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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목소리,들 8] 나는 50대 기혼여성, 기독교인 입니다

등록 2020-12-26 14:46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바로가기 : <한겨레> 낙태죄 폐지 특별페이지 https://www.hani.co.kr/arti/delete

지난 10월15일 한국여성민우회는 ‘낙태죄 전면폐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열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하다고 결정했는데도,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이 임신 주수와 사유에 따라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시민들이 모여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날 6시간15분의 이어 말하기에는 6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직접 나서 또는 영상으로 또는 편지로 임신중지와 그 권리를 말했습니다. <한겨레>는 안전하게 임신중지할 권리, 건강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낙태죄 폐지’ 페이지에 이어 싣습니다.

자료 제공 : 한국여성민우회

목소리 8: 나○

저는 50대, 두 자녀를 둔 기혼여성입니다. 그리고 저는 험난한 제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입니다. 저는 소소하고 그냥 50대 여성이 지금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낙태죄 폐지에 대해 생각했을 때 70년대 생들이 다 아는 표어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어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순한 문구부터 시작해서, “무턱대고 낳고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여러 가지 표어들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제가 공교육 안에서 받았던 출산, 생명, 양육에 관한 모든 것은 정자, 난자, 수정 그것밖에 없었어요. 학교 교탁 옆에 조그마한 티브이가 있었어요.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 틀어놓고 아무 말 없이 그냥 나가버리셨던, 그래서 우리끼리 보고 굉장히 많은 얘기를 했던… 점멸하는 흑백의 영상으로 본 것. 저희에게 공포를 심어줬던 그 영상을 아무 말 없이 틀어주고 나간 선생님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제 인생에서 이런 문제를 생각했을 때, 제가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20대 후반에 교회에서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어서’, ‘시댁의 권유로’ 낙태하신 여성 집사님들 대화를 들었어요. 그 순간에 그 집사님들한테 있었던 위로, 연대가 기억이 납니다. 종교적인 위로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나이를 먹어서 출산했을 때 느꼈던 건, 정부가 주도한 쉬운 낙태, 여러 번의 낙태는 여성들의 몸에 대한 아무런 존중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동생이 너무 빨리 생겨서, 도저히 키울 수가 없어서 낙태한 여성이 집에 왔을 때 나이 드신 어머님이 끓여놓은 미역국을 챙겨 먹고, 이틀을 쉬고 바로 노동하는 이웃들, 친구들의 이야기. 둘째 출산 직후 불임 시술을 권유하는 동네 산부인과의 이야기.

저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에 출산하고 양육하는 모든 곳에 여자들만 있었던 것 같아요. 여자들만 결정하고 여자들끼리 하는 위로는, 그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제도권 안에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다르게는 위로할 수 없었던 거잖아요.

출산 후에 생명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은, 경이로움이나 감동보다 두려움과 공포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보고 생명이 나에게 주는 중압감, 그 무거움. 그래서 지금 생명을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면, 험한 말이 나와요. 생명에 대해서, 그분들이 그런 공포를 느꼈을까요?

저는 반려동물을 키우자는 가족들의 말에 정말 집안에서 숨 쉬는 건 인간 넷으로 충분하다, 하나의 생명을 더 내가 돌보는 것은 나에게 너무 지옥이라고 얘기해요. 사람들은 너무 쉽게 생명을 말하는 것 같아요. 생명을 키워본 사람들, 정말 생각해본 만나본 맡아본 사람들은, 그렇게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이제 나이를 먹어서 이런 얘길 할 때, 저는 출산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있는 나이잖아요? 그런데 이야기를 할 때 말씀해주신 분들과 다르게 느끼는 분노는 이게 반복되는 것 같다는 거예요. 나는 벗어났지만, 아무 죄도 아니었던 것을 전 국민이 알고 있었고,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이 국가가 내려준 결정으로 확인되었는데 이제 와서 그걸 반복하는 건, 너무나 쉽게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법들, 다른 공권력 같은 것으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성들이 결정해야 하며 허락도 처벌도 거부한다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우리가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여기서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는데, 그분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여성들이 10대부터 50대, 70대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꼭 이루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올해 안에 뒷걸음이 아니라 정말 끝을 볼 수 있는 결과를 맺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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