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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특별페이지 ‘낙태죄 폐지’ https://www.hani.co.kr/arti/delete
10월7일 정부는 임신 주수와 사유에 따라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한 낙태죄 개정안을 내놓았다. 바로 다음날인 10월8일 오후 에스엔에스(SNS)에 하나의 해시태그가 올라왔다. ‘#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전혜진 작가가 제안하고, 문녹주 작가가 해시태그를 만든 뒤 지금까지 20명 가까이 되는 작가가 임신중지와 그 권리를 다룬 초단편 소설을 써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와 에스엔에스 개인 계정 등에 올렸다. 같은 주제를 다채롭게 엮어낸 소설들을 작가들의 동의를 얻어 <한겨레> 낙태죄 폐지 특별 페이지에 싣는다.
※ 작품을 원문 그대로 싣습니다.
사정통 ㅣ 김청귤
생명은 아주 소중하다. 낙태를 원하는 산모는 안전을 위해 인연원에서 보살핌을 받다가 출산 후 낙태희망자라는 낙인을 찍고 폐경이 와 임신을 하지 못할 때까지 집중관리에 들어갔고, 낙태시술을 하려던 의사는 의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인연원의 전속 의사가 되어 10년 이상 봉사해야만 했다.
사회적인 압력과 스트레스 때문에 여자들의 생리통이 심해지고, 고통 속에 방바닥을 긁으며 원한도 깊어졌다. 한 달에 한 번 하던 생리를 한 달에 두 번, 세 번 하며 몸 안에 있던 난자들을 빠르게 소모했다. 여자들의 원한이 모여 어떠한 에너지를 뿜어냈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까, 남자에게도 사정통이 생겼다.
방에서 야동을 틀어놓고 자위를 하던 남자는 사정을 한 순간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기절했다. 콘돔으로 하면 사정도 못하고 느낌도 안 난다며 입을 털던 남자도, 자다가 야한 꿈을 꾸던 남자도 고통에 몸부림쳤다.
칼로 성기를 잘근잘근 다지는 것 같기도 하고, 수십 수백 개의 바늘이 쿡쿡 찌르는 것 같기도 하고, 뜨겁고 화끈거려서 녹아 없어질 것만 같고, 누가 손으로 쥐어뜯는 것 같기도 했다.
남자들은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여자와의 관계를 피하고 자위를 하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쯤 되자 자연스럽게 나오는 몽정도 통제하기 위해 명상을 하고 자극적인 걸 피하며 플라스틱에 담긴 음식을 피하고, 그도 안 되면 몽정을 할 것 같은 시기에 꼬박꼬박 진통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정부는 사정통을 잡기 위해 연구를 하고 진통제를 무상으로 나눠주고 신체검사를 자세히 하며 영양제를 처방했으나 소용없었다. 남자의 몸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빠르게 퇴화하고 있었다. 그러자 정부는 남자의 자위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서 의사 입회하에 사정을 해 정액을 모으지 않으면 낙태죄를 강화한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남자들은 강하게 반발했으나 고추가 설 힘도 없는 나이 많은 국회의원들은 사정통을 알 수 없기에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미 많은 남자가 고자가 되고 말았다. 남은 건 고통 속에서 뽑아낸 냉동정자 뿐이었다.
정부는 냉동정자를 활용해 여자의 임신을 장려했으나, 실패했다.
정부는 냉동정자를 활용해 여자의 임신을 강요했으나, 실패했다.
남자만 소중히 여긴 정부는 정자만 냉동할 줄 알았지 난자를 냉동하지 않았다. 이미 모든 여자는 피와 살점을 쏟아내며 일평생 해야 할 생리를 다 끝내버렸는데.
그리하여 세상 모든 난자와 정자가 사라졌다.
낙태할 일이 없었다.
<끝>
#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참여 작가 김청귤
※ <한겨레>는 작가의 동의를 얻어 작품을 게재합니다. 해당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발췌 및 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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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 #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셀렉션 https://britg.kr/novel-selection/125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