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옥씨가 경기 이천 고객의 집에서 정수기를 점검하고 있다. 김씨는 평소 마스크를 착용하고 점검하지만 촬영을 위해 마스크를 잠깐 벗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하늘색과 짙은 회색이 섞인 유니폼을 입은 김순옥(50)씨의 헤어스타일은 짧은 단발이다. 손톱도 짧다. 신발은 검정색만 신는다. 이는 모두 회사가 지정한 복장 규정이다. 김씨는 ‘코디‘로 불리며 회사의 지시를 받지만 회사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자신의 집에 정수기를 설치하려고 방문한 코디의 추천으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6년째. 아침 9시에 일을 시작해 마지막 점검을 마치면 저녁 9시다. 고객이 퇴근한 오후 6~8시가 가장 바쁘다. 저녁식사 시간에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때면 김씨는 ‘투명인간’이 된다. “점검을 하고 있는데도, 제가 없는 것처럼 밥을 먹고 이야기하죠.”
코로나19 발생 이후로 김씨를 보는 시선은 박해졌다. 방문점검을 꺼리다 보니, 어렵게 점검 약속을 잡더라도 고약한 취급을 감내해야 한다. 문 앞에서 소독약 세례를 받는 건 기본이다. “문고리를 만지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해요.” 그날 김씨는 고객이 소리를 지르는 통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점검을 마쳐야만 했다.
코디들은 정해진 기본급도, 4대 보험도 없다. 다만 정수기·공기청정기 등을 점검한 개수만큼 수당을 받고, 판매할 경우 판매 수수료를 받는다. 회사는 이마저 경영상의 이유로 삭감하려 했다. ‘노동자들’의 반발에 회사는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5월 코디들은 노조설립신고증을 받고,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교섭단위 분리신청에서도 승소해 회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중노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김씨가 장비가방을 정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회사는 김씨 등 동료들에 대해 “상당수는 전업주부로서, 고소득을 목적으로 코디 업무를 전업으로 하기보다는 생계비 중 일부를 충당하거나 자아실현을 위한 부업의 일환으로 코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직원인 듯 아닌 듯, 노동자인 듯 아닌 듯, 김씨의 존재는 정수기 물처럼 투명하다. 이천/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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