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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개성만점 모자 ‘마카라파’

등록 2010-06-16 19:43수정 2010-06-20 09:36

2010 남아공월드컵 경기장에서 관람객들이 직접 만든 마카라파를 쓰고 응원하는 모습.
2010 남아공월드컵 경기장에서 관람객들이 직접 만든 마카라파를 쓰고 응원하는 모습.
[매거진 esc] 월드컵 응원도구로 자리잡은 40여년 전통의 헬멧
시끌벅적하고 요란하다. 티브이 중계 카메라에 잡힌 2010 남아공월드컵 경기장 풍경을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이렇다. 시끌벅적한 건 관중들이 쉴 새 없이 불어대는 부부젤라 때문이고, 요란한 건 관중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헬멧 모양의 모자 때문이다. 사슴뿔처럼 위로 여러 개의 긴 장식이 달려 있고, 강렬한 색깔로 응원 문구를 적어 놓은 이 정체불명의 모자 이름은 ‘마카라파’(Makarapa)다. 마카라파는 남아공 축구장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이 지역만의 오래된 문화 상품, 아니 디자인 상품이다.

마카라파를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마카라파의 시작을 둘러싼 얘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마카라파는 사실 수십년 전에 이곳에 터를 잡은 이주·이민 노동자들이 붙인 이름이라는 설명이다. 1960년대 많은 노동자들이 남아공 흑인거주지역에 살았는데, 이들 중에 축구 팬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지역 노동자들은 각자 응원하는 축구팀에 따라 신경전도 대단했고, 각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잘 드러내기 위해 마카라파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얘기로는 당시 이주 노동자들 중 대부분은 광산·건설 노동자들이었는데, 마카라파는 이들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쓰던 모자를 부르던 말이었다는 것. 각자 응원하는 축구팀을 위한 응원도구이면서 동시에 그 당시 축구 경기에서 툭하면 오고 갔던 유리병 등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실용적으로 쓰였다고도 한다.

마카라파에 매료된 젊은 디자이너들 대거 제작 참여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위치한 마카라파 공방 ‘마코야 마카라바’에서 마카라파를 만드는 모습.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위치한 마카라파 공방 ‘마코야 마카라바’에서 마카라파를 만드는 모습.

마카라파의 시작이 어떠했든, 마카라파의 알록달록한 무늬와 거리낌 없이 꾸며진 장식을 보면 남아공 사람들의 성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남아공에서 축구는 마카라파 등을 쓰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였고, 독특한 마카라파는 축구를 더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도구”라는 한 남아공 축구팬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카라파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마카라파가 남아공 축구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먼저 헬멧을 구입한다. 그 위에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상징하는 색깔을 칠하고 팀의 로고나 선수 모양의 장식을 만들어 붙인다. 축구팀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 문구를 생각해 헬멧 위에 쓴다. 그렇게 몇 시간이 걸려 제각각 다른 모양과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마카라파는 그 결과물뿐 아니라 과정도 이미 ‘예술’이다.

1970년대부터 점차 대중화되며 축구를 좋아하는 남아공인들이 개인적으로 만들어 쓰거나 동네 마카라파 가게에서 한두 개씩 구입해 사용했던 마카라파는 40년이 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남아공의 문화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응원도구로서도 탁월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고,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하루에 두 개 정도의 마카라파를 제작하며 소규모로 제작을 해왔던 공방들은 제작을 늘리기 시작했다. 30년이 넘게 마카라파를 만들어온 마카라파의 장인 알프레드 발로이 역시 월드컵을 앞두고 공장을 확장했고, 그만의 독특한 마카라파 디자인을 찾는 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마코야 마카라바’ 공방에서 제작한 2010 남아공월드컵 기념 마카라파. 왼쪽부터 치우천황의 얼굴을 그려넣은 한국 응원용, 아르헨티나 응원용, 네덜란드 응원용, 그리스 응원용, 스페인 응원용.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층짜리 모자…공작새 모양 등 디자인 다양

