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29) 형사재판 교과서의 아이러니
삼성 이재용도 6개월째 결론냈는데
양승태·박병대·임종헌은 2년째 1심
‘보통 법정’선 못 볼 광경들 잇따라
“다른 재판도 같은가” 질문 남겨
(29) 형사재판 교과서의 아이러니
삼성 이재용도 6개월째 결론냈는데
양승태·박병대·임종헌은 2년째 1심
‘보통 법정’선 못 볼 광경들 잇따라
“다른 재판도 같은가” 질문 남겨
사법농단에 연루된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1심 공판은 재판의 독립, 판사의 독립은 무엇인가 질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난달 1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부터),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이 각각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장의 성찰 바라” 훈계까지
‘판사 독립이란 무엇인가’ 질문
사법농단 재판 2R 놓치지 말아야 “유죄심증 재판” 대 “양심대로 판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한발 더 나아간다. 재판장인 윤종섭 부장판사가 재판 시작도 전에 유죄 심증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2021년 2월 <조선일보>는 2017년 10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중앙지법 법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 부장판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반드시 진상 규명하고 단죄해야 한다’고 말한 뒤 임 전 차장 재판부로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임 전 차장은 이 보도를 참조해 면담 참석자나 발언 내용을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에 조회하겠다며 사실조회 신청을 냈다. 4월13일 임 전 차장 변호인의 법정 발언이다. “그동안 대법원장이 보여준 태도에 비춰보면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자들에 대해 중형선고하라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의중이 이 사건 재판부 신설 및 구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피고인으로서는 재판의 공정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정성에 대한 우려 해소 차원에서라도 이 부분은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사표 반려를 둘러싼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논란, 6년째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 중인 윤종섭 부장판사의 근무 이력까지 연관 지은 의혹 제기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아 특정 재판을 특정 방향으로 선고하게끔 유도했다는 혐의를 받는데 그와 비슷한 구조다. 재판부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재판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이 법대에 앉아 있는 제36형사부 구성원 모두가 대한민국 헌법 103조가 정한 법관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판사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뿐입니다.” 전직 법원행정처 차장의 현직 판사 훈계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낸 사실조회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대한 이의신청도 기각했다. 4월26일 재판에서 임 전 차장은 훈계하듯 재판부에 말했다. “저 역시 30년간 법관으로서 봉직한 사람으로서 재판장님의 고뇌 어린 심경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중략) 만일 언론 보도와 같이 재판장님께서 그와 같은 발언을 하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이 재판에 임했다면 법관으로서의 직업적 양심보다는 개인적 양심을 우선시킨 것이 아닌가 피고인은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재판장님의 깊이 있는 숙고와 성찰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임 전 차장의 의혹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6월 윤종섭 부장판사에 대한 기피신청을 제출한 바 있다. 윤종섭 부장판사가 사법농단을 엄단해야 한다고 발언했다는 기자의 제보를 들었다는 게 이유였지만, 재판 지연 목적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기피신청을 내면 재판은 중단된다. 재판은 약 9개월여 만인 2020년 3월 재개됐다. 이번 사실조회 신청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두고도 해석이 다양하다. 재판부는 지난 3월23일 직권남용의 새로운 법리해석을 바탕으로 이규진 전 위원과 이민걸 전 실장에게 첫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공범인 임 전 차장의 유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재판부 흠집내기로 사법농단에 대한 직권남용죄 첫 유죄 판결의 신뢰도를 낮추는 게 목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2018년 시작된 임 전 차장의 재판은 현재 50%도 진행되지 못했고 윤종섭 부장판사는 내년에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임 전 차장이 이 재판부에서 1심 선고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 사법농단은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등 직무감독권자가 사법행정(법원에 필요한 행정작용)을 명분으로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사건이다. 유무죄 판단 과정에서 정당한 사법행정의 경계선이 그어져야 한다. 이는 반대로 이 경계선 안에서 보호돼야 할 재판의 독립, 판사의 독립은 무엇인가 질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사건의 본질을 잊지 않는 한편, 사법농단 재판이 남기고 간 형사 재판의 궤적들도 추적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법농단 재판 2라운드에 접어든 지금, 놓지 말아야 할 지점들이다. 고한솔 <한겨레21> 기자 sol@hani.co.kr
▶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진실을 밝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법정 르포 방식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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