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용씨가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등학생 시절 유도부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한겨레> 인터뷰 기사를 공유한 뒤 “용기를 잃지 말라”는 응원 댓글이 쏟아졌다.
전직 유도선수인 신유용(24)씨가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며 고등학교 시절 코치의 성폭행 가해 사실을 <한겨레>를 통해 세상에 알린 것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신씨는 14일 <한겨레>와의 추가 인터뷰에서 “어린 동생들이나 선수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신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 코치 ㄱ씨의 가해 사실을 공개한 적이 있다. 당시 한 언론사는 이 글을 신씨의 허락 없이 인용하며 ‘유도선수 A씨의 미투’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기사에는 “이름이라도 까고 말해라” 등의 댓글이 달렸고, 신씨의 상처는 더 커지기만 했다고 한다. 체육계의 폐쇄성 탓에 과거 동료와 자신을 가르쳤던 감독에게조차 도움을 받지 못했고, 지난해 3월 ㄱ씨를 고소한 사건의 수사도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최근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조재범 전 코치 성폭력 가해 고발 이후, 신씨의 답답한 마음은 오히려 커졌다고 했다. 심 선수의 고발 직후 나온 정부 대책도 그에게 위안을 주지 못했다. 지난 9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기자회견에서 체육계 성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된 이유에 대해 “피해자가 엄청난 용기를 내지 않으면 내부의 문제를 알 수 없는 체육계의 폐쇄적 구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해자의 고발 없이 성폭력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현실을 설명한 것이지만, 신씨에게는 무책임하게 다가왔다. 피해자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그 말은 진실에 가까웠다. 신씨는 여전히 세상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길 원했고, 신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 자신을 거는 것뿐이었다. 고민 끝에 <한겨레> 인터뷰에서 실명을 공개하기로 했다.
신씨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름과 얼굴을 공개해야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실명 인터뷰를 했다. 이름을 거는 것이 ‘나 자신을 걸고 말한다’는 의미로 비치기를, 그래서 조금 더 사람들이 믿어주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유용’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했다. 신씨는 “심석희 선수처럼 용기를 주고 싶었다. 이젠 내가 용기를 내 어린 동생들이나 선수들, 여자친구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지난해 11월과 반응이 달랐다. 신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한겨레> 기사에는 100개가 넘는 응원 댓글이 달렸다. 신씨는 “지난해 11월과 다른 반응에 놀랐다. 페이스북에 모르는 사람들도 찾아와 진심 어린 응원을 해줬다. 내가 공인도 아닌데 이름을 이렇게 걸고 보도가 되는 것이 맞느냐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어주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는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도 생겼다. 신씨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믿어주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 고소 이후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지금이라도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에서 부르면 성실하게 조사를 받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상황과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언론의 보도 방식이다. 피해 과정만 자세히 보도하거나 선정적인 제목을 달거나 허락 없이 신씨의 얼굴 사진을 앞세운 기사들이 앞다퉈 쏟아졌다.
신씨를 돕고 있는 박아무개씨는 “일부 언론이 조회수를 높이려고 자극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하고 허락 없이 신씨가 에스엔에스에 올린 사진을 기사와 함께 내보냈다”며 “이번 사건을 수익 창출을 위한 기회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박씨는 “신씨의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한 언론사 등에 대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윤정주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성폭력 사건의 경우 보도가 됐을 때 모두가 피해자 편이 아닐 수가 있다. 언론은 이 사실을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이야기해줄 의무가 있다. 피해자들은 언론에 공개되면 사건이 금방 해결될 것으로 믿지만, 오히려 독이 되어 피해자의 삶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언론이 피해자의 실명이나 사진을 공개할 때에는 2차 피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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