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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단독] 생리대 역학조사 책임연구자 “왜 정부는 발표를 두려워하는가”

등록 2022-02-25 04:59수정 2022-02-26 02:30

1월 최종검토 완료 뒤도 ‘비공개’ 지속
4년간 1·2차 조사 결과, 지난해 4월에
“일회용 생리대, 생리증상에 영향” 도출
연구자, ‘정부 결과왜곡 시도’ 직접 비판
“원하는 결과 안 나오니 다른 연구팀 찾아”
식약처 등 “조사결과에 이견 있어 협의 중”
여성환경연대가 2017년 8월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여성환경연대가 2017년 8월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8년부터 진행해 온 생리대 건강영향조사 결과의 추가 분석과 검토가 완료됐으나 정부가 사실상 이를 부정한 채 추가 연구용역을 통해 다른 결론을 도출하려던 움직임까지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와중에 책임연구자가 직접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문제를 고발하고 나섰다. 정부 조사 결과가 도출된 건 지난해 4월로, 지난해 11월 <한겨레> 보도로 일회용 생리대가 외음부에 생리 관련 증상 발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비로소 알려졌다.

24일 <한겨레> 취재 결과, 2018∼21년 진행된 ‘1·2차 생리대 건강영향조사’의 결과를 지난해 4월 도출하고, 결과 발표를 위한 추가 단계로서 민·관공동협의회(민관협의회) 검토까지 지난 1월 마쳤으나 이조차 결과대로 공개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닿고 있다. 4년에 걸친 조사에선 일회용 생리대 사용이 외음부의 가려움증·통증 등 생리 관련 증상 발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생리대 사용량과 일부 유해물(휘발성 유기화합물) 노출량 등이 생리 관련 증상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라는 요지로, 일회용 생리대 사용과 질병 발생 간의 연관성까진 드러나지 않았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4월 조사결과를 종합 발표하기로 했으나 내부 이견을 들어 해를 건너뛰었다. 1·2차 조사의 책임 연구자인 정경숙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한겨레>에 “식약처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애초 민관협의회 검토가 마지막 단계였고, 민관협의회에서 연구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정리됐다. 물론 이견도 있었지만 이 또한 소수의견으로 주요결과에 포함하기로 했다.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문구 조정까지 다 끝낸 사안을 다시 다른 전문가들에게 묻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절차”라고 비판했다.

조사 방법 합의 거쳤는데도 표본·방법론 모두 문제 삼아

나아가 식약처는 연구결과의 신뢰성을 문제삼으며, 1·2차 조사 데이터를 다른 연구진에 의뢰해 새로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추가 연구용역도 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식약처는 일회용 생리대에 부정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조사에 참여했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조사 방법의 적절성’을 문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1차조사(단면조사, 2018년 12월~2019년 12월) 때 전국 15∼45살 여성 1만6천여명을 대상으로 생리용품 사용실태 파악 및 관련 증상·질환을 설문조사했다. 2차조사(패널연구, 2019년 12월~2021년 4월)에선 패널 2600여명이 10개월간 작성한 생리일지로 생리용품 사용과 여성건강(불편 증상 등) 간 관련성을 평가했다. 정 교수는 “패널조사 참가자들은 10개월간 생리일지를 기록했다. 식약처 주장대로라면 2600여명의 참여자가 10개월간 생리하는 기간 동안 매일매일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1차 단면조사와 2차 패널조사 대상자가 다른데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식약처가 이제 와 갑자기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억지”라고 했다.

식약처는 조사대상자들이 실제 사용한 제품의 분석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는다. 통계분석에 사용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노출량이 실제 노출량이 아닌 추정값으로 과학적 인과성을 규명할 수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연구진은 2만명 가까운 조사대상자의 실제 휘발성 유기화합물 노출량값을 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연구팀은 식약처의 생리대 함유물질 분석 결과를 활용했다. 정 교수는 “처음부터 식약처의 자료를 쓰기로 하고 시작한 연구다. 착수보고회 등 조사 방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이제 와 표본부터 방법론까지 문제 삼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고 했다.

다른 한계도 쟁점이다. 연구진은 패널조사에서 생리대로 인한 증상을 호소한 이와 없다고 답한 이들이 실질적으로 염증이 있는지 조사했지만 두 표본간 큰 차이가 없었다. 즉 증상 호소군의 염증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식약처는 이를 조사결과보고서에서 앞세우라고 요구한 반면, 정 교수는 “역학조사가 메인이고 조사 참여자 수가 적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맞선다. 해당 조사의 표본목표는 200명이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60여명만 모집되었기 때문이다.

“수차례 재검증했지만, 민감한 사안이라 재검토 필요하다는 말뿐”

새 용역을 발주해 다시 분석을 맡기겠다는 식약처에 대해 정 교수는 “아무리 추가 분석해도 식약처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다른 연구팀을 찾겠다는 것 아니냐. 제3의 기관에 (해석, 분석을) 맡기자고도 해봤는데 식약처가 직접 용역을 발주하겠다고 했다.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어 반대했다”고 말했다. 1·2차 조사데이터가 공유되지 않으면 사실상 추가 용역은 전개되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정 교수는 연구결과의 초안이 나온 지난 5월부터 7개월에 걸쳐 식약처의 요구로 수차례 추가 분석을 한 바 있다.

식약처는 여전히 부처 간 협의 중이란 입장을 내놓았다. 식약처 바이오생약국 의약외품정책과 관계자는 <한겨레>에 “용역연구의 주관 부처는 환경부로 식약처, 질병청과 협의를 통해 발표하기로 정부 내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부처 간 논의 중인 건에 대해선 언론에 확인해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생리대 건강영향조사 주관 부처인 환경부 관계자는 “조사 결과에 대해 이견이 있어 협의하는 중이다. 생리대 관련한 주관 부처는 식약처이기 때문에 식약처와 충분히 협의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환경부와 국무조정실도 비판하며 “이미 수차례 추가 분석을 통해 재검증했고, 전문가로 구성된 민관협의회 검토까지 끝난 사안이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답변은 민감한 사안이라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말뿐이다. 역학조사 결과는 그 자체로 존중해주고, 식약처가 추후 기전연구(어떤 현상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 된다. 왜 정부 차원에서 발표를 두려워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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