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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제주도 푸른 밭, 겨울 맛 느끼러 떠나요

등록 2022-12-03 09:00수정 2022-12-03 23:55

제주 귀덕·평대서 ‘제주 밭한끼’
당근·양배추 등 밭작물 테마 행사
작물 재배지서 밭담 투어·밭크닉
제철 채소 재발견 숨은 매력 찾기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의 영등할망 밭담길을 걷는 ‘제주 밭한끼’ 참가자들. 허윤희 기자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의 영등할망 밭담길을 걷는 ‘제주 밭한끼’ 참가자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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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꽃말이 뭔지 알았수꽈? 다들 모르수꽈? 꽃말은 죽음도 두렵지 않수다!”

지난달 25일, 제주시 구좌읍의 평대리 당근밭. 마을해설사 부석희 삼춘(이웃 어른을 의미하는 제주어)이 당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밭에는 푸릇푸릇한 잎을 틔운 당근이 자라고 있었다. 여행객 20여 명이 밭에서 당근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당근 시식의 시간. 석희 삼춘이 그들에게 밭에 있는 당근을 뽑고, 먹어보라고 했다. 머뭇거리던 이들이 하나둘 당근을 뽑았다. 선명한 주황색 당근이 나오자 신기한 듯 쳐다봤다. 어떤 이들은 당근에 묻은 흙을 털고 먹었다.

석희 삼춘은 “당근 뿌리만 먹는 줄 아는데 잎사귀도 먹을 수 있다”라며 “잎사귀를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으면 상큼하고 맛있다”라고 말했다.

낮은 동산에서 본 ‘당근 마을’ 평대리의 전경. 평평한 지대에 있어 한눈에 마을이 보인다. 허윤희 기자
낮은 동산에서 본 ‘당근 마을’ 평대리의 전경. 평평한 지대에 있어 한눈에 마을이 보인다. 허윤희 기자

평대리 밭에서 뽑아 맛보는 당근

이날 평대리에서는 석희 삼춘을 따라 걷는 당근밭 투어가 진행됐다. 제주시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추진단(이하 추진단)이 올해 처음 진행한 ‘제주 밭한끼’ 캠페인(11월24일~26일)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제주 밭한끼’는 당근, 메밀, 월동 무, 양배추 등 제주 5대 밭작물의 가치를 알리려고 기획한 행사. 추진단은 평대리의 당근밭, 귀덕리의 양배추밭 등 밭담길을 걷고 밭작물로 음식을 만들고 밭에서 도시락을 먹는 ‘밭크닉’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제주 밭한끼’ 캠페인을 시작으로 2023년 제주밭한끼 레시피 경연대회 개최, 2023 제주밭한끼 지도 발행, 나만의 제주밭한끼 레시피 공유 이벤트 등을 펼칠 계획이다.

제주 밭한끼의 중심 무대는 밭작물 재배지에 있는 밭담이다. 밭담은 검은 현무암으로 밭 주변에 쌓은 담을 가리킨다. 제주 전역에 분포하는 밭담을 모두 합치면 길이가 2만2000㎞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주의 밭담은 2014년에 유엔식량농업기구가 선정한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에는 구좌읍 월정리의 진빌레 밭담길, 애월읍 수산리의 물메 밭담길, 성산읍 신풍리의 어멍아방 밭담길, 한림읍 동명리의 수류촌 밭담길 등 8개 밭담길이 있다.

평대리에서는 제주 밭작물인 당근이 주제다. 제주는 전국 당근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제주 동쪽인 평대리·월정리 등 구좌읍 일대에서 당근이 주로 재배된다. 전국적으로 ‘구좌 당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기물 함량이 높은 화산회토에서 수확한 당근으로 높은 당도와 진한 향이 특징이다.

