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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논썰] 주지스님들은 왜 ‘이재용 사면’ 탄원서 냈을까

등록 2021-05-01 08:59수정 2021-05-02 19:42

조계종 25개 교구 본사주지들 문 대통령에게 “선처” 촉구
불교계 ‘이건희 예술품’ 기증 요구…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도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적극 주장하거나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과 특수관계인 <중앙일보>가 연일 사설, 칼럼, 기사 등을 통해 사면론을 확산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이에 단호히 반대합니다. 왜 그런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재용 부회장 사면을 촉구한 &lt;중앙일보&gt; 칼럼
이재용 부회장 사면을 촉구한 <중앙일보> 칼럼

사면론에는 경제계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며칠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가 청와대에 사면 건의서를 제출했습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달 1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경제단체장 간담회를 하면서 앞장서 사면론을 꺼낸 바 있습니다.

종교계도 거들고 나섰습니다. 지난달 12일 대한불교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주지들이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에게 ‘이재용 부회장 선처 촉구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유교 중앙기관인 성균관도 26일 대통령을 향해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종교계가 재벌 총수의 사면 문제에 관여하는 건 보기 드문 일입니다.

대통령 등에게 ‘이재용 부회장 선처 촉구 탄원서’를 보낸 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주지협의회 명단
대통령 등에게 ‘이재용 부회장 선처 촉구 탄원서’를 보낸 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주지협의회 명단

우선, 종교계까지 왜 이렇게 나서는지가 궁금한데요. <한겨레> 종교전문기자인 조현 기자와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 재벌 총수 사면에 종교계가 대거 나서는 일이 이례적으로 느껴지는데 , 어떻습니까 ?

=종교계는 약자들의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넓은 품으로 안아주는 일은 있는데, 권력자라든가 가진 자를 대놓고 편드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공식적으로 주요한 종단에서 나서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로 보입니다.

-종교계는 어떤 주장을 펴고 있습니까 ? 종교와 어떤 관련이 있는 주장인가요 ?

=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주지협의회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충분히 자신의 죄를 반성했으니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탄원서를 냈습니다. 종교하고 특별히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불교에서는 누구든지 잘못할 수 있으니까 용서를 해서, 나라가 워낙 경제적으로 위기니까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주장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종교계가 나서는 배경이 궁금합니다 .

=삼성 이건희 회장이 평생 모아온 엄청난 예술품들을 국가와 박물관에 기증한다고 하는데 그것과 관련해 조계종에서도 요구를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삼성문화재단 쪽 하고도 상의를 했습니다. 불교의 불화라든가 이런 것들이 박물관에 가면 수장고에 들어가버리는데 불교에서는 그것이 신앙의 대상이니까 그걸 활용할 수 있도록 종교적인 차원에서 그렇게 해달라는 요구는 해봄직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매는 식으로, 용서를 해주는 것과 자기들의 이익을 얻는 것과 무슨 거래를 하는 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그 순수성이 상당히 의심되는 상황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 종교전문기자로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종교인들은 개인적으로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누구나 할 것 없이 고통스러운 사람을 보듬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종교에서도 주류 종교들은 국가·사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경유착이라든가 재벌, 독재권력의 문제 등에 대해 종교계가 기생도 했지만, 그것이 잘못 가는 것에 대해 아무도 견제·비판하지 못할 때 종교계가 앞장선 전례가 있습니다. 삼성에서 엄청난 비리라든가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여섯번이나 공표를 했습니다. 가톨릭도 굉장히 보수적인 교단이기 때문에 정의구현사제단도 교단 내외적으로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사회적 책무를 하기 위해 불이익을 감수하고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것이 공적인 양심의 소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인데, 가톨릭 이상으로 불교는 이 나라에서 책임있는 교단 아닙니까. 그런 교단에서 사회적인 책무에 대해 조금 더 엄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큰 사안을, 더구나 한두 사람도 아니고 종단의 가장 권위 있는 교구 본사 25개 주지들이 모두 나서서 이렇게 한다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법 앞의 평등’ 무너지면 ‘약육강식의 정글’ 될 것

종교적인 용서와 화해는 소중한 것이지만 이것이 우리 사회의 기본 틀을 규정하는 ‘법’의 지배를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은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법의 지배와 법 앞의 평등이라는 기본 원리가 무너지면 사회는 무질서와 약육강식이 판치는 정글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면 제도, 특히 특정인을 지목해 시혜를 베푸는 특별사면은 그 자체로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과 대치되는 제도입니다. 사법부가 내린 판결을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에 따라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옛날 절대군주들이나 누리던 특권입니다. 역대 사면 사례를 봐도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대통령 측근을 풀어주거나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재벌들을 선처해주는 사면권 남용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군사반란과 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두환씨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전씨는 그 뒤로도 반성은커녕 일체 혐의를 부정하는 뻔뻔한 행동으로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2015년 5월 “특별사면은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 권한을 남용하고 국민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밝힌 박근혜 대통령
2015년 5월 “특별사면은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 권한을 남용하고 국민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밝힌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뇌물·횡령 등 5대 중대 부패범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뇌물·횡령 등 5대 중대 부패범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

역대 대통령들 ‘사면권 제한’ 공약으로 내걸어

그래서인지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 후보들은 한결같이 사면권의 엄격한 제한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자신이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후보와 대통령 시절 ‘특별사면은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 권한을 남용하고 국민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뇌물·횡령 등 5대 중대 부패범죄에 대해선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이재용 세 사람은 모두 5대 중대 부패범죄에 해당하는 혐의로 수감돼 있습니다.

