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파도가 신안 갯벌에 음각한 나무 한 그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바닷물이 밀려나자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거대한 진회색 나무 한 그루가 형태를 드러냈다. 퇴적물이 쌓인 진흙 위를 서해 파도는 부지런히 들고 나며 줄기와 기둥을 음각했다. 석양이 드리워지자 나무는 더 선명해졌다. 해 질 무렵 썰물 때에 찾은 5월 신안 갯벌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신안 갯벌.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갯벌은 수많은 동식물의 서식지이며 철새들의 사냥터이자 어민들의 일터다. 갯벌은 오염물질을 거름종이처럼 걸러내 흡수·분해하고, 식물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만들어내 ‘숨은 숲’ 역할을 한다. 한국의 갯벌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생물종 다양성을 보여 산호·게 등 저서동물과 함초 등 염생식물과 큰고니 등 멸종위기종의 터전이다.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1헥타르당 9990달러(약 1110만원)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청과 해양수산부는 오는 7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자연유산 자문·심사기구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한국의 갯벌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기준 중 ‘생물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자연 서식지’의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충분히 범위가 넓지 못하다는 이유로 ‘반려’ 의견을 낸 상태다.
현재 한국의 갯벌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간척사업 등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18년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갯벌 면적은 2482㎢로, 5년 전인 2013년보다 5.2㎢ 줄었다. 여의도 면적의 1.79배나 되는 갯벌이 5년 사이 사라진 것이다. 뒤늦게 심각성을 느낀 정부는 2020년 1월 ‘갯벌 및 그 주변지역의 지속가능한 관리와 복원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갯벌의 보전·관리·복원을 위해 한걸음을 내디뎠다. 기후위기에 맞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심고 숲을 가꾸듯 ‘숨은 숲’ 갯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신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21년 6월 4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