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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국회 밖 공청회에선 “낙태죄 폐지는 친구·어머니·나의 문제”

등록 2020-12-08 16:29수정 2020-12-08 16:54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국회 앞 4시간 이어말하기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국회 앞에서 ‘낙태죄 폐지’ 촉구 4시간 이어 말하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leprince@hani.co.kr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국회 앞에서 ‘낙태죄 폐지’ 촉구 4시간 이어 말하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leprince@hani.co.kr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임신중지 대체법안 관련 공청회가 열리고 있을 무렵, 국회 밖에서 시민들이 꾸린 또 하나의 공청회가 열렸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는 8일 국회 앞에서 오전 9시부터 4시간에 걸쳐 낙태죄 폐지 필요성에 공감하는 시민과 정치인, 활동가들이 모여 발언하는 ‘4시간 이어말하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말하기’에 참여한 30여명의 시민들은 ‘낙태죄’의 존재로 영향을 받는 본인의 이야기, 친구의 이야기, 어머니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이 가임기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바로가기 : <한겨레> 특별페이지 ‘낙태죄 폐지’ https://www.hani.co.kr/arti/delete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스무살에 임신을 했던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제 친구는 성인이 딱 되었을 무렵 운이 안 좋게도 결혼을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습니다. 임신중지를 위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해야 했지만, 당시는 이명박 정부가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함께 산부인과들을 고발하는 바람에 수술비용이 무척 높아졌을 때였습니다. 당시는 현금으로 300만원에서 500만원을 지급해야 수술이 가능했습니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친구는 남자친구도 책임지지 않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3개월 동안 백화점에서 구두를 팔았습니다.

신 대표는 “불안했을 것이다. 누구도 책임을 져주지는 않고, 점점 배는 불러오고. 지금 대한민국의 얼마나 많은 여성이 임신중지가 죄라는 이유로 이런 피눈물을 흘리고 사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백화점에서 3개월 동안 구두를 팔아야 했던 제 친구가 2021, 2022년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국회 공청회에서 좋은 결과가 있어서 전면폐지로 나아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박정희 정권 시절 불법인지도 모른 채 임신중지를 했던 어머니 이야기도 나왔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40여년 전 제 어머니는 낙태를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 1차적 이유는 가난이었습니다 . 이미 두 명의 아이가 있던 어머니는 아이 3명을 키우기에는 집안 형편이 녹록지 않다고 판단했고, 아버지와 의논해서 낙태를 결정했습니다 . 경상도라는 보수적인 공간에서 태어났고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 제 어머니는 국가가 하는 말이라면 다 무슨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분입니다 . 그런 어머니가 어떻게 박정희 정권 시절에 낙태를 할 수 있었을까요 .

권 대표는 당시 박정희 정권의 산아제한 정책을 임신중지가 불법이면서 동시에 불법이 아니게 한 이유로 들었다.

어머니는 ‘그 당시에는 모두가 낙태를 했다, 안 한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며, 낙태가 불법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낙태가 불법이 아니게 된 것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산아제한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정부에서 둘만 나으라고 했고, (어머니는) 이미 둘을 낳았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낙태를 했고, 일반 병원에서도 묻지 않고 낙태를 해줬기 때문에 저희 어머니는 낙태를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법을 어기면서 낙태를 장려했기 때문입니다.

권 대표는 국가의 출산정책에 따라 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해온 역사가 낙태죄의 비합리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정부의 말이 법이라고 생각한 저희 어머니가 범법자입니까, 법을 어기면서 정책을 시행한 정부가 범법자입니까. 낙태가 죄라면 그 범인은 국가입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국회 앞에서 ‘낙태죄 폐지’ 촉구 4시간 이어 말하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leprince@hani.co.kr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국회 앞에서 ‘낙태죄 폐지’ 촉구 4시간 이어 말하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leprince@hani.co.kr

여성민우회 회원인 한 남성은 “낙태죄 폐지가 성소수자인 내 일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저는 남성으로 살고 있고, 동성애자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남성 성소수자입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제가 낙태죄와 가장 무관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어져 온 낙태죄 폐지 집회에 함께하며, 낙태죄란 어떤 존재인가를 늘 생각했습니다.

그는 낙태죄가 ‘여성은 아이를 낳는 어머니로, 남성은 가족을 부양하는 아버지’로 여기는 정상가족 모델을 유지하게 한다고 말했다.

낙태죄의 존재는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길러야만 한다는 성 역할에서 벗어날 때 그런 일을 처벌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이게 과연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칠까요? 저는 젠더는 시스템이며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여러 요소가 맞물려야 작동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여성에게 어머니라는 성 역할이 강요되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남성의 아버지라는 성 역할도 필요합니다. 사회는 이런 삶에 정상성을 부여하고 나머지는 비정상으로 몰거나 없는 취급을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자유롭거나 평등하게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낙태죄 폐지는 제 싸움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발언자들은 오는 9일로 다가온 정기국회 종료, 31일로 다가온 입법시한을 앞두고 편파적인 진술인으로 구성된 공청회를 뒤늦게 열고 있는 국회의 입법 방기를 질타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서영 여성위원은 국회의 근무 태만을 강하게 비판했다.

지금까지 뭘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20일 남짓 남았는데 공청회를 여는 게 법사위가 하는 일인가요 . 선출직인 사람들이 낙태죄가 어려운 문제라면서 정체시킨다면 게으르고 나쁜 일입니다. 낙태죄는 정치적 득실에 따라 취하거나 버릴 수 있는 카드가 아닙니다. 국회가 낙태죄를 이해당사자가 많아서 골치 아픈 문제로 여기거나 나중으로 넘겨도 되는 문제로 치부하는 동안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모른 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 위원은 “낙태가 죄라서 시술이 음성화된다. 낙태가 죄기 때문에 여성들이 그늘로 숨어들어가 있는 약과 병원을 찾아서 헤매야 한다. 낙태가 죄라서 적절한 의료적 시기를 놓치게 되고, 터무니없이 비싼 의료비를 개인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형법에 ‘낙태의 죄’가 존재하는 이상 의료행위의 질적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고, 그로 인해 생기는 건강상의 문제는 고스란히 임신중지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만 부과된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할 일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더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낙태죄 폐지 뒤에도 할 일이 산적해 있습니다 . 낙태죄로 인해서 죄인이 되는 사람이 없게 한 뒤에도 사회경제적 장벽과 구조적 불평등이 남아있습니다 . 국회는 이런 장벽이 없애는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편파적인 공청회를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

▶바로가기 : <한겨레> 특별페이지 ‘낙태죄 폐지’ https://www.hani.co.kr/arti/delete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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