뇌물·횡령 등 5대 중대 부패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횡령 등 5대 중대 부패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제도가 유지돼야 할 유일한 근거가 있다면 사법부의 명백한 오판이 드러났을 때 바로잡는 수단이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재심이라든가 다른 제도를 통해 오판을 바로잡을 수 있겠지만, 최후의 보루로써 사면제도를 남겨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 스스로 재판 결과를 인정하고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 상태입니다.

이렇게 오판을 바로잡는 경우가 아닌 한에는 특별사면은 본질상 특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선 사례들이 보여주듯 그 특혜는 특정 집단에 집중됩니다.

사면 제도의 이런 특성은 뿌리가 깊습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사면 제도가 있었는데, 사면을 받으려면 비밀투표를 통해 동료 시민 6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고 합니다. 인기 높은 유명인이나 영향력이 큰 사람이면 모를까 일반 시민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사면 여부는 그것이 정의에 부합하느냐보다는 그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냐에 좌우됐던 것입니다.

공정, 법 앞의 평등은 이 시대의 화두라고 일컬어집니다. 정치인, 언론들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쳐댑니다. 그런데 왜 재벌 앞에만 서면 180도 태도가 바뀌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황제, 군주, 귀족이라는 특별신분이 법 위에 군림하던 중세, 고대사회로 돌아가버린 느낌입니다.

수십년간 되풀이된 레퍼토리 ‘경제위기론과 사면’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주장하며 앞세우는 논리는 ‘경제 위기론’입니다. 요즘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으로 반도체 산업이 위기 상황에 처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경제단체들은 사면 건의서에서 “치열해지는 반도체 산업 경쟁 속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할 총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진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세계 1위의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되풀이된 레퍼토리입니다. 경제는 위기가 아닌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재벌 총수, 기업인은 영원한 면죄부를 쥐게 되는 셈입니다.

또 총수 한 사람이 부재 중이라고 기업이 흔들리는 건 그 기업의 경영구조가 그만큼 전근대적이라는 뜻입니다. 총수가 없을 때 오히려 경영실적이 좋았다는 실증적 자료도 나온 바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최고경영자가 형사처벌을 받고도 자리를 유지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힘든 일로 본다고 합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업무에 복귀해야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넘을 수 있다는 주장이 맞는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의 성과를 위해 중대한 원칙을 놓쳐버릴 경우 우리 경제의 미래에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재벌 총수는 위법을 저질러도 마땅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나쁜 관행이 유지되면 정경유착, 불법경영 등 적폐의 고리를 영영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격입니다.

삼성은 지난 28일 이건희 전 회장의 유족들이 상속세로 12조원을 납부하고, 1조원을 감염병 극복 등을 위해 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미술품 2만3천여점도 국립기관에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재벌의 ‘세금 없는 대물림’ 관행을 개선하는 계기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1조원과 미술품 기부도 이건희 전 회장의 차명계좌 자산 사회환원 약속을 뒤늦게 실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의 이 같은 조처가 행여라도 사면론의 근거가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재발 총수들의 검찰 출두 사실을 보도한 1995년 11월9일 &lt;한겨레&gt; 1면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재발 총수들의 검찰 출두 사실을 보도한 1995년 11월9일 <한겨레> 1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비판한 2009년 12월30일 &lt;한겨레&gt; 3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비판한 2009년 12월30일 <한겨레> 3면

이건희 전 회장은 1997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2009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두차례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이 또 정경유착 범죄를 저지른 데는 앞서 남발된 특별사면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요. 언제까지 삼성은 불법경영과 특별사면의 특혜를 누려야 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사면 검토한 바 없다” 청와대, 입장 계속 지킬까

‘세계 1위를 지키겠다고 기업의 불법에 면죄부를 발부해줄 것이냐, 1위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깨끗하고 공정한 경제구조를 만들 것이냐. 어떤 게 우리의 미래를 더 밝게 할 건가.’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니, 며칠 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씨의 인터뷰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나는 최고, 그런 거 싫다. 경쟁 싫어한다. 1등 되는 것 하지 말고 ‘최중’(最中)이 되면 안 되나.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말고 ‘최중’만 하고 살자.”

윤여정씨는 “영화는 감독이 중요하다”는 말도 했습니다. 정이삭 감독을 칭찬하면서 “현장에서 수십명을 차분하게 통제하는데 아무도 누구를 업신여기지 않고 존중하더라”는 말도 했습니다. 감독이 특권층으로 군림하며 불법을 저지르고 특혜를 받아 만든 영화가 좋은 영화이겠습니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겠습니까.

청와대는 잇따르는 이재용 사면 건의와 관련해 지난 27일 “현재까지는 검토한 바 없으며 현재로서는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청와대가 ‘사면의 원칙’을 지켜낼 것인지 ‘논썰’에서 계속 주시하겠습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기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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