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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압도했던 미국 와인, 30년 뒤에도 1위 [ESC]

등록 2023-06-24 11:00수정 2023-06-24 13:35

권은중의 생활와인 _ 샤르도네

마스카포네 치즈 두부와 샤르도네.
마스카포네 치즈 두부와 샤르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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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프랑스와 미국산 와인을 블라인드 테스트해 놀라운 결과를 얻어낸 ‘파리의 심판’ 사건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단독 보도했다.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기획한 이 행사에서 누구도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타임> 기자 1명만 빼고 행사장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미국 와인은 프랑스 와인을 압도했다. 레드뿐 아니라 화이트도 미국 와인이 1위였다. 10년과 30년 뒤에 각각 같은 형태의 테스트가 이어졌지만 모두 미국 와인이 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되자 프랑스 업계는 미국 와인의 약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이트 와인에 관심이 많은 나는 파리의 심판 때 화이트 부문 1위를 했던 샤토 몬텔레나 와이너리의 샤르도네가 늘 궁금했다. 그래서 할인행사를 하거나 목돈이 생길 때마다 한병씩 사놓았다. 가격은 10여만원으로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뫼르소나 몽라셰보다 저렴하다. 미국산 파 니엔테 샤도네이보다도 싸다. 하지만 나는 이 와인을 쉽게 따지 못했다.

샤르도네는 크로아티아 출신 이민자인 미엔코 마이크 그르기치의 작품이다. 1923년생인 그는 크로아티아의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양치기 소년으로 유년시절을 보낸 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내 대학에서 양조학을 배웠다. 1954년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가겠다며 여권을 발급받은 뒤 32달러만 들고 공산정권인 유고를 탈출해 4년 만에 여러 나라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원하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1969년부터 ‘나파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와 함께 레드 와인을 만들어 나파밸리의 유명인사가 됐다. 또 1882년 설립됐지만 금주법 이후 50여년이나 방치된 샤토 몬텔레나에 영입돼 1972년부터 샤르도네를 양조했다. 이렇게 양조한 지 2년만인 1973년 샤르도네가 ‘파리의 심판’에서 1위에 오른 것이다.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이 와인을 나는 그저 치즈나 과자 조각을 먹으며 마시고 싶지 않았다. 좋은 친구, 좋은 음식과 함께 이 와인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며 마시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와인을 산 지 무려 3년이 되던 지난 5월 말, 드디어 함께 할 친구, 좋은 레스토랑 3개의 톱니바퀴가 딱 맞는 날이 왔다.

요식업계에 발이 넓은 지인 소개로 합리적인 가격의 프렌치 레스토랑을 찾았다. 특히 대게, 잿방어, 줄전갱이, 피문어 등 갈 때마다 바뀌는 해산물 메뉴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도 가격은 일반 프렌치 레스토랑의 3분의 1. 쟁여놓은 샤르도네를 마시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딴 샤르도네는 소문처럼 산도가 쨍쨍했다. 하지만 이내 복숭아 살구 향이 올라오면서 이날의 스페셜 메뉴인 스페인산 생참치 카르파쵸와 환상적인 조합을 이뤘다. 메인요리 뒤 마스카포네 치즈 두부를 먹을 때쯤 이 와인은 온전히 열려 새 프렌치 오크 10개월 숙성으로 얻은 향신료와 열대과일의 섬세한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 소비자들은 와인 비평가처럼 와인 선택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와인과 함께 즐길 멋진 음식과 사람이다. 좋은 와인과 함께 마주한 음식, 사람이 이루는 삼위일체는 이처럼 스토리 있는 와인의 울림을 크게 만든다. 이런 와인을 만나는 순간순간이 모이면 인생은 분명히 달라진다.

글·사진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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