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는 ‘페이크 퍼’(모조 모피)로 굳혀졌다. 모피 퇴출을 선언한 세계적 패션 브랜드 구찌, 버버리, 샤넬, 프라다 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전국 천만마리를 넘어선 반려동물 패션 시장 얘기다.
“반려동물 패션 시장은 동물권 감수성이 더 민감해요. 구스는 물론이고, 사람 의류에도 여전히 많이 쓰이는 토끼털이나 밍크 같은 동물성 소재를 강아지 옷 제작에 썼다간 큰일 나죠.” 지난 12월31일, 서울 강남구 한화 갤러리아백화점 펫 부티크에서 만난 김용균 상품기획자(MD)의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스웨터부터 패딩점퍼까지 100여벌의 반려동물 옷이 진열된 펫 부티크 매장에서 동물성 소재를 사용한 의류를 찾기 어려웠다. 반려동물 용품업계에서 비교적 ‘하이 패션’을 다루는 매장 특성상 고가 제품이 주류를 이루지만, 거위 털이나 캐시미어를 소재로 한 제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펫 부티크 쪽의 설명에 따르면 동물 의류업계는 비동물성 소재 사용이 ‘표준’에 가깝다. 2012년 매장을 연 펫 부티크는 개점 초기에 사람 의류 시장의 유행에 맞춰 동물성 소재를 활용한 제품을 진열하기도 했지만, 이를 불편해하는 소비자가 많았다고 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18년 국내 반려동물 가구 수는 약 511만 가구로, 4가구 가운데 1가구가 반려동물 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0 팔리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반려동물 산업 성장세는 반려동물 개체 수 증가를 뛰어넘을 정도로 가파르다고 전망한다.
리카리카 엑스트라 웜패딩. 사진 리카리카 제공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늘고,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비동물성 소재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아졌다는 게 펫 부티크 쪽의 설명이다. “2~3년 주기로 반려동물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요. 소비 트렌드도 그래요. 예전에는 명품을 중시했지만, 이제는 가치 소비 쪽으로 방향을 많이 틀었어요. 지금 이 매장에 있는 브랜드들, 전국 어디 가서 사람들에게 아냐고 물어보면 모르는 브랜드가 훨씬 많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제는 디자인이나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가 중심이 되는 거죠.”
김 상품기획자에 따르면 최근 2~3년 사이, 반려동물 패션 시장은 춘추전국시대에 버금갈 만큼 수많은 브랜드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동물성 소재를 최대한 지양하는 브랜드들은 소비자에게 제품과 함께 동물권 메시지도 함께 전하고 있다. 모피 퇴출을 선언한 몇몇 브랜드에 이들이 지향하는 바와 소비자 반응을 물었다.
반려동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리카리카’의 올겨울 히트 패션 아이템은 ‘엑스트라 웜 패딩’이다. 나일론 소재 외피에 고밀도 솜을 넣었다. 리카리카는 열전도율을 측정하는 기계로 확인한 결과 구스나 오리털에 견줘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방한 기능이 뛰어나다고 인식된 동물성 소재를 손쉽게 사용하기보다, ‘견체공학’적 특성을 고려하고 기능성 소재를 쓰는 쪽을 선택했다. 리카리카는 개들의 신체 구조에 맞춰 외투 아래쪽에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디자인하고 생활 방수가 가능한 외피를 써서 겨울철 눈이나 바람에 강한 재질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니트 제품도 울, 캐시미어 등 동물성 소재가 들어가지 않은, 면과 아크릴을 섞은 제품으로 원단을 새로 짰다. 겨울철 실내외에서 자주 활용하는 담요는 에코퍼(Eco Fur. 동물의 털 대신 가공 섬유로 만든 가죽 등) 소재를 썼다.
리카리카 엑스트라 웜 패딩. 사진 리카리카 제공
이들 제품과 관련해 리카리카 황희원 대표는 “물론 구스나 오리털도 솜털 함유량이나 품질에 따라 솜보다 더 따뜻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 후보에 올리지도 않았던 소재였다. 워낙 좋은 대체재가 많이 나오기도 하고 우리 ‘아이’(반려동물) 따뜻함을 위해 다른 동물을 희생하는 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다 보면 다른 반려동물도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이런 관심이 동물 전반 그리고 환경으로까지 뻗어 나가게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반려동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유노펫’ 허린 대표는 “(제작자의 입장에서) 동물성 소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허 대표는 “가격 대비 고급스러운 제품을 만들고 싶은 게 제작자의 마음인데, 인조 모피 제품의 품질이 아주 좋아졌다. 밀도가 빽빽하고 풍성한 제품은 저가 동물성 모피보다 월등하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에게 다른 동물의 희생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의 의류를 입히기 싫어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도 반영된다. 반려동물 의류업체 라나펠리스 목정윤 대표는 “반려동물 의류도 사람 의류의 유행을 일반적으로 따르기 마련인데, 지난겨울부터 유행한 호피나 얼룩말 무늬 등에는 유독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목 대표는 “반려동물에게 다른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씌우는 느낌이 들어 마음에서부터 거부감이 든다”는 소비자 반응을 전했다.
리카리카 엑스트라 웜패딩. 사진 리카리카 제공
비동물성 소재를 선택하는 것 외에 반려인의 마음이 편하고, 반려동물의 몸을 편하게 하는 겨울 의류 선택 팁은 무엇일까. 각 브랜드 대표들은 실내 생활을 주로 하는 국내 반려견 문화에 따라 방한 기능에 매달리기보다는 활동성이 좋은 디자인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노펫 허린 대표는 “강아지의 경우 사람 옷에 견줘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이미 많은 브랜드에서 최대한 좋은 소재를 쓰려고 할 것”이라며 “사람을 위해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옷보다, 말 못하는 동물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할 것, 여러 겹 겹쳐 입어야 하거나 옷 전체가 이어져 있는 올인원 제품은 개가 불편해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리카리카 황희원 대표는 “사람 옷은 드라이클리닝을 많이 하는데, 강아지 옷은 세탁이 어려운 소재를 사용하면 세탁소에 맡기기도 어렵고 집에서도 곤란하다. 세탁했을 때 변형이 적은 소재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더불어 반려동물에게 옷 입히기는 동물의 피부 건강, 기온에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세심하게 살펴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권혁호 수의사는 “피부 알레르기가 있는 동물의 경우 옷을 입었을 때, 피부 반응이 생기는지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과 다른 신체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사람의 경우 산책을 하면 체온이 오르면서 땀을 배출하고, 이 땀이 날아가면 체온이 떨어지지만, 개의 경우 땀샘이 없어 체온이 오른 채로 유지가 된다. 권 수의사는 “지나치게 갖춰 입는 건 오히려 체온 조절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고, 개들의 신체 구조상 불편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견종에 따라서도 선택지도 달라진다. 적도 부근이 고향인 셈인 치와와, 프렌치불독, 퍼그, 그레이하운드 등의 개들은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겨울철 외출 시 옷을 챙겨 입는 게 도움이 되지만, 포메라니안처럼 이중모가 있는 개들은 시베리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추위에 강한 편이다. 이에 대해 권 수의사는 “생활환경과 강아지의 특성상 기온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를 수 있으니, 반려동물이 기온 차 때문에 몸을 떠는지 분리불안 등 심적인 이유로 몸을 떠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