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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한국어 ‘#미투’ 게시글, 세계서 세번째로 많았다

등록 2019-05-24 19:44수정 2019-05-24 20:34

[#미투, 세계를 바꾸다]
미국서 열린 전세계 ‘미투’ 컨퍼런스
유엔이 분석한 ‘#미투’ 언급량 보니
한국어 게시글, 영어-스페인어 이어 3번째

미국 페미니스트 법률가 캐서린 매키넌
“불평등한 관계에선 ‘동의’도 강압적일 수 있어”
“강간죄 성립요건에 ‘동의’ 넣는건 충분치 않아”
“인종·계급·장애여부·성적지향 등 불평등 요소 포괄해야”
성희롱에 대한 법적인 개념을 처음 정립한 미국의 페미니스트 법률가 캐서린 매키넌 미시간대 교수가 14일 열린 ‘#미투―성폭력·성희롱에 대한 전세계적인 저항’ 콘퍼런스에서 성폭력 구성 요건 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레이철 디레토(Rachel DeLetto)·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법학전문대학원(UC Berkeley Law) 제공
성희롱에 대한 법적인 개념을 처음 정립한 미국의 페미니스트 법률가 캐서린 매키넌 미시간대 교수가 14일 열린 ‘#미투―성폭력·성희롱에 대한 전세계적인 저항’ 콘퍼런스에서 성폭력 구성 요건 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레이철 디레토(Rachel DeLetto)·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법학전문대학원(UC Berkeley Law) 제공
“지금, 이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우리는 분명 이기고 있는 중입니다.”

여성학자인 캐서린 매키넌 미국 미시간대 교수(법학)의 발표가 끝나자 박수와 호응이 쏟아졌다. 지난 14일(현지시각)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법학전문대학원(UC Berkeley Law)에서 열린 ‘#미투―성폭력·성희롱에 대한 전세계적인 저항’(The Worldwide #Metoo Movement: A conference on Global Resistance to Sexual Harassment and Violence) 콘퍼런스 자리였다. 캐서린 매키넌은 1970년대 ‘성희롱’(sexual harassment)의 법적인 개념을 처음 정립하고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의 시민권을 침해하는 폭력임을 주장하며 반포르노그래피 운동을 펼쳐온 미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법률가다.

‘#미투’ 운동이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줄 것이란 기대는 국경을 초월했다. 15개국 이상에서 180여명의 학자·연구자가 모인 이날 콘퍼런스에선 체코,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스페인, 홍콩, 한국 등 각 나라의 미투 운동 전개 과정을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미투 국면에서 미디어의 역할과 사법제도 개혁의 필요성, 직장과 학교 안의 성폭력 등에 대한 토론도 하루 종일 이어졌다.

한국의 미투 운동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유엔 여성기구가 2016년 1월1일부터 올해 5월1일까지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미투’가 언급된 게시글을 언어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체 4270만건가량의 게시글 가운데 한국어 해시태그는 316만여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어(#metoo, 약 2245만건)와 스페인어(#yotambien, 약 862만건)에 이은 3위로, 각 언어 사용 인구 수에 견주면 한국어 ‘#미투’ 게시글이 압도적인 사용량을 기록한 셈이다.

이날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미투’ 고발과 1, 2심 판결 결과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자 좌석 곳곳에선 탄식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한국 사례 발표를 맡은 최유경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외 연구자들은 한국 미투 운동의 확산 속도와 대상, 범위가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고 역동적이라는 데 놀랐다”며 “특히 적극적인 법 해석을 통한 사법적 구제를 요구하는 점이 이례적이라며 (이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수차례 언급했다”고 전했다.

일본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나우’의 이토 가즈코 사무총장이 일본의 ‘미투’ 운동을 촉발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박다해 기자
일본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나우’의 이토 가즈코 사무총장이 일본의 ‘미투’ 운동을 촉발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박다해 기자
젠더 기반 폭력을 제대로 포괄할 수 있도록 법 조항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이냐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특히 미투 이후 강간죄 구성 요건의 핵심으로 거론된 요소가 바로 상대방의 ‘동의’다. 한국에선 형법 297조에 명시된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현재의 ‘폭행 또는 협박’ 여부가 아닌 ‘동의’ 기준을 포함해 개정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뼈대로 하는 형법 개정안도 이미 발의된 상태다. 성폭력 개념의 확장과 재정립은 세계적인 문제여서 네덜란드도 최근 명백하게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성관계는 성폭력으로 간주하는 법안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매키넌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나아가 ‘동의’가 강간죄 성립의 기준이 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의 역시 강요나 강압의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이 균등하지 않은 관계에선 동의를 표시했더라도 암묵적이거나 문화적으로 강요된 동의일 수 있고 오히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성착취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동의가 오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동의’의 개념을 사회가 어떻게 정의하고 인식하느냐도 관건이다. 이는 성폭력 반대 운동이 제기한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나우’의 이토 가즈코 사무총장은 <엔에이치케이>(NHK)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일본에선 여전히 여성이 만취한 것, 남성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드라이브를 가는 것 등을 성관계에 대한 여성의 동의로 간주하는 양상이 있다”고 밝혔다.

매키넌 교수는 동의만을 기준으로 삼는 대신 “강간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형태의 불평등을 법적으로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강간죄 성립 요건에 불균형한 권력관계를 만드는 요소, 즉 인종, 계급, 빈곤, 성적 지향, 이주민 여부, 장애 등을 명기하고 고려하는 방식으로 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만명(15~65살)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남성보다 여성, 엘지비티(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원주민, 장애인, 적은 급여를 받는 사람일수록 성희롱 피해 경험 비율이 높았다. 전세계를 휩쓴 미투 운동은 이렇게 성폭력이 불평등 문제와 더욱 복잡하고 교묘하게 얽혀 있음을 드러냈다.

샌프란시스코(미국)/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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