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18일 서울 중구 신당역에 마련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같은 달 14일 신당역에서 순찰 중이던 여성 역무원을 남성 직장 동료가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스토킹 범죄에 대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안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었다. 지난해 9월14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 후 약 9개월 만이다.
국회 법사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스토킹 범죄에 적용하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한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한 반의사불벌죄 조항 탓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할 경우 형사처벌이 어렵고, 2차 피해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개정안은 21일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해야 입법이 확정된다.
개정안은 확정 판결 전이라도 법원이 피해자 보호 등을 위해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 스토킹 범죄자에게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또 스토킹 범죄 유형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제3자에게 개인·위치정보의 제공·배포·게시 행위 등을 추가해 ‘온라인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스토킹 피해자는 물론 피해자의 동거인이나 가족들도 보호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100m 이내 접근 금지 등의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적 장치도 강화했다.
스토킹 처벌법이 개정된 건, 이 법이 시행된 지 1년 8개월여 만이다. 사실 여성계 쪽에선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반의사불벌죄 조항 도입에 반대했다. 주로 ‘아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피해자가 폭행, 협박 등 추가 피해를 우려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를 제대로 밝히기 어렵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요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법 제정 직후에도 스토킹 유형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해 처벌이 어렵고, 스토킹 피해자의 동거인과 가족에 대한 보호조치가 부족하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예고된’ 제도의 구멍 속에, 스토킹 처벌법 시행 한 달 만인 2021년 11월19일,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에서 스토킹 가해자인 김병찬이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등 스토킹 피해자나 그의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범죄가 계속 발생했다. 사건 발생 당시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약속했고, 법무부는 첫 업무보고에서 신속한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 개정은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가 뒤늦게 법 개정 논의에 나선 건,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하며 질타하는 여론이 고조된 데 따른 것이다. 법무부는 사건 한달 뒤인 지난해 10월21일∼11월14일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데 이어, 올해 2월15일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법사위는 이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어 지난 19일까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 32건과 함께 정부안을 심사해 최종 개정안을 마련했다.
여성계에선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9개월 만에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데 대해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스토킹 범죄 피해자들이 숨진 뒤에야 법이 개정됐지만, 정부가 약속했던 대로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하고, ‘온라인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 등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다만 향후 추가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보호조치를 하지 않을 때 피해자와 대리인이 직접 법원에 보호조치를 청구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명령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으로 들었다. 그는 “새로운 스토킹 행위가 발견될 때마다 법에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주는 행위’와 같이 스토킹을 포괄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규정 신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확정 판결 전 스토킹 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 내용과 관련 “전자발찌 부착이 재발 방지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인데,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자칫 기존의 체포·구속과 같은 강제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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