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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성소수자 군인 색출, 반인권적” 대법 지적에도 사과 없는 군

등록 2022-05-03 04:59수정 2022-05-03 10:11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회원들이 2017년 5월2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군형법 92조의6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 해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회원들이 2017년 5월2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군형법 92조의6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 해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법원이 지난달 21일 동성 군인이 합의해 사적 공간에서 성관계를 했다면 군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 군인 색출 수사’의 반인권성·위법성도 함께 지적하면서, 위법 수사를 부인해 온 육군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원심을 파기환송한 이번 사건은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중수단)이 2017년 초에 벌인 ‘군 동성애자 색출 수사’에서 시작했다. 육군본부 중수단은 군형법 제92조6항의 ‘추행죄’를 위반한 성소수자 군인 적발에 나서 23명을 입건하고 9명을 기소했다. 이들 가운데 2명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이 파기환송됐고, 나머지 7명 중 4명은 1심에서 유죄(집행유예·선고유예)가 선고됐으며, 3명은 상급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영장 없이 전화 빼앗고, ‘아웃팅’ 협박까지

성소수자 군인을 지원하는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중수단은 당시 수사 과정에서 각종 반인권적 방법을 동원해 군인들을 압박했다. 중수단은 압수수색 영장 없이 임의로 성소수자 군인의 휴대전화를 빼앗는가 하면, 연락처가 저장된 지인 가운데 성소수자 군인이 누구인지 지목할 것을 요구했다. 또 성관계 때 성향·체위·콘돔 사용 여부 등에 대한 진술을 강요하고, 비협조적인 이들에게 ‘부대 내에 아웃팅(성 정체성을 강제로 알리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협박도 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군형법 추행죄를 적용한 수사가 인권을 침해·제한했다고 지적했다. 재판에 참여한 대법관 13명 가운데 8명은 “군인 간의 합의에 따른 항문성교와 그 밖의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은밀히 이루어진 경우 이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사생활 영역에 있는 행위에 대한 수사가 필수적인데, 이러한 수사는 군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허용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한 “(이 수사는) 중수단이 동성애자 군인들에 대한 정보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적극적으로 수사대상을 확대해 수십 명의 군인을 상대로, 은밀하게 이루어져 아무런 실질적인 문제를 야기하지 않고 있던 과거의 행위를 수사하고 십여명의 군인 등을 기소하면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4월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영외, 근무시간 외 동성 군인간 성관계 처벌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4월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영외, 근무시간 외 동성 군인간 성관계 처벌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선수 대법관은 별개의견에서 중수단의 수사개시 자체가 정당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대법관은 “기록상 당시 피고인들을 포함한 수사대상 군인 등은 별다른 문제 없이 복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일 뿐이고, 현행 규정 이외에 수사기관의 수사개시를 정당화할 만한 다른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며 “아무런 문제 없이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는 군인의 은밀한 사생활 영역을 파헤쳐 수사하고 처벌하는 것이 과연 군기의 확립과 보호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수사개시 자체가 정당하지 않았다

중수단 수사의 위법성은 대법원에 앞서 2018년 1월 있었던 이들 군인의 1심 판결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판결문을 보면, 제5군단 보통군사법원 재판부는 중수단 수사단계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 결과 등이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이유를 들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진술거부권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채 미리 확보한 자료를 내밀며 범죄혐의를 추궁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곧바로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아 피의자 신문을 진행했기 때문에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았다”는 판단이었다. 군검찰은 법원의 ‘위법수집 증거’ 판단을 인정하지 않고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지만,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이런 판단은 그대로 유지됐다. 다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군검찰 단계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는 적법한 증거라고 보고 성소수자 군인들에게 집행유예 등의 판결을 내렸다.

군인권센터는 중수단 관계자에 대한 징계와 육군의 공식적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수사의 위법성과 반인권성을 확인한 것이다. 군의 공식적인 사과와 당시 수사 관여자에 대한 징계는 군이 해야 할 최소한의 조처”라고 지적했다. 이런 요구에 육군본부는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을 존중하며, 판결 취지를 확인해 후속 조처 사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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