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감독의 무덤으로 불렸다. 1992년 감독 전임제 시행 이래 30년 동안 무려 26번 지도자가 선임됐다. 단순 계산하면 감독 수명이 평균 1년을 겨우 넘긴 셈이다. 더욱이 대표팀은 프로구단과 달리 일상적인 훈련도 불가능하다. 각 사령탑이 추구하는 축구를 이식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이런 면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은 행운아다. 벤투 감독은 2018년 8월17일 선임돼 지금까지 팀을 지휘하고 있다. 2022 카타르월드컵이 열리는 오는 11월20일(한국시각)이 되면, 그는 무려 1556일 동안 팀을 지도하게 된다. 한국 축구대표팀 역사에서, 월드컵 사이 4년 공백 동안 팀을 맡아 온전히 지도할 수 있었던 첫 지도자다.
월드컵 준비 기간과 성적은 상관관계가 있을까? 2000년대 들어 열린 월드컵이 보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월드컵을 치른 감독은 모두 5명인데, 이들은 평균 477일 월드컵을 준비했다. 이들 중 가장 좋은 성적(4강)을 낸 거스 히딩크 감독은 515일을 받았다. 917일 동안 준비 기간을 가진 허정무 감독은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했다. 모두 평균 이상 준비 기간을 가진 셈이다.
반면 준비 기간이 짧은 경우엔 성적이 나빴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조별리그 4위(1무2패)로 탈락했던 홍명보 감독은 354일 동안 대회를 준비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조별리그 3위(1승2패)로 떨어졌던 신태용 감독은 준비 기간이 344일에 불과했다. 심지어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겨우 253일 대회를 준비했고, 2006 독일월드컵에서 조별리그 3위(1승1무1패)로 탈락했다.
반면 벤투 감독은 평균 준비 기간보다 3배 이상 많은 시간을 받았다. 이처럼 긴 준비 기간이 벤투 감독의 지도 스타일과 맞아떨어진다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벤투 감독은 ‘플랜A’를 중시하는 지도자다. 자신이 추구하는 빌드업 축구와 그 색깔에 맞는 선수 기용을 고집하는데, 한국에 와서도 4년 넘는 부임 기간 일관성 있게 이를 지켜왔다. 벤투식 축구를 완성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강인이 지난 9월27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카메룬과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몸을 풀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그러나 막상 월드컵 개막이 30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도 벤투 감독에 대한 의구심은 끊이질 않는다. 긴 준비시간에도 불구하고 플랜A만 강조한 탓에, 이 전술이 통하지 않았을 때 사용할 대안이 없다는 비판이다. 손흥민(토트넘) 같은 주축 선수가 부상으로 빠지는 등 변수가 생겼을 때, 대응이 어려울 거라는 우려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이강인(마요르카) 기용 문제도 결국 이런 비판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벤투 감독은 성적으로 자기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소신이냐 고집이냐. 한 달 뒤면 카타르에서 판명된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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