평대리는 벵듸(평평하고 넓은 지대를 뜻하는 제주어)라고 불렸던 곳으로 바람이 만든 모래언덕인 해안사구가 발달한 지역이다. 평대리에는 ‘감수굴 밭담길’이 있다. 평대 중동회관을 중심으로 마을 안길과 연계해 1.5㎞ 구간에 걸쳐 조성됐다. 밭담길을 걷는데 약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길은 짧지만, 당근밭과 밭담, 울담(집 울타리의 돌담), 올렛담(마을에서 집으로 가는 골목에 쌓은 담) 등 다양한 제주 돌담을 볼 수 있다. 밭담 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마을 이야기. 밭담길을 걸으며 ‘평대리 토박이’ 석희 삼춘이 평대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초가집의 혹하르방에 대한 슬픈 사연을 들려준다. “혹! 혹!” 괴상한 소리만 내고 다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무서워 피했던 혹하르방. 군대 간 외동아들의 사망통지서를 받은 충격으로 겨우 짜낸 말이 “혹”뿐이었다고 한다. 이제 폐가가 된 초가집과 그곳에 살았던 혹하르방을 기억하는 석희 삼춘의 이야기다.

밭에서 도시락을 먹는 ‘밭크닉’을 즐기는 참가자들. 제주시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추진단 제공
밭에서 도시락을 먹는 ‘밭크닉’을 즐기는 참가자들. 제주시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추진단 제공

브로콜리, 당근 등이 들어간 채소 바비큐. 허윤희 기자
브로콜리, 당근 등이 들어간 채소 바비큐. 허윤희 기자

밥상의 조연이 주연으로

밭담 투어가 끝난 뒤 농부들의 협동조합 카페 ‘당근과깻잎’ 마당에서 ‘밭크닉’이 열렸다. 밭에서 도시락을 먹는 시간이다. 도시락의 재료는 제주의 밭작물. 평대리 당근으로 만든 촐래(반찬을 이르는 제주어), 제주산 메밀쌀. 그리고 메인 메뉴는 즉석에서 만들어 제공됐다. 양배추, 무, 브로콜리 등으로 만든 채소 꼬치를 숯불에 구웠다. 이름하여 채소 바비큐. 제주 밭작물로만 차린 한 끼 식사가 시작됐다.

제주 5대 밭작물로 만든 ‘제주 밭한끼’ 도시락도 소개됐다. 〈두부 예찬〉 등을 펴낸 김영빈 요리연구가가 두 달간 개발해 만든 것이다. 개발한 메뉴는 밭작물 스테이크, 메밀주먹밥, 당근무라페 냉파스타, 간무둠비튀김(간 무와 두부 튀김), 무콜라비당근뢰스티(무 콜라비 당근을 넣은 부침개). 이 가운데 당근무라페 냉파스타는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당근과 무를 채 썰고 가는 파스타인 카펠리니 면을 삶아 라페 소스(레몬즙 3큰술, 다진 마늘 2작은술, 홀그레인머스터드 2작은술, 올리브유 4큰술, 통후추가루 약간)를 섞고 다진 루콜라와 콩 부각을 뿌려주면 된다.

김영빈 요리연구가는 밭작물 레시피를 만들며 밭작물의 매력을 재발견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항상 조연으로 나오던 분들이 주연으로 발탁되면 ‘어머, 저 사람 저런 사람이었어’라며 그분을 다시 보게 된다. 밭작물도 마찬가지다. 밭작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 낯설었던 것뿐이지 이것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제주 밭작물은 육지와 달리 화산회토에서 자라 수분함량이 높고 해풍을 맞아 짭조름한 특별한 맛이 난다.”

김 요리연구가는 지역의 채소를 가장 가까이에서 맛볼 수 있는 ‘팜 투 테이블’을 제안한다. 농장에서 갓 수확한 식재료를 곧바로 식탁 위에 올리는 식문화 트렌드를 일컫는다. “지역 여행을 하면서 제철 채소를 맛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마트나 유통단계를 거쳐 사는 채소와 다른 맛을 느끼게 된다. 밭에서 브로콜리를 뜯어서 우적우적 씹어 먹어보면 제철의 맛을 알게 될 것이다. 생산자들을 만나 밭작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먹는 먹거리에 대해 더욱 애정이 생길 거다.”

