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데이비슨 스트리트 글라이드. 할리데이비슨 제공
“저도 모터사이클 타고 싶어요. 기회가 되면 2종 소형 면허를 따야겠어요.” 사실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다. 당시 난 자동차 전문 매거진에서 인턴 기자였고 내 옆자리 앉은 선배 기자는 자동차 업계에서도 유명한 ‘바퀴광’이었다. 바퀴만 달렸으면 무엇이든 타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는 “모터사이클이 재미있다”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나를 꼬시지 않았다.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두 분야를 잘 엮으면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기획 기사가 될 것”이라고만 이야기했다. 결국 그 이야기가 나온 지 일주일도 안 돼 2종 소형 면허를 획득했다. 그렇게 모터사이클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시작이 어찌 됐건 지금은 그때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만족하고 있다. 선배의 말대로 기획 기사가 다양해졌고, 삶 또한 더 풍성해졌으니까. 날 좋은 봄과 가을에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전라도며 경상도로 장거리 투어를 떠났고, 밤공기가 유독 신선하게 느껴진 날은 ‘밤바리’(야간 라이딩)를 한 뒤 따듯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헤어졌다. 지난해 가을에는 홀로 모터사이클을 타고 제주도를 왼쪽으로 한 바퀴, 오른쪽으로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모터사이클과 함께한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내 에스엔에스(SNS)에는 모터사이클 관련 피드가 많이 늘었다. 모터사이클의 시작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취미 생활로 즐기고 있는 셈이다.
할리데이비슨 스트리트 글라이드. 할리데이비슨 제공
한때 모터사이클은 위험한 교통수단이라는 인식이 짙었다. 휘황찬란한 조명, 시끄러운 배기음과 경적 소리, 교통 법규를 무시하는 운전자들의 태도 때문일 거다. 게다가 10대들에게 모터사이클은 일탈의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니 말해 무엇할까? 하지만 얼마 전부터 모터사이클에 대한 시선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물론 어떤 계기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모터사이클이 일탈의 문화가 아닌 레저의 문화로 점차 자리잡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러한 분위기 변화는 수치에서도 나타난다. 우선 배기량 125㏄가 넘는 중대형 모터사이클을 타기 위해선 2종 소형 면허가 필요한데,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2종 소형 면허 보유자의 수는 약 35만명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50만명이 넘었다. 중대형 모터사이클 판매량도 마찬가지다. 125㏄ 초과 모터사이클 판매량은 2013년 7760대에 그쳤지만 2020년에는 2만대를 돌파했다. 물론 음식 배달을 하는 라이더 급증에 따른 효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무적인 사실은 2018년부터 500㏄ 초과 모터사이클의 판매량이 1만대를 넘었다는 점이다. 500㏄ 초과 모터사이클 대부분은 상업용이 아닌 레저용으로 사용한다.
모터사이클은 사용 방법이나 모터스포츠 등 기준에 따라 여러 분류로 나뉘기도 하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레저용으로 자주 사용되는 모터사이클은 네이키드, 크루저, 오프로더, 스쿠터가 대표적이다.
네이키드는 로드스터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흔히 ‘모터사이클’ 하면 머릿속에 바로 연상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앞부분에 카울이 달려 있지 않아 엔진이 노출돼 있고 헤드램프와 댐퍼(진동 흡수장치)도 그대로 보이는 모델이다. 베엠베(BMW)의 R나인T나 혼다 CB 시리즈가 유명하다. 네이키드 중에서는 복고적인 외형을 지닌 모델이 있는데 이런 바이크는 클래식이라고 칭한다.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디자인과 설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원초적인 형상을 띤다. 엔진도 단기통 혹은 2기통 엔진이 대다수다. 로열엔필드나 트라이엄프가 클래식 모델을 주로 만드는 대표적인 회사다.
크루저는 높은 핸들 바에 널찍한 시트와 낮은 시트 높이, 빅 트윈 엔진(실린더 크기가 큰 2기통 엔진)으로 대표되는 모터사이클 장르다. 자동차로 따지면 GT(그란투리스모)에 속하는 포지션으로 장거리 주행에 특화됐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크루저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할리데이비슨이다. 주로 2기통 엔진을 사용하는데 모터사이클의 스포츠성보단 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속도보단 토크감(치고 나가는 느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넓은 캐스터 각과 더불어 댐퍼와 서스펜션도 꽤 길어 직진 안정성과 고속 안정성은 좋지만 그만큼 핸들링 반응이 느리다는 단점도 있다. 이런 주행 성격에 대해서는 코너가 거의 없고 긴 직진 구간이 많은 미국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꽤나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다음은 오프로더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험로 주행에 특화된 모터사이클이다. 흙길이나 자갈, 모래사장 등과 같은 험지를 돌파하기 위해 강력한 토크를 확보할 수 있는 단기통 엔진, 혹시 모를 장애물들의 간섭과 충돌을 피하기 위한 높은 시트 높이와 위로 추켜올린 배기구, 충격 흡수를 위한 긴 서스펜션 등이 특징이다. 하지만 국내에 정통 오프로더보단 멀티퍼포즈의 인기가 높다. 말 그대로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바이크로 오프로드나 온로드 관계없이 달리는 게 가능하다. 멀티퍼포즈는 브랜드마다, 바이크마다 주행의 성향과 지향점이 살짝 달라 타이어나 서스펜션 등 부품의 차이가 약간 있을 수 있다.
마지막은 스쿠터다. 운전하기가 매우 편한 특징이 있다. 특히나 이탈리아 베스파와 프랑스 푸조로 대표되는 유럽산 패션 스쿠터들 덕분에 패션에 관심이 많은 20~30대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모터사이클이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들도 패션 스쿠터를 보면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디자인이 유려하고 스타일리시하다. 덕분에 여성 라이더의 유입이 다른 장르에 비해서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무엇을 골라 타든 라이더의 취향이겠지만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은 이 재미있는 두 바퀴 탈것을 얼마나 안전하게 타느냐에 있다. 헬멧과 보호대 등의 안전장비 착용은 권장이 아닌 필수이며 기회가 된다면 올바른 라이딩 기술을 배우는 것도 좋다. 처음 내 모터사이클을 가졌을 때 ‘바퀴광’ 선배에게 모터사이클 잘 타는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선배가 해준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빠르게 달리고 옆으로 눕히는 것만이 잘 타는 건 아니야. 안전하게 오래 즐기는 것도 모터사이클을 잘 타는 방법이니까. 그러니 너무 부담 느끼지 말고 안전하게 타.” 역시 안전이 제일이다.
김선관(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