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n)번방’ 사건과 유사한 성착취물 유포 범죄가 최근 또다시 발생했다. 한겨레 자료
“지금 이 순간에도, ‘제2의 엔(n)번방’ 사건 가담자들은 (성착취 가해자인) ‘엘(닉네임)이 티브이(TV)에 나오게 됐다’며 흥분하고 있어요.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 잡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미디어플랫폼 <alookso>(얼룩소)의 원은지 에디터는 2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원 에디터는 3년 전 엔번방 사건을 처음 알린 ‘추적단 불꽃’ 활동가다. 그는 지난달 29일 <한국방송>(KBS)과 <얼룩소>가 이른바 ‘제2의 엔번방’ 사건을 처음 보도한 이후 경찰이 수사팀을 증원하고 법무부도 엄정 대응 의지를 밝혔지만, 가해자들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상황을 관전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 ‘엘’이 경찰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텔레그램을 탈퇴한 뒤에도 가담자들은 대화방에 남아 “보도 기념”이라며 성착취물 파일을 재공유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엔번방 사건을 추적한 원 에디터는 이번 제2의 엔번방 사건도 처음 공론화했다. 가해자 ‘엘’은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방식 등으로 다량의 성착취물을 제작해 텔레그램에 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 에디터는 “현재까지 피해자는 최소 6명, 성착취물은 350개, 이 성착취물이 공유된 텔레그램방은 3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들 대화방 가운데 참가자가 5천여명에 이르는 방도 있었다. 이번 사건에서 제작·유포·시청·소지 가담자는 최소치로 잡아도 5천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둘러싼 수사기관의 대응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엔번방 사건이 2019년 공론화된 뒤 엔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마련되고, 디지털 성범죄 수사를 위해 경찰의 위장수사까지 도입됐지만, 경찰의 초동 대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수사 체계는 (불법촬영물이) 유포되기 전에는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과가 사건을 맡고, 유포된 뒤에는 시도경찰청 사이버수사과가 사건을 맡는 구조”라며 “불법촬영물은 순식간에 유포될 수 있기 때문에 유포 여부로 수사주체를 나누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포 ‘협박’ 사건도 일선서 여청과에서 맡는데, 여청과가 향후 유포 가능성을 정확히 판단할 전문성과 능력을 갖췄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원 에디터는 사건 발생 이후 또다시 일고 있는 엔번방 방지법 실효성 논란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는 ‘엔번방 방지법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 법이 성착취물 유통 창구인 텔레그램을 제재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원 에디터는 “엔번방 방지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불법촬영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처음 유포된 뒤, 해당 영상물이 접근성 좋은 국내 커뮤니티에서 추가로 유포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 법 시행으로 인터넷 사업자의 불법촬영물 차단 의무가 강화되면서, 이전과 견줘 커뮤니티 등에서 불법촬영물이 비교적 조기에 차단되는 성과가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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