귀덕1리에 있는 밭에서 뽑은 비트. 허윤희 기자
귀덕1리에 있는 밭에서 뽑은 비트. 허윤희 기자

귀덕1리 쪽파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 허윤희 기자
귀덕1리 쪽파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 허윤희 기자

귀덕1리에서는 밭 뿐 아니라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허윤희 기자
귀덕1리에서는 밭 뿐 아니라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허윤희 기자

양배추·브로콜리 생산지 귀덕리

제주의 서쪽, 한립읍의 귀덕1리에서도 ‘제주 밭한끼’ 행사가 펼쳐졌다. 귀덕1리는 반농반어의 생활문화가 뚜렷하게 남아있는 곳으로, 이곳 주민들은 어로활동과 함께 양배추, 콜라비, 비트, 쪽파 등 밭작물을 재배한다. 귀덕1리에 있는 마을공동체 사업공간인 ‘귀덕향사’에서 귀덕리 밭작물을 이용해 브로콜리 유부초밥과 양배추 꼬마김밥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귀덕리의 밭작물을 보기 위한 밭담 투어도 이어졌다. 마을해설사 현경애 삼춘을 따라 ‘영등할망 밭담길’(4㎞, 소요시간 1시간)을 걸었다. 길의 테마가 된 영등할망은 마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영등할망은 2월 초하루 귀덕1리의 ‘복덕개’라는 포구로 들어와 15일을 머무르다 돌아가는 바람과 풍요의 여신이다. 영등할망 밭담길은 귀덕1리 사무소에서 시작해 귀덕향사를 지나 마을 안쪽 밭담길을 이은 길이다. 밭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오름과 바다 풍경을 볼 수 있어 산책하기 좋은 코스다. 이 길에는 밭담 유형 중 하나인 잣담(넓게 쌓은 담)이 많아 예전에는 귀덕리를 ‘잣질동네’로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제주 밭한끼’ 행사에 참여한 노우정씨는 “마트에 있는 밭작물만 봤는데 여기 와서 직접 밭작물이 재배되는 밭을 보고 그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경험이 무척 새로웠다”라며 “마을 토박이분이 들려주는 마을 역사와 문화에 관해 들으니 잘 모르던 마을의 매력을 알게 되는 색다른 여행이었다”라고 말했다.

제주에는 푸른 바다만 있는 게 아니다. 푸른 밭이 있다. 양배추밭, 당근밭, 콜라비밭, 브로콜리밭…. 전국 겨울 밥상에 오르는 월동채소들의 생산지가 이곳이다. 월동채소의 맛을 즐기는 제주 여행, 겨울이 제철이다.

갈치와 흑돼지? 제주 채소로 한끼!

제주 먹거리 하면 흔히들 갈치, 옥돔과 흑돼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것만 생각하면 제주 맛의 절반만 아는 것. 나머지 절반을 알고 싶다면 당근, 양배추, 무 등 제주의 채소를 맛보길. 제주에는 밭작물을 재료로 음식을 선보이는 숨은 맛집이 많다.

넘은 봄은 제주 로컬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파인다이닝이다. 넘은 봄은 제주 방언으로 ‘지난봄’이라는 뜻. 지난봄에 먹었던 우리 음식이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고 기록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귀포 비트의 껍질, 뿌리 등으로 만든 서귀포 옐로우 비트(1만2500원), 구좌읍에서 생산한 당근을 사용한 제주 미니 당근(1만5500원) 등 메뉴를 선보인다. 용천수가 나오는 청굴물 앞에 있는 이곳은 바다 풍경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로1길 75-1 1층/0507-1340-1182)

바르왓에서는 제주산 채소가 들어간 따뜻한 솥밥을 먹을 수 있다. 애월읍의 취나물과 한라산의 표고버섯을 넣은 드릇솥밥 한상(3만원)이 대표 메뉴. 쌀이 귀해 보리와 쌀을 반씩 섞어 밥을 지었던 옛 방식으로 만든 지슬반지기솥밥(2만5000원)도 선보인다. (제주시 한림읍 한림남길 24 2층/064-796-4588)

애월읍 작은 마을에는 브런치 맛집 콜체스카페가 있다. 제철 채소와 흑보리가 들어간 흑보리&루꼴라 샐러드(1만5000원)를 선보인다. (제주시 애월읍 애납로 158/010-8911-0968) 칠분의 오에서는 계절마다 바뀌는 제주의 제철 채소로 만드는 수프 플레이트(1만2000원)를 맛볼 수 있다. 식물성 고기로 만든 비건 버거(1만8000원)도 판매한다. 반려동물과 동반 입장이 가능하다.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650-20 111동 1층/010-9922-2281)

제주/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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