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코트를 양복 위에 입은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2의 배우 조승우. 사진 tvN 제공
코로나19로 주말에도 꼼짝없이 ‘집콕’해야 하는 시기다. 그나마 <티브이엔>(tvN)의 드라마 <비밀의 숲2>가 방영에 위안을 얻고 있다. ‘시즌 1’의 평가가 워낙 좋았던 드라마라 기대가 컸던 탓인지 ‘시즌 2’에 대한 평가는 다채롭게 엇갈린다. ‘역시 꿀잼이다’ ‘장르물을 기대했는데 정치 드라마가 됐다’ ‘7화부터는 속도감이 다시 붙었다’ ‘대사가 잘 안 들린다. 듣기 평가 시간 같다’ ‘1시간짜리 현대차 광고를 본 거 같다’ 등.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다음과 같다. ‘시즌 1이 너희 동재였다면, 시즌 2는 우리 동재다. 동재를 건들지 마라!’
패션을 눈여겨 봐야하는 직업 탓에 필자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작중 인물의 복장을 자동으로 분석하게 된다. 특히 주인공 한여진(배두나)이 입은 옷의 가격과 한여진의 직급인 경감의 월급을 자꾸 비교한다. ‘한여진은 월급을 백화점으로 자동이체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드는 통에 극의 흐름을 종종 놓친다. 한여진이 값비싼 옷과 가방으로 시선을 쓴다면, 또 다른 주연인 황시목(조승우)은 단벌 신사로 나와 트위터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다행히 6화부터는 다른 옷들이 등장한다.) ‘오빠, 제가 한 벌 사 드릴게요. 밥도 잘 못 먹고 다니면서….’ 하지만 필자는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다.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저리 좋은 양복과 코트를 산 것일까? 그리고 꽤 비싸 보이는데….
레인코트는 비가 오지 않는 날에 입어도 멋스럽다. 사진 매킨토시 제공
조승우가 극 중 가장 많이 입고 등장한 남색 코트는 분류상 ‘레인코트’에 속한다. 이름처럼 비 오는 날 입을 수 있도록 방수가 되는 것이 특징이다. 트렌치코트와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두 옷은 엄밀히 형태가 다르다. 레인코트는 넓은 의미에서 방수가 되는 코트를 통칭한다. 다만 의미를 축소하면 양복 위에 입을 수 있도록 만든, 디테일이 적은 단정한 외투를 가리킨다. 반면 트렌치코트는 어깨 스트랩, 허리 벨트, 벨트에 달린 금속 고리 등 디테일이 많은 게 특징이다. 트렌치코트가 유행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베이식 옷인 건 맞지만, 요소가 많기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옷은 아니다. 특히 트렌치코트의 기본 형태인 ‘더블브레스트 여밈’(외투에 단추를 두 줄로 다는 방식)은 키가 작은 이라면 피해야 한다.
반면 레인코트는 활용성이 높다. 일단 요소가 많지 않으니 양복 위에 걸쳐도 좋고 스웨터나 셔츠 위에 단출하게 입어도 괜찮다. 색만 잘 맞추면 대부분의 가을옷과 호환된다. 방수가 되니 날씨의 영향도 크게 받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은 물론이고 맑은 날 입어도 문제 될 게 없다. 또 비슷한 두께의 여느 옷보다 보온성이 좋다. 방수 원단은 대부분 조직을 조밀하게 짜는데, 이런 경우 바람이 옷 안으로 쉽게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다. 이를 ‘방풍’이라고 하며 방수와 방풍이 되는 옷은 상대적으로 체온을 지키는 데 유리해서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음매를 방수 테이프로 붙이면 방수 성능이 높아진다. 사진 노스페이스 제공
‘질 좋은 방수 원단은 물이 옷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원단에 물이 맺혀도 또르르 흐르거나 물을 튕겨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원단이 물을 튕겨내는 건 원단 자체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원단 표면에 별도의 코팅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발수 코팅’이라고 한다. 이런 처리를 하면 물이 아예 침입을 못 해 방수 성능이 높아지고 보기에도 한결 좋아 보인다.(물을 튕겨내는 우산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또한 물을 머금지 않으니 옷의 무게도 늘지 않는다. 다만 잦은 세탁, 특히 드라이클리닝 후에는 코팅이 벗겨지며 발수성이 저하된다.
