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모터쇼 ‘아이에이에이(IAA) 모빌리티 2023’에서 비야디의 새 전기차 모델이 소개되고 있다. 비야디 제공
지난 9월 초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3대 모터쇼 중 하나인 ‘아이에이에이(IAA) 모빌리티 2023’은 자동차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테슬라와 함께 전기차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중국의 비야디(BYD)가 독일 대표 주자인 벤츠보다 두배나 넓은 면적의 전시장을 차려 무려 6개의 새 전기차 모델을 선보였고, 유럽 자동차 판매 5위 안에 들어설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2016년에 영입한 아우디 출신 유명 디자이너 볼프강 예거가 직접 나와 비야디의 주력 라인업인 ‘오션(Ocean) 시리즈’의 ‘실(Seal)’과 실의 에스유브이(SUV) 버전인 ‘실 유(Seal U)’를 소개했다. 독일 현지 모빌리티쇼에서 독일인 출신 디자이너가 비야디의 차를 선보이는 매우 도전적인 이벤트였다.
지난해 내연기관만으로 움직이는 차의 생산 중단을 선언한 비야디는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 누적 생산 300만대를 돌파하며 세계 판매 1위에 올랐다. 비야디의 2022년 전기차·하이브리드 차 판매량은 186만대로 131만대를 판 테슬라를 눌렀다. 올해에도 9월까지 전기차 콤팩트 에스유브이인 ‘아토3’이 30만대, ‘돌핀’이 25만대나 팔리며 둘을 합쳐 테슬라 ‘모델3’의 38만5천대를 크게 넘어서는 등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상하이자동차·지리 등을 합치면 중국 전기차의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
아직까지 ‘중국산 물건’에 대한 불신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차의 급부상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품질 면에서도 중국의 자동차는 2000년대 중반 유럽과 미국의 여러 충돌테스트에서 처참한 점수를 받으며 망신을 당했다. 이후 지리 그룹이 자동차 안전의 대명사인 스웨덴 볼보를, 상하이자동차그룹이 영국 엠지(MG)를 인수한 것을 비롯해 중국 내 합작 자동차 회사 설립 등을 통해 자동차 개발 및 생산 노하우를 착실하게 쌓았다. 최근에는 모두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고 비야디 ‘아토3’과 ‘실’ 모델 모두 유럽 신차평가제도(EURO NCAP)에서 별 5개의 만점을 받았다.
중국 정부의 신에너지차(NEV) 정책도 비야디에는 큰 기회가 됐다. 중국은 2015년 파리 기후협정 이후 생산 기업과 소비자,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했다. ‘고신기술기업’(하이테크 기업)의 기업소득세율(법인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춘 게 대표적이다.
1995년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업체로 설립됐된 비야디는 2003년 친촨자동차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8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인 ‘에프3디엠(F3DM)’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배터리와 모터 개발·생산부터 이를 활용한 전기 지게차, 1t급의 상용차와 버스, 승용차 등의 완성품까지 세계 유일의 수직 계열화를 이룬 것이 최대 강점이다. 2016년 한국에도 법인을 세운 후 전기버스와 지게차 공급을 시작했고 올해 지에스(GS)글로벌과 함께 국내 시장에 맞춰 개발한 1t 전기트럭 ‘티4케이(T4K)’를 내놓았다. 82㎾h(킬로와트시) 용량의 독자적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얹어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상온에서 246㎞에 달하고, 티맵 내비게이션과 한국타이어의 타이어를 쓰는 등 현지화에도 공을 들였다. 국내 대표 전기 1톤 트럭인 현대자동차 ‘포터2 일렉트릭’(상온 주행거리 211㎞)보다 우수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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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KG)모빌리티 토레스의 전기차인 ‘이브이엑스(EVX)’. 케이지 모빌리티 제공
비야디는 케이지(KG)모빌리티(옛 쌍용자동차) 토레스의 전기차인 ‘이브이엑스(EVX)’에 배터리팩을 비롯한 전동화 모듈도 공급하고 있다. 73.4 ㎾h 용량의 배터리를 얹은 이브이엑스는 상온 기준 433㎞의 주행거리를 달릴 수 있다. 여기에 쓰인 블레이드 구조의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철을 주성분으로 한다. 그간 전기차에 많이 쓰이는 니켈·코발트·망간(NCM)의 희토류 금속을 쓰는 삼원계 배터리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공급이 안정적인 것은 물론 화재 위험이 현저히 낮다. 중량 대비 에너지 밀도가 낮고 저온 성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으나 전기차 구매의 가장 큰 걸림돌인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어 테슬라 등 여러 전기차 회사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또 부피 대비 낮은 에너지 밀도는 배터리팩 내부의 ‘셀-모듈-팩’ 구조에서 모듈을 없앤 ‘셀투팩’ 구조로 만들어 보완했다. 실제 케이지모빌리티는 10년 동안 100만㎞라는 국내 최장 배터리 무상보증수리 기간을 내세우고 있다. 향후 세워질 케이지모빌리티의 창원 공장에서 이를 생산하게 되면 다양한 모델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산 전기차는 초기의 중저가 도심형에서 이제 중형급 이상의 고급형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실제 비야디의 글로벌 전략 모델인 ‘실’은 영국에서 4만5695파운드(약 7300만원)에 팔리고 있는데, 이는 테슬라 ‘모델3’, 현대자동차 ‘아이오닉6’과 베엠베(BMW) ‘아이4(i4)’ 등과 경쟁하는 가격대다. 비야디는 소형 해치백인 ‘돌핀’부터 중대형 에스유브이인 ‘실 유’까지, 오션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국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중국차의 한국 진출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특히 내연기관 차는 싼값에 반짝 판매가 늘어난 적도 있으나 소음 진동이 심하고 내구성이 낮다는 평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차라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현재 세계시장에서도 통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들이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달고 싼값에 출시된다면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중국 회사들이 싼값의 리튬인산철 배터리 기술을 쌓는 동안 국내 배터리 회사들은 고성능인 엔시엠(NCM, 니켈·코발트·망간) 등의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생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향후 전기차에서 가격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임을 생각하면 국내 전기차 산업에는 위기가 될 수 있다. 현재 중국이나 미국 등은 자국산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혜택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도 일정 수준 이상의 국산화 비율에 맞춰 지원금을 차등 지원하는 등 무역분쟁을 피하며 국내 전기차 산업을 보호할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생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여러 수입차 브랜드에서 상품기획, 교육, 영업을 했다. 모든 종류의 자동차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다양한 글을 쓰고, 자동차 관련 교육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