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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혜화역 시위, 그들의 언어는 왜 낯설고 불편한가

등록 2018-07-13 16:25수정 2018-07-13 21:40

[토요판] 이슈
‘혜화역 시위’를 보는 부모세대의 한 시각
▶ 지난 7일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3차 시위(일명 ‘혜화역 시위’)가 인터넷 카페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렸다. 1차 1만2천여명, 2차 2만2천여명, 3차 6만여명(주최 쪽 추산) 등 시위 참가 인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한편, 참가 자격(‘생물학적 여성’),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 구호, 사회 통념상 일부 ‘과격한’ 표현 등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가 혜화역 시위를 바라보는 ‘부모세대’의 한 시각을 전해왔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에서 다음 카페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린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이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의미로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에서 다음 카페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린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이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의미로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최근 일명 ‘혜화역 시위’(불법촬영에 대한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매일 관련 기사가 뜨고 찬반을 떠나 수천개의 댓글이 달린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도 이 사건으로 어수선하다. 이 글은 이 새로운 사회현상이 담고 있는 시대적 코드를 통해 나를 비롯한 부모세대에게 던지는 함의를 생각해보려는 시도다. 내 동년배들의 반응은 “대체, 왜?” “뭐지?” 정도로 집약된다. 잘 모르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이 현상은 내 자녀이기 이전에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 수만명이 다른 시민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불러냈고, 이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의 다양한 갈등은 왜 일어나는 것인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민주화 이후 세대들의 지난 30년

‘혜화역 시위’ 주 참여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익숙한 10대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현재 30살 이하 연령층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헌법을 채택한 이후 태어난 세대’라는 중요한 사회적 정체성을 갖는다. 이들은 독재나 권위주의에 대한 기억이 없이 자라 성인이 되었거나 되고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세대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적어도 ‘책으로는’ 온전히 교육받은 첫 세대지만 이들이 학교에서부터 접한 사회는 책과 달랐다.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구조에 개인적 노력만으로 적응하도록 요구받았고, 초등학교 때부터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이 이들의 삶을 지배했다. 이곳에 자유나 인권, 평등은 낄 곳이 없었다.

그들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이 사회에 그 세대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학교를 벗어나 대면했던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시장의 분절화 및 임금 격차와 노동환경 격차, 작업장 내 성별 분업과 기회구조의 차별, 부모세대로부터 층층이 이어져 내려오는 비인격적이고 불평등한 문화가 온존했다. 이들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다는’ 그 명목상의 권리와 직접 대면한 현실 사이의 괴리에 분노와 좌절감을 내면화했다. 이런 정서는 이 세대들이 공유하는 시대적 코드다. ‘헬조선’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 지역과 성별, 이념을 가리진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부터 온라인 공간이 활성화되면서 이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을 온라인에서 공유해 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불합리한 사회구조는 성별 갈등으로 전치되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어느 세대보다 적은 정치·사회적 기회가 주어진 이 청년세대들이 점점 좁아지는 사회진입의 문 앞에서 좌절을 거듭하면서 만들어낸 온라인 전투는 치열했다.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되고 군가산점 제도가 폐지되면서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비판적 인터넷 카페들이 등장했고 2006년 ‘남성연대’라는 단체도 만들어졌다. ‘된장녀’, ‘김치녀’ 등의 언어가 등장했고, 여성 온라인 이용자들의 반격도 확산되었다. ‘남초’, ‘여초’ 커뮤니티들 사이에 벌어지는 온라인 전투는 그 후로도 오랜 역사를 갖는다.

이 세대 여성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느낀 언어와 문화, 구조적 차별에는 그들의 동년배 남성들이 아니라 부모세대의 책임이 깊다. 부모세대의 어떤 선택들이 위계화되고 서열화된 사회구조를 만들었고, 그 최하층 말단에 눌린 청년세대 남성과 여성들은 혼탁해진 정치언어들 속에서 서로를 향한 갈등의 언어들을 개발해 나갔다. 2015년 ‘메갈리아’의 등장,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한다)과 ‘미러링’(상대의 문제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저항방식)은 새로운 사태의 출발이기 전에 오래된 구조의 산물이었다.

무능하거나 악한 정부에 대한 분노의 기억

왜 이 시위 참여자들은 2018년 봄부터 거리로 나왔을까? 주최 쪽은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몰카) 사건’에 대한 경찰의 ‘편파 수사’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에 대한 참여자들의 해석 코드다. 참여자들은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과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해석에서 코드를 빌려온다.

세월호 참사가 던진 파장 중 하나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스펙트럼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 이전에는 재해나 재난사고로부터의 안전만이 아니라 작업장 안전, 여성 안전, 아동과 청소년의 안전, 소비자 안전, 위해한 환경으로부터의 안전 등은 시민 개개인이 주의하고 조심해야 하는 사적 영역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와 안전이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국민의 ‘권리’로 인식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안전권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국민의 안전할 권리,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할 책임에 대해 무능하거나 악의적으로 회피했던 정부,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들이 일선에 나서 정부와 직접 대면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기억, 그럼에도 함께 연대했던 시민들의 힘을 확인했던 경험은 ‘세월호 사건’과 ‘강남역 살인사건’을 관통했던 코드다. 현재 ‘혜화역 시위’ 참여자들이 홍대 사건에 투영하고 있는 해석의 코드 역시 같다. 어떤 사회적 사건이 집단행동으로 연결되려면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해석이 중요한데, ‘혜화역 시위’ 참여자들은 지난 몇년간의 고통스러운 사회적 경험으로부터 그 코드를 얻은 것이다.

