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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살아남는 걸 넘어서 잘 살고 싶어요’…20살 트렌스젠더 대학생 ‘하울’ 이야기

등록 2021-03-31 04:59수정 2021-05-26 11:25

[3·31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20대 청년 트렌스젠더의 목소리
“변 하사가 발걸음을 멈춘 지점에서,
함께 시작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연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들이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하늘·흰색 우산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연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들이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하늘·흰색 우산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 서체는 ‘트랜스젠더 길벗체'로 성소수자 활동가 길버트 베이커를 기리며 만들어진 영문 서체 ‘길버트체’의 한글판 서체 가운데 하나다.
이 서체는 ‘트랜스젠더 길벗체'로 성소수자 활동가 길버트 베이커를 기리며 만들어진 영문 서체 ‘길버트체’의 한글판 서체 가운데 하나다.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3월31일은 트랜스젠더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날이다. 이날 전세계에서 트랜스젠더 존재를 사회에 드러내고, 이들이 직면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펼쳐진다. 미국 트랜스젠더 활동가 레이철 크랜들이 제안해 2009년부터 시작됐다.

20학번 대학생 하울(20·가명)씨의 3월5일은 여느날과 다르지 않았다. 2학년 1학기 첫주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수에게 연락해 강의에 참고할 책도 미리 읽은 참이었다. 그날 변희수 전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트랜스젠더 여성인 하울은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용기를 내어 교수에게 메일을 썼다. 변 전 하사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하는데 출석을 배려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곧 답신이 왔다. “장례식에 다녀오세요. 변희수 하사를 항상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만나면 꼭 변희수 하사님이 어떤 분인지 이야기해주세요.” 답장을 확인한 하울은 울었다.

3월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다. <한겨레>는 스무살 대학생 하울 등 트랜스젠더 청년 4명을 인터뷰했다. 그들은 매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건 선택을 해야 한다. 자신을 숨겨 스스로 고립되거나, 드러내 외부의 공격을 각오하거나. 그 중에서도 하울은 숨기기보다 드러내고 주변과 힘을 모아 분투하는 쪽을 택했다. 가정·학교·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차별과 배제로 방황도 했지만 그때마다 손을 내미는 이들과 함께 이를 이겨내곤 했다. 평범한 20대 청년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경험한 하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족 2016년 중학교 2학년이던 하울은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걸 알게 됐다. 남자 친구들보다 여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편했다. 디스포리아(성별 불쾌감)를 느낀 지는 오래였지만 자신의 지정 성별(남성)과 내면의 성별(여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한 건 그때였다. 친한 친구 몇몇에게 “내가 이쪽(트랜스젠더)인 것 같다”고 알리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지정 성별 남성인 그가 머리를 기르자 곧 학교에 소문이 퍼졌다. 하울의 성별 정체성 이야기는 결국 부모님 귀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하울을 둘러싼 “모든 평범한 공간들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좀처럼 하울의 성별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평소 성소수자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온 부모님이지만, 막상 하울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이 컸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는 절대로 체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만큼 유화적인 집안이었는데, 그 후에는 약속이 깨지고 죽을 듯이 싸우게 되더라고요.”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청년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가장 먼저 냉대와 배제를 경험하는 것은 대부분 가정이다. 청소년 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이 지난해 7월 공개한 5년간의 상담·지원 사례(2055건)를 보면, 가족 내 갈등과 학대 호소(32.2%), 자립·탈가정(35.6%) 상담·지원 건수가 많았다. 가족과의 갈등을 견디지 못한 하울도 중학교 2학년 2학기에 가출했다.

■ 학교 2년 뒤 하울은 부모님과 학업이라는 절충점을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에는 성소수자 학생들, 특히 트랜스젠더 학생이 기댈 수 있는 학교가 거의 없다. 인권위 조사에선 트랜스젠더 응답자 67%가 ‘재학 당시 교사가 수업 중에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들었다’고 했다. 성소수자 관련 성교육 부재(69.2%), 성별 정체성에 맞지 않는 화장실 이용(51.7%)도 학교에서 겪은 힘든 경험으로 들었다. 하울은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자신이 다닐 수 있는 학교들의 학칙을 하나하나 뒤지다, 교칙에 “성소수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성소수자 학생을 위한 시설을 배려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 학교를 발견했다.