그렇다고 마카라파가 그저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남아공의 젊은 디자이너들 역시 마카라파의 독특함에 매료돼 마카라파 제작에 뛰어들었다. 케이프타운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마이클 수터는 얼마 전부터 ‘마코야 마카라바’라는 지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카라파 자체의 대중성도 높이면서 케이프타운 지역 흑인거주지의 젊은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디자인과 회화 등도 교육하려는 목적의 프로젝트다. 그는 누리집에서 “모자를 자르고 칠하는 모든 과정을 전문화하려고 한다”며 “하나 하나가 건축용 헬멧에서 시작된 예술 작품이고, 하나하나가 남아공 축구 문화의 열정을 손수 보여주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남아공의 개성만점 모자 ‘마카라파’
남아공의 개성만점 모자 ‘마카라파’

이들이 2010 월드컵에 맞춰 만든 마카라파는 개성이 넘친다. 각 나라의 국기와 상징물이 헬멧 위에서 곡예를 하듯 장식돼 있고, 나라별 국가대표팀의 별명과 응원 문구도 눈에 띄게 쓰여 있다. 티브이에 잡히거나 사진에 찍히는 마카라파 중에는 장식을 3층으로 쌓아 끝이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은 것도 있고, 공작새처럼 옆으로 넓게 장식물을 붙인 것도 있다. 축구장에서 쓸 수만 있다면 디자인이나 크기는 만드는 사람 마음이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전세계에 그 존재감을 알린 두 가지는 역시 부부젤라와 마카라파다. 그렇지만 부부젤라와 마카라파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부부젤라가 축구선수가 경기 중 심판에게 괴로움을 호소할 만큼 고통스러운 소음으로 인해 ‘비호감’ 낙인이 찍혔다면, 마카라파는 남아공 특유의 멋진 디자인 상품으로 합격점을 받았다는 것. 앞으로 전세계 어디서든 축구 경기가 벌어지는 곳에서는 마카라파를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물론 가장 완벽한 마카라파는 남아공 사람들이 그러하듯 축구에 대한 열정을 담아 직접 만든 거겠지만.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자료·사진 제공 피파(fifa.com), 남아프리카공화국 누리집(southafrica.info), 마코야 마카라바(makaraba.co.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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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월드컵 엠블럼과 마스코트

2010 월드컵 마스코트 ‘자쿠미’
2010 월드컵 마스코트 ‘자쿠미’

남아공월드컵이 진행되는 한 달 동안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는 게 두 가지 있다. 월드컵의 시각적 상징물인 엠블럼과 월드컵 대표 캐릭터인 마스코트다.

월드컵 엠블럼은 남아공의 문화유산인 샌족 암벽화에서 가져온 오버헤드 킥을 하는 사람의 역동적인 모습과 그 뒤로 무지개처럼 펼쳐진 남아공 국기 색깔 띠로 구성돼 있다. 남아프리카의 역사와 전통을 현대화한 엠블럼 작업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활동하는 그래픽디자이너 가비 데아브레우가 맡았다. 데아브레우는 남아공의 디자인회사인 ‘스위치 디자인’의 공동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년 넘게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며 코카콜라와 아우디, 남아공 럭비팀 로고 디자인 등 굵직한 디자인을 해왔다. 그는 남아공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엠블럼의 장점은 남아프리카의 강한 정체성을 잘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마스코트인 ‘자쿠미’(사진)는 월드컵 사상 최초의 표범 캐릭터다. 흰색 티셔츠에 초록색 반바지, 초록색 머리카락을 가진 얼룩무늬 표범 자쿠미는 언제나 축구공을 옆에 지니고 다닌다. 피파는 마스코트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였다. 많은 남아공 디자인회사에 디자인을 의뢰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 안드리스 오덴달에게 마스코트 디자인이 맡겨졌다. 이렇게 나온 자쿠미는 아프리카의 야생성과 마스코트로서의 친근함 등을 갖췄다는 평을 받았다.

안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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