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옥 한양대학교 교수의 편지
“미안합니다”, “용기내줘서 고맙습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용기있는 고발에 시민들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응원과 지지의 뜻을 담아 심 선수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전합니다. 처음 편지를 건넨 이는 백은옥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교수입니다.
심석희 선수에게, 안녕하냐는 인사도 하기 어렵군요.
저는 심 선수보다 나이 많은 딸을 둔 5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고, 공과대학의 학과라서 대다수가 남학생이고 적은 수의 여학생들이 힘들게 생활하는 것은 아닌가 늘 걱정하는 마음으로 살피는 편입니다.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게 조금 더 배려하는 정도이지만요.
이번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국가대표이지만 나이 어린 선수들이 합숙 훈련을 받으며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난 평창올림픽 등 세계적인 대회에서 대단한 성적을 거두는 빙상선수들에게 환호만 했다는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나이만 많이 먹은 어른이라서, 어린 선수들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이라서, 아주 많이 미안합니다.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지만, 이렇게 용기를 낸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고, 우리 모두가 정말 고마워 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의 성추행을 고발한 일이 대단했던 것 만큼이나 심석희 선수가 체육계의 성폭행을 고발한 것도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스스로를 믿고 심 선수를 응원하는 많은 국민들을 생각하며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다시 훈련에 복귀한다는 소식을 오늘 뉴스에서 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일을 놓지 않는 심 선수가 존경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이 애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편 드네요. 힘들고 아플 때는 좀 쉬고 주변의 도움도 구하고 그래도 됩니다. 그래야 더 오래 갈 수 있기도 하니까요.
심 선수에게 폭행을 가한 사람에게 가장 멋지게 복수하는 길은, 물론, 심 선수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심 선수는 이미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쇼트트랙 선수이고, 아직 나이가 어리니 앞길이 창창합니다. 심 선수가 마음껏 꿈을 펼치고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끝까지 응원할게요.
어여쁘고 강한 심석희 선수에게 사랑과 응원을 마음 한 가득 담아 보냅니다.
2019년 1월 10일
서울 방배동에서
백은옥
서울 방배동에서
백은옥
이슈한국판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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