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예장동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 설치됐던 임옥상 작가의 작품 ‘세상의 배꼽’이 5일 오전 철거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성추행’ 작가 작품 지키는 여성단체들.’
조선일보 5일치 신문 1면 제목이다. 2면으로 넘어가면 ‘박원순·오거돈 성추문 때 침묵한 단체들 들고 일어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이어진다. 신문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들이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임옥상 작가가 참여한 ‘위안부’ 피해자 추모 공원 ‘기억의 터’ 철거를 반대한 것을 두고 ‘선택적 분노’라고 비판했다.
과연 그럴까. 지난 4일 새벽부터 ‘기억의 터’ 철거를 막기 위해 모인 여성단체 사람들 가운데 임씨의 성추행 혐의를 부정하거나, 임씨의 작품을 지키자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들은 도리어
“우리는 자신의 성폭력을 감추고 여성인권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에 참여한 임옥상을 규탄한다”, “성추행 가해자 임씨의 작품 철거 검토에 대해 환영한다”고 외쳤다.
여성단체들이 철거를 막아선 것은 ‘임옥상’과 기억의 터를 등치시킬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기억의 터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여러 작가 및 활동가 그리고 2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상징물이다.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은 “(기억의 터) 건립 추진위원회와 시민·여성단체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임씨의 성폭력을 단호히 규탄하고, 일본군 위안부 역사와 성폭력의 역사를 모두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는 방안을 공론의 장에서 먼저 마련하자고 (서울시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논의도, 대안도 없이 ‘기습 철거’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이런 사정에는 눈을 감고 여성단체가 ‘진영논리’에 따라 비판의 잣대를 달리하고 있다고 몰아갔다. 여성단체의 철거 반대는 ‘자기편’인 임옥상을 감싸기 위한 것이며, 과거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폭력 논란 때도 이들이 ‘침묵’으로 자기편을 옹호했다는 논리 전개가 이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사실과는 다르다. 두 전직 시장의 성폭력 사건 당시 피해자와 기자회견을 열어 사안을 공론화한 것은 바로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그간 이들의 회견을 ‘적극적’으로 보도해왔는데, 늘 피해자 옆에 함께했던 여성단체들은 보지 못했던 것일까.
조선일보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시민들’을 인용해 “여성단체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기사를 마무리했다.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사실관계를 취사선택한 조선일보야말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