인데 다른 조사에선 10%포인트 이상 높게 잡히고, 젊은 남성은 한쪽 조사에선 찬성 우세인데 다른 데선 반대 우세로 잡혔다. 정권 지지층의 반대가 높구나 해석은 할 수 있지만, 도민 전체의 반대 의견이 우세하다고 해석할 수 없다. 그런데도 도의회에서 계속 왜 얘기를 안 하냐고 물어보니 설명을 한 거다.”
(이와 관련해 제2공항 반대 단체에선 한국갤럽 조사에서 모름·무응답이 9% 가까이 나오는 등 조사가 소극적으로 이뤄져 찬반만 묻기로 한 이 여론조사의 취지에 맞지 않고, 20~30대와 제주 서부 지역은 정해진 표본 수를 못 채워 가중치를 준 결과라고 반박하고 있다.)
―성산 지역의 찬성 비율이 높으므로 주민 수용성엔 문제가 없다는 원 지사 발언에, 공항 부지에 편입되는 마을 주민들은 ‘직접 피해 주민의 수용성이 중요하다’고 맞서는데.
“직접 공항에 들어가는 게 5개 마을인데, 활주로 들어가는 곳은 찬성이 높다. 땅이 수용되니 충분한 보상과 대안이 있으리라고 보니까. 반대하는 쪽은 땅이 수용도 많이 안 되면서 소음 등의 피해를 보는 3곳이다. 공항을 둘러싼 지역은 지역발전의 혜택을 기대하겠지. 같은 성산에서도 공항과 자기 생활터전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건 당연한 거다. 피해를 보는 지역에는 제주 전체를 위한 희생이므로 공동체적 보상과 충분한 지원책을 마련하겠다.”
―제2공항 반대 쪽에선 현재의 공항을 확장하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5년 동안 그 얘기를 하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지금 공항으로 되면 그걸 하지 왜 딴 데 만들겠나. 처음에 33개 후보지를 추려서 현 공항 확장, 서쪽 끝에 가는 안, 동쪽에 가는 안 이렇게 세 개 안이 나왔다. 우리가 요구한 건 딱 하나, 오름이나 환경을 훼손해선 안된다는 거였다. 이걸 전제로 안전성, 항공기술적인 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성산이 압도적인 1등이 됐다.
현 공항은 도심 한가운데 있어서 교통량이 지금보다 더 얹어지면 수용이 안 된다. (동서) 활주로도 시간당 35회밖에 못 쓴다. 반대 단체들은 이미 있는 남북 활주로를 조금 더 연장하면 된다는데 그러려면 바다를 메꿔야 한다. 게다가 활주로 2개가 (동서와 남북으로) 교차하고 있어, 제주처럼 바람이 많이 불고 계절에 따라 바람 방향이 달라지는 곳에선 두 활주로를 동시에 쓸 수가 없다. 반대 단체 주장처럼 그렇게 한다고 해서 시간당 60회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이미 6년 전 사업타당성 검토할 때 결론이 난 사안이다.”
―당시 연구용역을 맡았던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선 현재 공항 확장이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
“에이디피아이는 김해공항을 검토할 때 주 용역사였고, 제주는 국내 용역단이 주였다. 그런데 국책사업을 할 때는 국제 용역을 해야 해서 에이디피아이에 1억원짜리 부속용역을 맡긴 거다. 거기엔 현재 제주공항의 용량을 최대한으로 늘릴 방법을 문의했고, 그 결과로 이론상 가능한 19가지 개선 방안을 가져왔다. 그중에 할 수 있는 15가지를 단기적 대책으로 현 공항 운영에 반영했다. 남북 활주로 연장이나 주기장 대폭 증설 등 4가지 안은 미래 항공 수요나 현실성 등을 고려할 때 부적합하다고 주 책임 용역단이 결론을 내렸다.”
(반대 단체 쪽은 ‘부적합’ 결론을 내린 검토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제2공항을 만들자는 건 현재 공항이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라는 건데, 현재 제주의 쓰레기, 교통, 생활하수 문제 등을 고려하면 언제까지 관광객을 늘리기만 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민 반대 여론에도 이런 우려가 담긴 것으로 풀이되는데, 왜 제2공항을 추진하려 하나?
“문제는 관광의 질이다.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노선이 김포~제주다. 바람 불면 결항도 잦아서,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일정 선택의 폭이나 안정성이 다른 경쟁 관광지보다 떨어진다. 공항을 하나 더 짓자는 건 관광객을 두 배로 받자는 게 아니라, 현재 연간 3천만명 가까운 이용객으로도 공항이 미어터지니 여기를 좀 줄이면서 좋은 시간대에만 운행하게 하고, 자가용 경비행기도 뜰 수 있도록 체험형, 문화형, 고급형으로 가자는 거다. 서귀포와 제주의 날씨가 다를 때가 많으니, 변동성에 대비해 비행기 선택 폭도 넓히고 안정화하자는 취지다.
수준 높고 만족하고 매력도 높은 제주로 가야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생기고 좋은 일자리도 많이 나온다고 본다. 여행사들이 항공권 한꺼번에 사들여 블록세일하고, 전세기들 밤늦게 싼값에 들어와서 쏟아놓는 사람들이 고급 관광객들일 수가 있나? 지금 제주도가 미어터지는 것 같지만 일자리가 없으면 다들 돌아간다.”
―제2공항을 발판 삼아 내년 제주지사 3선, 또는 대선에 도전하려는 건가.
“2014년 처음 출마할 때도 제2공항은 공약이었고, 원희룡이라면 중앙정부에서 공항을 끌고 올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다음에도 공항 추진하려면 나를 뽑아달라고 해서 당선됐다. 대선? 내가 대통령이 되고 말고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이 2017년 공약을 지킬 거냐 말 거냐를 묻는 게 순서다.”
제주/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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