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여성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가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왜 체육계 성폭력은 반복되는가?’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용철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박다해 기자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근무공간 분리는 2차 피해를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처다. 체육계에선 지금까지 이조차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을 신고해도 수사나 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피해자는 가해자와 훈련을 계속해야 했던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왜 체육계 성폭력은 반복되는가’ 토론회에서 “그동안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었다”며 “징계를 받기 전이라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인권 규정, 윤리 강령 등은 있지만, 막상 성폭력 피해를 이야기했을 때 체육계 분들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며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단계적으로 보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현재 시행 중인 인권교육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 강사로 활동했었다는 ㅎ씨는 교육 인원을 기준으로 실적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교육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ㅎ씨는 “200∼300명, 많게는 1500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빙상연맹 지도자를 대상으로 교육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노동권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하자 담당자로부터 ‘불편한 이야기니 취소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로 강의가 취소됐다”며 “스포츠인권 강사 100여명이 있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어떻게 개선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달라”고 요구했다.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대책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온 사회가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도 피해 선수들만 발언하고 있다”며 “모든 정책에 선수, 학부모, 담당 코치, 감독 등 주체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5일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등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책임지는 자세에서 문제 해결은 시작될 수 있다”며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한편 이날 발제자로 나선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체육을 통해 국위 선양에 이바지한다”고 명시한 ‘국민체육진흥법’ 제1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제도나 대책이 나와도 국민 스포츠라는 정체성을 바꾸지 않는 이상 선수를 ‘수단’으로 바라보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해 생긴 체육계 안의 ‘학습된 무기력증’을 극복하는 과제도 제기됐다. 정용철 서강대학교 교수(교육대학원)는 “일단 내려진 징계가 번복되거나 가해자가 몇개월 만에 멀쩡하게 복귀할 때 무기력증이 증폭됐다”며 “무기력증을 떨쳐낼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은 (제대로 된 처벌을 통해) 승리의 기억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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