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정책을 만들기 위한 심의·조정 기구인 ‘중앙성별영향평가위원회’(중앙위원회)가 위축될 상황에 놓였다. 범 정부 차원에서 ‘위원회 통폐합’이 추진되는 과정에, 여성가족부가 중앙위원회를 ‘비상설’로 전환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했기 때문이다. 성평등 정책 추진 주무 부처인 여가부가 오히려 이를 후퇴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가부 관계자들은 최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돌며 ‘성별영향평가법’ 개정안을 설명하며 법안 통과에 협조를 구하고 있다. 개정안엔 ‘여성가족부 장관이 필요한 경우 중앙위원회를 구성·운영할 수 있는 위원회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앙위원회는 고용·복지·보건 등 정부 정책 수립·집행 과정에 성평등적 관점이 반영될 수 있도록 조정·심의하는 기구로, 현행법은 이 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운영할 수 있다’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여가부가 중앙위원회를 비상설화하는 법 개정에 나선 것은, 최근 정부의 위원회 통폐합 움직임에 따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효율적인 정부 위원회 폐지를 주문한 뒤, 정부는 각 부처의 위원회 636개 중 246개(39%)를 폐지·통합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조직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비상설화하는 것일 뿐, 기능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다양한 전문가 풀을 구성해 (그때그때) 안건의 내용에 따라 위원을 위촉해 운영함으로써, 심의의 전문성·효과성을 제고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앙위원회의 비상설화가 정부의 성평등 정책 후퇴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김희경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위원회가 비상설화된다면, 힘이 빠져 부처에서도 위원회의 권고를 듣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성별영향평가를 두고도 ‘여성에게 예산을 몰아주기 위한 것’이란 오해가 팽배한 상황에서, 여가부가 이런 오해를 해소할 노력을 하기는커녕 (위원회의 힘을 빼) 성평등 정책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여가부의 주장과 달리 중앙위원회를 비상설화하는 게 오히려 더 ‘비효율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송주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중앙위원회는 매년 꾸준히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며 “(법이 개정되면) 민간위원 선정 및 해산을 매년 3∼4회에 걸쳐 반복해야 하고, 회의 안건과 관련된 분야에 있는 민간위원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회의 개최가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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