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용기가 만든 1년] 2018년 1월29일,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한국의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여성들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고발에 함께하겠다는 연대도 이어졌다. 이들의 말하기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묵인해온 비뚤어진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이제는 새로운 시민성이 필요하다는 외침이다. ‘미투’에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학내 성폭력 문제 등을 고발한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과 청소년인권단체 회원 등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는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에 '스쿨미투' 고발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모아 추가자료로 제출하겠다며 '스쿨미투, 유엔에 가다' 캠페인을 벌인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다음달 16일 전국적 규모의 '스쿨미투' 집회도 열 예정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성별을 기준으로 경계를 만드는 출석번호, 짝짓기, 체육시간에 반대합니다.”
“속옷이나 양말 색깔까지 지적하며 여학생의 몸을 검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생활지도 그만두세요.”
“왜 교과서에 나오는 여자 모습은 머리가 길고, 남자는 짧은가요?” “요새 여자애들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요? 입만 열면 성차별 발언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으니까요.”
“여성을, 성소수자를, 장애인을, 난민을, 빈곤인을, 소수자를 지우지 않는 교실이 필요합니다.”
교실 안 외침이 계속되고 있다. ‘미투’를 계기로 학교가,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느냐고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청페모)에 물었더니 “차별, 폭력, 혐오를 멈춰달라”는 절박한 답이 돌아왔다. 10대 청소년을 중심으로 30여명이 꾸려가는 청페모는 학교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 운동을 벌여왔다. 다음달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초청으로 유엔을 직접 방문해 ‘스쿨미투’ 운동에 대해 증언할 예정이다.
‘스쿨미투’는 진행형이다.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여 ‘미투’에 나선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는 지난해 8월 교원징계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 18명을 징계했다. 하지만 서울북부지검은 파면된 교사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교육부 산하 교원소청심사위원회도 이 교사에 대한 파면 징계를 취소했다. 청페모는 “재학생 160여명이 실명을 걸고 한 증언이, 그간 우리가 견뎌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이 어떻게 ‘증거 불충분’일 수 있냐”고 되묻고 있다. 이들은 30일 불기소·징계취소 처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양지혜 청페모 위원은 ‘스쿨미투’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공론화를 하면서 피해 당사자들이 너무 많은 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학교 안에 잔존하는 폭력적인 문화 자체를 뿌리 뽑기에 지금처럼 고발자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만 책임을 지는 형태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꾸준히 교육부에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이유다.
양 위원은 “전수조사를 하는 일이 (정부로선) 부담이겠지만 그 정도 결심만이 학교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가 앞장서 오히려 2차 가해를 했던 사건도 많고, 교육청 차원에서 해결되지 못한 사건도 많은데 (지금처럼) 개별 교육청에 위탁만 해선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교실 안에서, 용기를 낸 외침이 무력감으로 변하지 않도록 이들은 “정부가 좀 더 의지를 보여달라”고 다시 한번 외치고 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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