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슈
‘혜화역 시위’를 보는 부모세대의 한 시각
‘혜화역 시위’를 보는 부모세대의 한 시각
▶ 지난 7일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3차 시위(일명 ‘혜화역 시위’)가 인터넷 카페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렸다. 1차 1만2천여명, 2차 2만2천여명, 3차 6만여명(주최 쪽 추산) 등 시위 참가 인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한편, 참가 자격(‘생물학적 여성’),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 구호, 사회 통념상 일부 ‘과격한’ 표현 등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가 혜화역 시위를 바라보는 ‘부모세대’의 한 시각을 전해왔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에서 다음 카페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린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이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의미로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민주주의 헌법 이후 태어난 첫 세대’
현실은 헌법·법률과 거리 멀어
부모세대가 만든 사회구조 속
청년세대 남성·여성 갈등 커져 세월호·강남역 살인사건 거치며
무능하거나 악한 정부에 분노
‘사태 이 지경 만든’ 모든 권위 거부
부모세대 향한 도전장 계속될 것 “그들의 언어 불편하고 낯설지만
광장에서 말 걸어줘 고마워” 부모세대들에게도 이 사건들은 고통스럽거나 최소한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세대들에게 남긴 깊은 낙인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홍대 사건에 이러한 해석을 투영하는 것에 찬성을 하든 그렇지 않든, 이 세대들이 공유하는 무능하거나 악한 정부에 대한 분노는 이 정부를 만들거나 방조했던 부모세대에 대한 분노와 함께 오래도록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될 것 같다. “당신들이 아직 할 말이 남았는가?” ‘혜화역 시위’ 참여자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의 코드가 있다. ‘노(No) ’ 등으로 표현되는 ‘기존 권위에 대한 거부’다. ‘노 ’이라는 말은 이 세대들에게 ‘전문시위꾼’의 배격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런 정서는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2014년 세월호 참사 시위, 2016년 이화여대 학내분규 당시 집회에서도 나타났다. 이 경향은 특정 정치집단과 연계된 것으로 오인받아 당하게 될 부당한 피해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장치의 성격을 갖지만, 그 이면에는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기존 권위’들에 대한 거부감이 놓여 있다. 이런 정서는 젊은 여성들만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세대들의 보편적 정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이르는 과정은 이런 정서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훈장질’ ‘씹선비’ 등의 온라인 용어는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촛불 이후 보수·진보를 망라한 기성 언론에 대한 ‘댓글러’들의 태도, 소위 ‘전문가’들에 대한 거부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수개월 동안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를 밝히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난맥상을 확인한 시민들의 실망과 좌절, 분노가 기존의 모든 권위에 대한 불신으로 귀결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정서 상태가 발현되는 한 양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민주화 이후 세대에게는 “내가 앞으로 당신들보다 더 오래 살아가야 할 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만든 기성세대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교수, 법조인 당신들이 이 상황에서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나?” 혹은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공자왈 맹자왈 하는 당신들 말을 아직도 믿어야 하나?”라는 강한 불신의 정서가 읽힌다.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하라’는 미국의 ‘68혁명’ 당시 구호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침략전쟁은, 그때까지 ‘68혁명’ 세대가 정당하다고 교육받고 자라온 기성 체제를 모두 거짓으로 만들어버렸고, 이 세대는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모든 영역에서의 기존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혜화역 시위’는 한국의 민주화 이후 세대들이 부모세대에게 내민 하나의 도전장일 뿐,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도전장이 더 던져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 그래서 나는 혜화역 시위에 나오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사실 난 혜화역 시위 현장에서 외쳐지는 구호나 피켓에 적힌 슬로건, 퍼포먼스들이 낯설고 불편하다. 그 언어들은 내가 사용해온 언어들과 이질적이어서 불편하고, 부모세대의 일원인 나에게 던져지는 화살 같아 불편하고, 결국엔 부모세대로 오는 게 맞는 화살들이 엉뚱한 곳에 쏘아지고 있는 것 같아 불편하다. 그 광장에서 당신들만 공유하는 언어로 이야기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맥락에서 환호성을 지를 때는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특히 당신들만의 ‘우리’에 속하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그 경계 어린 시선은, ‘몰카’라는 소재가 갖는 상징성이나 잠재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고려하더라도 참 불편하다. 나이만 들었을 뿐 생물학적 여성인 나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신들이 그 광장에서 내게 말을 건넬 용기를 가져주어서 고맙고, 내게 ‘당신들의 말이 아직은 불편하다’는 말을 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 우리는 아직 먼 거리에 서 있고 서로가 낯선 존재들이지만, 당신들의 말 걸기로 대화는 시작될 수 있었다. 부탁이 있다면, 조금만 더 친절한 언어로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내가, 당신의 부모세대들이 조금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도 우리의 언어로나마 당신들을 이해하려고 용기를 내다 보면 그렇게 어딘가에서 만나지지 않겠는가. 우리들 사이의 긴 대화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서복경/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 추모행동 행사가 열린 지난해 5월17일 저녁 참가자들이 강남역 주변 거리에서 침묵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 추모행동 행사 참가자들이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국화를 헌화하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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