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시설 ‘몬트로즈 센터’ 문 앞에 “여기 오신 모두를 환영한다”는 팻말이 걸려 있다. 휴스턴/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텍사스에는 희망이 없어. 거긴 성소수자가 살 만한 곳이 못 돼.”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국제 성소수자 인권 회의 ‘인터프라이드 콘퍼런스’에서 만난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는 텍사스주의 성소수자 인권 상황을 딱 잘라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보수’로 꼽히는 텍사스주는 ‘성소수자 차별법이 140여개나 있다’고 분석될 정도로, 성소수자 배척이 심한 지역이다. 캘리포니아주는 ‘성소수자 차별법을 시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2016년부터 텍사스주로의 공무 출장을 금지했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 정부와 주 의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탄압하는 법안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2021년엔 트랜스젠더 여학생의 스포츠 경기 참여를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됐고, 지난 7월엔 공립학교 도서관에 성소수자 관련 도서를 비치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9월에는 미성년 트랜스젠더의 성별 확정 수술과 호르몬 대체요법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됐다. 호르몬 대체요법을 받고 있던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위기 상황에 놓였다. ‘텍사스 라틴 트랜스젠더 협회’의 히아 파체코 프로그램 책임자는 “일부 청소년은 위험한 걸 알면서도 암시장이나 멕시코에서 호르몬을 구하기도 한다. 현재 어떤 해결책도 없다”고 말했다.
■ “성소수자 차별법, 통과되면 소송이라도 내서 막는다”
텍사스의 대표적 성소수자 인권 비정부기구(NGO) ‘이퀄리티 텍사스’는 성소수자 차별법을 막아내기 위해 입법 로비는 물론, 공직 후보자 지지·낙선 운동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브래드 프리칫 이사는 “이미 통과된 법이라도 소송을 내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텍사스 상원을 통과한 ‘차별 면허법’을 하원에서 부결시킨 것이 대표적 성과다. 사회복지사와 변호사 등 자격증을 가진 전문직 종사자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성소수자 등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한 이 법을 비롯해, 이퀄리티 텍사스는 2019년 주 의회에 제출된 성소수자 차별 법안 20개 가운데 무려 19개를 부결시키는 데 기여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휴스턴 주립대학교 도서관에 ‘성소수자 역사의 달’인 10월을 기념해 역사적인 성소수자 활동가들을 기념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휴스턴/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 휴스턴에 싹트는 ‘저항’
텍사스주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최대 도시 휴스턴에선 성소수자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법학전문대학원의 윌리엄스연구소에 따르면, 휴스턴의 성소수자(LGBTQ) 인구는 16만9천명(2021년 3월 기준). 댈러스·포트워스(21만1천명)에 이어 성소수자 인구가 두번째로 많다는 게 영향을 끼친 듯하다.
한 예로, 휴스턴 주립대는 지난 7월 통과된 성소수자 관련 도서 비치 금지법에 대한 항의로,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10만권이 넘는 성소수자 관련 기록을 지역 주민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나섰다. 조이스 가비올라 휴스턴대 도서관 성소수자 역사 기록관은 “텍사스는 미국에서도 금서로 지정된 도서가 제일 많은 주다. 금서로 지정된 책 가운데 성소수자 관련 도서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록의 힘은 강력하기에 성소수자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해 일반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텍사스 라틴 트랜스젠더 협회 사무실에 혐오 범죄, 극단적 선택 등으로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들을 기리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휴스턴/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지역 경제단체들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450여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휴스턴 권역 성소수자 상공회의소’는 공립학교 도서관 내 성소수자 관련 도서 비치 금지 법안 반대를 위해, 정·재계에 입법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다. 레이 퍼서 대정부 협력 이사는 “(이런 활동이) 사업에 이익이 되지 않을지라도 교육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디즈니의 최고경영자(CEO) 밥 체이펙이 학교에서 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한 이른바 ‘돈트 세이 게이 법’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뒤, 플로리다주 하원이 1967년부터 유지됐던 디즈니랜드 부지에 대한 조세 우대를 폐지했음에도 물러서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언급했다.
갈 곳 없는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활동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휴스턴에 위치한 텍사스 라틴 트랜스젠더 협회는 갈 곳 없는 성소수자에게 한번에 최대 20명까지 긴급 주거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에 필요한 행정적인 절차 등을 돕고 있다. 휴스턴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쉼터 ‘해치유스’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해 집을 떠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해치유스의 케네디 로프틴 개발책임자는 “현재 청소년 성소수자 200명 정도를 돕고 있는데,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휴스턴에만 1200~1600명가량의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거리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소수자 인권이 공격받고 있지만, 휴스턴의 활동가들은 그래도 희망을 본다. 로프틴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 계속되고 성소수자 관련 시설들이 폐쇄될 때마다 성소수자 조직이 더 많이 생겼다”며 “탄압에 저항하면서 성소수자 인권의 싹이 튼다”고 말했다.
휴스턴/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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