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나영 대표.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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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권리란 차별, 폭력, 강요, 사회적 낙인 없이 누구나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탐색하고 성관계를 결정하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누구나 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는 최근 몇년 동안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증진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해온 단체다. 성·재생산 건강은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를 가리킨다. 셰어는 ‘임신중지의 전면 비범죄화’를 요구해왔고, 나아가 성·재생산 권리가 의료, 교육, 노동, 사회복지 등 모든 생활 영역에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며 이를 보장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고 지적해왔다. 11월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셰어의 나영 대표를 만났다.
―최근 ‘섹스할 권리’, ‘성적 권리’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다.
“미투 운동을 비롯해서 반/성폭력 담론이 꽤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지만 그에 대한 정부 대책은 주로 사후적, 사법적 처리가 중심이었다. 피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피해자 지원이나 가해자 처벌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관계의 위계나 맥락보다는 행위의 정도나 방법 등을 중심으로 경중을 다루고 있어 (성기의) 삽입 여부를 중시한다든지, 단순히 나이, 장애 등을 ‘동의 역량’의 기준으로 놓고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더 폭넓은 차원의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 개인이 경험하는 성적 관계의 위계나 장애인, 청소년, 성소수자의 경험에 관해서도 질문해야 한다. 사회적 권리나 자원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거나 자기 이야기를 드러내기 어려웠던 사람들 말이다.” ―‘성적 권리’의 핵심은 무엇일까?
“성적 권리는 단순히 피해 당하지 않을 권리와 ‘결정할 권리’만 의미하지 않는다. 성적 권리는 국가와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존중받으면서 서로 같이 관계 맺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삶의 권리 일부이다. 그래서 일방적이면 안 되고, 차별이나 강요, 폭력, 낙인이 없어야 한다. 안정적 주거, 노동과 경제적 여건, 의사소통, 보건의료적 접근성, 정치제도적 조건을 요구하고 참여할 권리 등의 사회적·정치적 권리들도 성적 권리의 보장을 위해 중요한 요건이다.”
셰어가 만든 편견없는 성교육 가이드북 <에브리바디 플레져북>과 섹스빙고. 이 도구들은 위험과 원칙만을 강조하는 성교육이 아니라 당양한 관계와 성관계 방식, 몸과 감각에 대한 이야기와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성적 권리’를 하면 ‘문란함’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섹스를 금기시하거나 처벌의 영역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이들이 ‘성적 권리’에서 배제되어 불평등한 성적 관계의 조건에 놓여 있고, 자원과 정보가 부족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위계와 권력 관계 속에서 어떤 욕망이 인정되고 어떤 욕망은 낙인찍히거나 차별, 배제되는지 또는 왜 불평등한 성적 관계를 만드는 사회적 문제들은 소거되고 섹스만을 문제로 다루게 되는지를 제대로 살펴보자는 것이다.”
―최근 장애인의 성적 권리와 돌봄에 관한 이야기도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 같다.
“장애인, 특히 장애여성을 쉽게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만 대하거나 섹슈얼리티를 아예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월경을 시작할 때 즈음에 본인의 동의도 없이 불임수술을 겪는 장애여성도 있다. 성적 권리는 그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장애여성공감은 덴마크 국가사회복지위원회의 경우 이런 지원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례가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함께 소통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희롱, 성폭력 문제는 ‘성적 권리’와 연관시켜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신당역 사건 같은 경우도 여성노동자에게 차별적인 고용환경, 여성노동자 수가 절대적으로 적고 직장 안에서 위계가 너무나 분명했던 가운데 발생했다. 이런 노동 환경이 남성 노동자에 의한 성희롱, 젠더 폭력이 가능한 상황을 만든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성적 권리에 대한 논의는 이런 조건들을 더 살필 것을 요구한다.”
―학교에서도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겠다.
“학교 성교육도 이성애적 관계를 전제로 무엇이 위험하고, 무엇이 안전한 섹스인지만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다양한 성적 정체성, 자기 몸에 대한 탐색, 관계맺기의 여러 맥락이나 권리에 대해서는 잘 다뤄지지 않아 단편적이고 편협한 교육에 머물고 있다.”
―셰어가 만든 <에브리바디 플레져북> 같은 새로운 가이드북 같은 시도가 중요해 보인다.
“이 책은 각자에게 몸에 대한 인식이나 관계맺기의 방식, 경험, 감각의 맥락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그것을 찾아보게 해주는 워크북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해보면 서로 다양한 경험과 감각의 차이를 발견하고 동의나 관계맺기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단지 위험과 안전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계맺기에서의 존중과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다.”
―지금 가장 시급한 법, 제도가 있다면?
“셰어는 성·재생산 권리보장 기본법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성·재생산 권리 보장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포괄적 성교육을 보장해야 한다. 학교 교사, 의료보건인력, 사회복지 영역의 활동보조인 등의 교육도 포함한다. 대만의 경우 성평등 교육법이 존재한다. 이 법에 따라 국가가 포괄적인 성교육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교육과정과 교육 연수를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대만에서도 다양한 백래시가 있지만, 이 제도로서 국가의 책임이 계속 확인되는 것이다. 스페인은 아동·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 성·재생산 건강 및 자발적 임신중단에 관한 법 개정안을 내각에서 승인했다. 이렇게 각국에서 조금씩 권리의 내용들을 넓혀 보장하려는 움직임들이 있다. 성적 권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것으로, 법·제도는 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장해야 한다. 욕망을 인식하고 대화를 시도하며 얘기할 사회적 장을 만들지 않으면 오히려 불평등과 낙인이 발생하고 위험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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