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란 말 앞에 늘 ‘정치’가 따라붙는 고질적 병폐 이번 검찰총장 임기 도중 ‘20대 대통령 선거’ 치러져 김 후보자, 정권도 검찰조직도 아닌 국민만 바라봐야
[논썰]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 ‘정치 중립’ 지킬까. 한겨레TV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뒤 적격성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역시 가장 큰 화두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입니다. 야당과 보수 언론에서는 ‘정권의 코드인사’ ‘정권의 호위무사’ ‘방탄 총장’이라며 정치 중립을 지키지 않을 것으로 단정지어 공격합니다. 조선일보 등은 아예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김오수 후보자를 지명했다고까지 주장합니다.(사설 ‘법원·검찰 모두 방탄 완성, 文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나’) 이런 무리한 주장과는 결이 다르지만, 다른 언론도 검찰총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면서 김오수 후보자에게 이를 주문했습니다. ‘김오수 후보, 검찰개혁·정치중립에 명운 걸어야’(한겨레 사설), ‘친정부 평가 김오수 총장 내정자, 검찰 중립 명운 걸어야’(경향신문 사설),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 정치 중립 의지 철저히 검증해야’(한국일보 사설)가 대표적입니다.
지난 5월4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를 “문재인 정부의 호위무사”라고 비판하는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조선일보 5월5일 사설 ‘법원·검찰 모두 방탄 완성, 文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나’
2007년 대선 때 MB에게 ‘엉터리 면죄부’ 준 검찰김오수 후보자의 인사청문 과정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 원칙과 그 현주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검찰총장은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정치와 철저히 분리돼야 하는 자리라는 건 상식입니다. 검찰의 수사·기소권이 막강하고, 그것을 사용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이 넓기 때문에 검찰의 행보는 정치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번 검찰총장 임기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점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요청은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2007년 대선 당시 유력 후보였던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과 다스 실소유주 의혹에 검찰이 엉터리 면죄부를 준 것과 같은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될 것입니다.
2007년 12월5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김홍일 3차장 검사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다스 의혹’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권한을 올바르게 행사하고 있는지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정치권력은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만큼 선거 과정에서 평가가 이뤄지고 그에 따라 권력을 다시 잡거나 빼앗기게 됩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민주적 권한 위임과 평가 과정이 없습니다. ‘영원한 권력’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그래서 검찰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신뢰’를 통해 평가받고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형사정책연구권의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도’ 조사. 검찰은 2012년 이후 6차례 진행된 조사에서 첫번째를 제외하고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 검찰이 ‘꼴찌’
지난해 형사정책연구원의 형사사법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검찰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31%에 그쳤습니다. 법원(35.3%), 경찰(49.2%)에 뒤지는 결과입니다. 2012년 이후 6차례 진행된 조사에서 검찰은 첫번째를 제외하고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습니다. 올해 발표된 통계청의 ‘2020 한국의 사회지표’를 봐도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경찰(46.4%), 법원(41.1%), 검찰(36.3%) 순입니다. 이들 기관이 공정한지에 대한 인식 역시 법원 54.3%, 경찰 53.9%, 검찰 49.7% 순이었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 시절, 검찰은 이른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에 적극 나서면서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보수 언론들은 이를 검찰의 독립성을 향한 분투로 평가했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이 국민의 광범위한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것은 검찰을 비롯해 우리 모두가 곱씹어볼 대목입니다. 검찰이 권력형 부정부패를 철저히 파헤친다면 대다수 국민의 신뢰를 얻을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전 총장이 집중했던 수사는 한쪽에서는 환영을 받았지만 동시에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심도 받았습니다. 윤 전 총장이 수사-기소권 분리에 항의하며 사퇴한 뒤 정치 행보에 나선 것은 ‘검찰의 정치화’라는 의구심을 더욱 키우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을 이끌어야 하는 차기 총장은 정치적 중립에 관한 두 가지의 시험대에 서게 된 셈입니다.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박상기, 조국, 추미애 장관을 잇따라 보좌했다.
김오수 후보자 ‘친정부 성향’ 꼬리표 떼야
첫째는 청와대·여당과의 관계입니다. 과거 검찰처럼 정권 편에 서서 편향적으로 검찰권을 행사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김 후보자는 여러 약점이 지적됩니다. 현 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세명의 장관을 잇따라 보좌한 경력이라든가, 이후 공정거래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국민권익위원장, 감사위원 등 요직 후보로 잇따라 거론된 점 등은 ‘친정부 성향’이라는 꼬리표를 붙게 합니다. 물론 법무부 차관과 검찰총장은 그 책임과 역할이 확연히 다릅니다. 김 후보자가 검찰총장이라는 직책의 무게를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개별 사건의 처리에 있어서 철저히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실제 총장직을 수행하면서도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어가야 할 것입니다.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난 4일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고검으로 출근하는 길에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기자 질문에 ”정치적 중립성도 열심히 챙겨보도록 하겠다”고 대답하고 있다.
둘째는 ‘검찰의 정치화’에 대한 경계입니다. 검찰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특정 정치세력을 편든다는 의심을 받는 순간 검찰의 중립성 원칙은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에 더욱 민감한 상황입니다. 이 점을 김 후보자는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김 후보자가 이 같은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낸다면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검찰 출신인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이 2019년 10월15일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김오수 당시 법무부 차관에게 “공수처가 검찰을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질문하자 김오수 차관은 “운용 여하에 따라 충분히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정 의원은 “그러니까 완벽하게 ’탈검찰화’가 됐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영혼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김 후보자와 사법연수원 20기 동기다.
이를 위해선 검찰 내부의 소통을 강화하고 일선 검사들과 정치적 중립 원칙에 대한 상호 신뢰와 공감대를 넓혀가는 일도 중요할 것입니다. 김 후보자는 조국 전 장관 수사가 진행되던 2019년 9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제외한 특별수사팀 구성을 대검찰청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일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수사를 방해하려는 부당한 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검찰 내에서 김 후보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주요 배경입니다. 반면 합리적 성품에 굵직한 권력비리 수사 경험도 갖춰 무난한 리더십을 보일 것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른바 ‘특수통 검사’ 출신인 김 후보자는 2009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다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겪은 끝에 6개월 만에 원주지청장으로 밀려나기도 했습니다. 김 후보자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으로 검찰의 서면조사를 받기도 했는데, 후보자로 지명된 뒤 “이해충돌 사건에 대해서는 향후 총장으로 취임하면 법령과 규정에 따라 정확하게 회피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검찰청법 제4조 ‘검사의 직무’
‘국민 신뢰’ 받는 검찰은 ‘시대적 과제’
무엇보다 검찰총장은 정권을 바라봐서도 안 되고, 검찰 조직만 바라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때의 국민은 특정 진영을 지지하는 국민일 수 없습니다. 검찰청법이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듯이 검찰총장은 국민 전체를 바라봐야 합니다.
‘검찰’이란 말에 늘 ‘정치’가 따라붙는 고질적 병폐를 끊어내고 대다수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로 나아가는 시대적 과제가 김오수 후보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검찰개혁의 목적도 바로 이 지점일 것입니다. 김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이 아니라 엄중한 시기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낸 검찰총장으로 기억될 수 있는 인물인지 청문회 과정은 물론 그 이후로도 철저히 검증하고 감시해야 하겠습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PD azu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