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1980년대 자신이 당했던 ‘성고문’을 공개 고발한 ‘미투 1호’ 당사자이자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연구한 학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제공
“저 작고 여린 여성.” 법정에서 그를 일컫던 표현이다. 당시에 사람들이 ‘성고문’ 피해자인 그를 떠올리면 기대하는 ‘어떤 모습’이 존재했다. 그래서였을까. 권인숙은 감옥에서 나와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어머, (생각보다) 키가 크시네요”라는 말을 듣곤 했다. 1986년 위장취업했다는 이유로 부천경찰서에서 수사를 받다가 성추행을 당한 권인숙은 가해자인 문귀동 경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오랜 법정 다툼 끝에 1989년 문귀동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 뒤에 권인숙은 여성학을 공부한 학자가 되었다. “그 여성분은 그 사건 때문에 인생 망쳤잖아요.” 몇 년 전에 한 팟캐스트에서 젊은 아나운서가 권인숙의 용기를 이야기하는 와중에 한 말이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강한 ‘사회적 낙인’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시대를 앞선 ‘미투’(Me Too) 운동의 당사자이자 ‘성폭력 피해자는 이래야 한다’는 통념을 연구해온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을 지난 21일 만났다. 권 원장은 지난해 1월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후에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법무부 및 산하기관에서 일어난 피해 경험을 조사하기도 했다.
―지난 1년간의 ‘미투’ 운동을 어떻게 보았나?
“성폭력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기준치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7월과 11월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만 봐도, 미투 운동에 대한 20대 여성의 지지율이 80~89%, 남성도 44~57%에 이른다. 낮지 않은 수치다. 조직 내 성폭력과 성차별, 그 밑바탕에 깔린 위계적인 사회 구조의 문제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생겼다고 본다. 당장 가해자를 처벌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성폭력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합리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본다.”
―학자로서 ‘피해자다움’을 오래 연구해왔는데.
“‘피해자의 모습은 이럴 것’이라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이 ‘피해자가 사실을 말하고 있느냐’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피해자라면, 성폭력을 당하자마자 절규하면서 경찰에 뛰어가거나, 그 일 때문에 세상과 문 닫고 사는 모습을 생각한다. 그 잣대로 김지은씨, 서지현 검사의 피해 사실을 의심하는데, 이건 성폭력에 대한 가장 낮은 수준의 접근이다. 피해자가 대응하는 모습은 동일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가벼운 성추행이라도 당사자에게는 처절할 수 있고, 심한 성폭력을 당한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피해자의 판단에 많은 맥락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모습을 통해 피해 사실을 유추해내는 건 위험하다. 경찰, 판사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한 까닭이다. 이러한 사회적 통념이 극복되는 과정이, 그 사회가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수준과도 연결된다.”
―서지현 검사를 포함해 많은 피해자들이 2차 피해의 고통을 호소한다.
“전형적인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의 2차 피해다. 피해자에 대한 평판이 피해 사실에 대한 지지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식이다. 법무부 조사 때도 전체 응답자(7407명)의 61.6%가 피해 경험이 있었다고 응답했다. 간담회에서도 ‘봤다’, ‘경험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서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고 공론화하는 것에 대해 강한 두려움과 불신이 많이 쌓여있었다. 피해자에 대한 신변보호가 안 되는 집단일수록, 피해자에 대한 엄청난 2차 피해가 사전 경험으로 누적된 조직일수록 피해자들의 ‘두려움’은 더 크다. 검찰 조직이 그랬다. 그동안 제대로 조사되거나, 가해자가 엄벌된 사례를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직 내 성폭력 문제는 일단 사건이 안전하게 제대로 처리된 선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 조직을 이끈 수장들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법무부에도 그런 제안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 정말 그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최근 스포츠계 미투가 잇따르고 있는데.
“신유용 전 유도 선수가 그렇게 절박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게 너무 가슴 아프고 슬펐다. 피해자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해도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우리 사회가 전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이 가진 파괴력이면서도, 한계인 듯하다. 신유용 선수가 얼굴을 드러내고 싸울 수밖에 없던 과정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계속 복기해봐야 할 것 같다. 2007년 농구계 성폭력만 해도 사회가 잠깐 반응하고 그냥 묻혀버렸다. 그러니 결국 심석희, 신유용 같은 개인들이 자기 인생을 걸고 미투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피해자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식으로 계속 갈 수는 없다. 개인이 앞으로 이걸 어떻게 감당할 지는 아무도, 함부로 예측할 수 없다. 이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피해자는 계속 나온다. 개인의 희생에 바탕한 미투 운동에만 의지하는 것은 사회가 무책임한 것이다. 미투 운동 덕분에, 한 국가와 사회로서는 훨씬 더 책임감 있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명분과 경험은 쌓였다. 조직의 수장, 관계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사건을 철저히 다룰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야 한다. 2007년의 무책임함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그때보다는 우리 사회의 대응 수준이 조금은 성숙해졌지만, 아직도 한시적인 대처에만 머무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근 미투, 디지털 성범죄, 낙태죄 등의 이슈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연결된 측면이 하나 있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여성들이 의식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해온 측면이 미투 운동을 통해 정점을 이룬 것 같다. 많이 당당해졌지만, 여전히 피해자가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과정이다. 자신이 굉장히 많이 파괴되는 경험을 해야하는 탓이다. 다만 확실히 달라진 것 같긴 하다. 예전에는 ‘어렵다’는 것,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죄의식만 강조됐다면, 지금은 집단 속에서 극복될 수 있다는 의지와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성폭력 피해 경험이 피해자들에게 새 지평을 여는 경험일 수 있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 ‘미투’하는 여성들에게, 앞서 가시밭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한마디해달라.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꾹꾹 눌러 담듯이) 개인의 피해 경험은 너무 다양한 맥락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피해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과도한 주문일 것 같다. 다만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대해 좀 너그럽고, 스스로를 지지했으면 한다. 그러려면 사회가 이들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 힘들게,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피해 사실을 공개한 신유용 선수 같은 피해자들에게 자신을 칭찬하라고, 당신이 옳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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