입학은 했지만 두 성별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고립감은 단순히 교칙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학교는 1인용 장애인 화장실을 일종의 성중립 화장실로 지정해 하울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학교 지원 없이 시설 배려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뒤늦게 알았다. “남자애들은 남자들끼리 놀고 여자애들은 여자들끼리 노는데, 저는 어디에도 낄 수 없더라고요.” 하울은 결국 3개월 만에 자퇴했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연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들이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하늘·흰색 우산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연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행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들이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하늘·흰색 우산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두 번이나 학교에서 밀려나는 경험은 감당하기 힘든 자책감이 되어 괴롭혔다. 늘 우등생이었던 친구가 성 정체성 문제로 부모와 크게 부딪힌 뒤 공부를 그만두는 일까지 벌어지자, 하울은 어른들에게 화가 났다. “제 트랜스젠더 친구들은 대부분 자퇴를 했거든요. 마땅히 도움을 줘야 할 어른들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자기 학생이, 자기 자식이 극단으로 몰릴 때까지 방치한다는 게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나는 거예요. 나라도 대학에 들어가야겠다, 내 뒤에 올 또래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그때 그런 결심을 했어요.”

혐오와 차별은 학교 밖에서 홀로 공부에 나선 하울을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학원 강사는 원생들 앞에서 “너 이상하게 머리 기르고 다니는 거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꼴 보기 싫다”고 소리를 질렀다. 수능시험장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한 무리의 남학생이 몰려와 시비를 걸었다. “너는 여자애가 왜 남자 시험장에 있냐. 벗겨보자, 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게.” 하울은 “제정신이 아닌 채로” 수능을 치렀다. 논술이 아니었다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대학 합격 사실을 확인하고 하울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난해 4월 튤립연대 회원들이 튤립교실을 준비 중이다. 튤립연대 제공
지난해 4월 튤립연대 회원들이 튤립교실을 준비 중이다. 튤립연대 제공
■ 연대 하울은 자신이 “다른 트랜스젠더 청소년에 비하면 운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했다.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과외를 해준 대학생은 단체 활동 중에 만난 트랜스젠더 지인이었다. 한 교회는 하울에게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위기지원센터를 연결해주기도 했다.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 하울은 자신에게 손을 내민 한명 한명이 롤모델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성소수자 친구들은 자신이 따를 어른을 정상적인 경로로 만나지 못하거든요. 데이팅 앱에서 어른들을 만나고, 성 착취에 유입되기도 해요. 저는 다행히 인권단체와 커뮤니티에서 정말 좋은 사람만 만났어요.”

하울은 자신이 받은 연대의 손길을 한때의 자신처럼 학교 밖을 떠도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검정고시나 대학을 준비하는 게 학력의 문제도 있지만, 사실 청소년기에는 사회화될 수 있고 교육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밀려났다는 경험 자체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거든요. 또래들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 집에만 있게 되고, 고립된 상황에서 자신을 자책하게 돼요. 그럴 때 누구라도 손을 내밀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어요.”

지난해 3월11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한겨레>와 만난 변희수 하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는 지난3월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해 3월11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한겨레>와 만난 변희수 하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는 지난3월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하울은 지난해 4월 자신이 소속된 트랜스젠더 청소년 단체 ‘튤립연대’를 통해 튤립 교실을 기획했다. 자퇴한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선배 대학생들이 1대1 멘토링을 해주는 프로젝트였다. 스티커와 배지 등 다양한 굿즈를 만들어 파는 방식으로 펀딩을 했고, 172명 후원으로 390만원이 모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지난해 6월부터 석달 간 하울을 비롯한 4~5명의 전담 선생님이 전라도·인천 등 각지에서 온 5명의 트랜스젠더 청소년에게 검정고시 교과목을 가르쳤다. 공부 스케줄을 함께 짜고, 진로에 맞는 강사를 초청하고, 고민상담을 했다. 주변 도움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낸 하울은 자신의 자리에서 연대의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 분투했다.

변희수 하울은 변 전 하사가 언론에 알려지기 전인 2017년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친목 자리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변 전 하사는 그 자리에 군복을 입고 나타났다. 직업군인 트랜스젠더는 하울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병사가 아니라 부사관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직업군인도 트랜스젠더일 수 있구나. 제가 알던 세계가 한꺼풀 벗겨지는 기분이었죠.”

3년 뒤 변 전 하사를 다시 만났다. 튤립연대가 만든 정기모임 자리에서다. 그때는 군의 강제 전역으로 더는 직업군인이 아니었지만 변 전 하사 모습은 밝았다. “저희가 튤립 교실을 준비한다고 하니까 저희 몰래 음료수를 계산하시고 자리를 떠나셨어요. 그때 이미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계셨다는 건 나중에야 들었어요.”

변 전 하사가 세상을 떠난 뒤 하울씨 목표는 조금 더 뚜렷해졌다. “변 하사님을 기억하면서 하는 말 중에 ‘살아남자’는 말이 있잖아요. 하루하루 잘 버티자는 말인데, 저는 그걸 넘어서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변 하사님은 단순히 사는 걸 넘어 ‘잘 살아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지지를 받았잖아요? 아픔을 나누고 기쁨도 나누면서 꼭 떳떳하게 잘 살자고, 변 하사님이 발걸음을 멈춘 지점에서 함께 시작하자고, 제 또래 트렌스젠더에게 말하고 싶어요.”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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