레인코트를 ‘매킨토시 코트’(Mackintosh Coat) 줄여서 ‘맥 코트’(Mac Coat)라고도 한다. 레인코트를 처음 개발한 브랜드가 매킨토시이기에 붙은 이름인데, 화학조미료를 ‘미원’이라고 하고 트렌치코트를 ‘바바리(브랜드 버버리에서 온 것)’로 부르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스코틀랜드의 화학자인 찰스 매킨토시는 1823년 방수 원단을 발명했다. 고무를 녹여 시트 형식으로 만들고 그 고무 시트를 다시 원단에 붙이는 방식으로 옷을 만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옷을 꿰맬 때 생기는 미세한 바늘구멍으로 물이 새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옷 이음매를 방수 테이프로 막는 기술로 해결한다. 기능성을 인정받은 코트는 제 1·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의 군복에 활용되기도 했다.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매킨토시 코트가 레인코트의 대명사인 것은 바흐처럼 하나의 장르를 개척했고 작업물의 완성도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도 구찌, 에르메스, 질 샌더 같은 유수의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하고 있다.
고어텍스 원단은 아웃도어 재킷 만들 때 많이 사용하지만 점잖은 스타일 코트 제작에도 활용된다. 사진 캠브리지멤버스 제공
매킨토시보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건 ‘고어텍스’다. 워낙 유명하다 보니 방수 제품의 동의어이자 대명사로 추앙받지만, 실제로는 매킨토시와 마찬가지로 고어(Gore)사가 만든 원단 명을 가리킨다. 방수와 투습(땀으로 인한 수증기를 배출시킬 수 있는 기능)이 동시에 가능하니 시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고어텍스의 구조는 간단하다.(제작은 간단하지 않다.) 이 원단에는 멤브레인이라는 특수 필름을 대는데, 여기엔 아주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은 물방울 입자보다 2만배 이상 작고 수증기 분자보다는 700배 이상 크다. 자연히 비와 눈 같은 액체는 내부로 침투하지 못하고 몸에서 나는 땀은 밖으로 배출된다. 덕분에 수많은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고어텍스 원단을 활용해 옷을 만들고 있다.
역사와 화학을 곁들여 레인코트를 설명한 덕에 독자가 벌써 신문을 덮었거나 뉴스 플랫폼 창을 닫아 버린 게 아닐까 걱정이다. 하지만 레인코트가 ‘조승우 코트’로 회자되지 않더라도 살 만한 옷이라는 걸 설명하고 싶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쓸모 있고 봄과 가을에 전천후로 입을 수 있는 옷이니까. 사계절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쨍쨍했던 날 별안간 소나기가 쏟아지는 기후에서 이만한 옷이 또 있을까? 또한 매킨토시와 고어텍스가 방수 외투와 원단의 지배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 경위도 설명하고 싶었다. 지난 몇 년간 패션 에디터로 생활하며 “도대체 매킨토시는 왜 이렇게 비싼 거야?” “고어텍스는 너무 비싸!” 이런 이야기와 댓글을 하도 많이 봐서다.
후드 달린 방수 코트도 있다. 사진 스파이더 제공
그렇다고 반드시 매킨토시 코트와 고어텍스 원단으로 만든 외투를 사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 좋은 방수 외투를 찾으려면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 매장에서 태그도 떼지 않은 옷에 물을 주르륵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방수 외투를 살 때는 다음 두 가지를 확인하면 좋다. 대부분의 옷은 제작 시 실로 꿰매고 그러다 보면 그 작은 틈새로 물이 스며든다. 이 작은 틈을 방수 테이프로 막는 것이 필요하다.(전문 용어로 ‘심 실링’이라고 한다.) 외투 안쪽에 이런 처리가 되어 있다면 신경 써서 제작한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지퍼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방수 지퍼를 사용했는지도 확인하길 당부한다. 이 정도로 성의 있게 만든 옷이라면 꼭 물까지 부어볼 필요 없지 않을까?
임건(<에스콰이어> 디지털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