10대~30대 초반 시위 참여자들
‘민주주의 헌법 이후 태어난 첫 세대’
현실은 헌법·법률과 거리 멀어
부모세대가 만든 사회구조 속
청년세대 남성·여성 갈등 커져

세월호·강남역 살인사건 거치며
무능하거나 악한 정부에 분노
‘사태 이 지경 만든’ 모든 권위 거부
부모세대 향한 도전장 계속될 것

“그들의 언어 불편하고 낯설지만
광장에서 말 걸어줘 고마워”

부모세대들에게도 이 사건들은 고통스럽거나 최소한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세대들에게 남긴 깊은 낙인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홍대 사건에 이러한 해석을 투영하는 것에 찬성을 하든 그렇지 않든, 이 세대들이 공유하는 무능하거나 악한 정부에 대한 분노는 이 정부를 만들거나 방조했던 부모세대에 대한 분노와 함께 오래도록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될 것 같다.

“당신들이 아직 할 말이 남았는가?”

‘혜화역 시위’ 참여자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의 코드가 있다. ‘노(No) ’ 등으로 표현되는 ‘기존 권위에 대한 거부’다. ‘노 ’이라는 말은 이 세대들에게 ‘전문시위꾼’의 배격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런 정서는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2014년 세월호 참사 시위, 2016년 이화여대 학내분규 당시 집회에서도 나타났다. 이 경향은 특정 정치집단과 연계된 것으로 오인받아 당하게 될 부당한 피해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장치의 성격을 갖지만, 그 이면에는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기존 권위’들에 대한 거부감이 놓여 있다.

이런 정서는 젊은 여성들만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세대들의 보편적 정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이르는 과정은 이런 정서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훈장질’ ‘씹선비’ 등의 온라인 용어는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촛불 이후 보수·진보를 망라한 기성 언론에 대한 ‘댓글러’들의 태도, 소위 ‘전문가’들에 대한 거부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수개월 동안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를 밝히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난맥상을 확인한 시민들의 실망과 좌절, 분노가 기존의 모든 권위에 대한 불신으로 귀결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정서 상태가 발현되는 한 양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민주화 이후 세대에게는 “내가 앞으로 당신들보다 더 오래 살아가야 할 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만든 기성세대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교수, 법조인 당신들이 이 상황에서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나?” 혹은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공자왈 맹자왈 하는 당신들 말을 아직도 믿어야 하나?”라는 강한 불신의 정서가 읽힌다.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하라’는 미국의 ‘68혁명’ 당시 구호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침략전쟁은, 그때까지 ‘68혁명’ 세대가 정당하다고 교육받고 자라온 기성 체제를 모두 거짓으로 만들어버렸고, 이 세대는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모든 영역에서의 기존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혜화역 시위’는 한국의 민주화 이후 세대들이 부모세대에게 내민 하나의 도전장일 뿐,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도전장이 더 던져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

그래서 나는 혜화역 시위에 나오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사실 난 혜화역 시위 현장에서 외쳐지는 구호나 피켓에 적힌 슬로건, 퍼포먼스들이 낯설고 불편하다. 그 언어들은 내가 사용해온 언어들과 이질적이어서 불편하고, 부모세대의 일원인 나에게 던져지는 화살 같아 불편하고, 결국엔 부모세대로 오는 게 맞는 화살들이 엉뚱한 곳에 쏘아지고 있는 것 같아 불편하다.

그 광장에서 당신들만 공유하는 언어로 이야기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맥락에서 환호성을 지를 때는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특히 당신들만의 ‘우리’에 속하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그 경계 어린 시선은, ‘몰카’라는 소재가 갖는 상징성이나 잠재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고려하더라도 참 불편하다. 나이만 들었을 뿐 생물학적 여성인 나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신들이 그 광장에서 내게 말을 건넬 용기를 가져주어서 고맙고, 내게 ‘당신들의 말이 아직은 불편하다’는 말을 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 우리는 아직 먼 거리에 서 있고 서로가 낯선 존재들이지만, 당신들의 말 걸기로 대화는 시작될 수 있었다. 부탁이 있다면, 조금만 더 친절한 언어로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내가, 당신의 부모세대들이 조금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도 우리의 언어로나마 당신들을 이해하려고 용기를 내다 보면 그렇게 어딘가에서 만나지지 않겠는가. 우리들 사이의 긴 대화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서복경/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 추모행동 행사가 열린 지난해 5월17일 저녁 참가자들이 강남역 주변 거리에서 침묵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 추모행동 행사가 열린 지난해 5월17일 저녁 참가자들이 강남역 주변 거리에서 침묵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 추모행동 행사 참가자들이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국화를 헌화하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 추모행동 행사 참가자들이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국화를 헌화하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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