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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카타르월드컵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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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월드컵이다. 4년 하고도 6개월 만이지만 분위기는 다소 뒤숭숭하다. 지난 몇년간 카타르월드컵을 둘러싸고 쏟아진 축구장 바깥의 온갖 ‘정의롭지 못한’ 뉴스들은 월드컵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든다. 12년 전 연단에 서서 직접 개최국을 발표했던 제프 블라터 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마저 얼마 전 “카타르를 개최지로 정한 건 실책이자 나쁜 결정”이라는 고백을 내놓았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카타르는 그들을 만나는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도 있다.
1992년생부터 1984년생까지, 지난 십수년 세월 동안 세계 축구를 움직였던 거물들이 모조리 30대에 접어들었다. 좋든 싫든 축구팬들은 올겨울 카타르에서 자신의 추억 속 영웅들과 집단적인 이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하향세에 접어든 이도 있고, 나이가 무색한 기량을 뽐내는 이도 있고, 바로 지금이야말로 최전성기인 이도 있다. 국적도 인종도 소속팀도 포지션도 각자가 처한 사정도 다르지만, 한가지는 같다. 모두 ‘월드컵’이 없다. 그들에게 다가올 기쁨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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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출신 EPL 득점왕: 손흥민 손흥민은 1992년생으로 월드컵은 이번이 세번째다. 지난 몇년간 손흥민이 숨 가쁘게 바꿔낸 아시아 축구의 역사는 이렇게도 요약할 수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8시즌 96골. 뤼트 판 니스텔로이, 데니스 베흐르캄프, 페르난도 토레스, 에리크 캉토나보다 많고,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35번째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적 정보 누리집 ‘트란스퍼마르크트’가 추산한 그의 가치는 이달 초 기준 7천만유로(약 965억원). 축구 천재가 몰려 있기로 소문난 92년생 중에서도 무함마드 살라흐와 네이마르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다만 손흥민과 월드컵 사이에는 앙금이 있다. 손흥민은 지난 두번의 대회를 눈물로 마감했다. 2014년 브라질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알제리전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넣고도 2-4로 패했고 끝내 무승(1무2패)으로 짐을 쌌다. 4년 뒤 러시아에서는 3경기 2골을 넣었으나 1승2패로 탈락했다. 손흥민은 그때마다 그라운드에서 오열했다. 본선 1년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교체된 감독 아래서 체계적 지원 없이 어수선한 팀의 에이스 노릇을 해야 했던 세월이다. 누군가는 그의 불운을 연민하고 누군가는 그의 능력에 물음표를 그린다. 월드컵 악연을 정산하러 11년 전 국가대표 데뷔골을 넣었던 ‘약속의 땅’에 돌아온 손흥민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본선 첫 경기까지 3주를 앞두고 얼굴 왼편 눈 주변에 골절상을 당했다. 수술을 받은 뒤 약 2주 만에 도하의 훈련장에 선 그는 검은색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는 첫 대표팀 훈련을 마친 뒤 “월드컵에 오면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저는 잘 안다”며 “1%가 안 되는 가능성이라도 가능성만 있다면 달려갈 것”이라고 했다. _______
미네이랑의 빚: 시우바 & 네이마르 치아구 시우바는 1984년생으로 이번이 네번째 월드컵, 네이마르는 손흥민과 동갑으로 이번이 세번째 월드컵이다. 호나우두·호나우지뉴·히바우두의 ‘3R’ 시대 이후 세계 최강 브라질을 대표하는 공수 기둥이지만, 월드컵에 관한 한 선배들 앞에서는 면목이 없다. 브라질은 2010년 8강을 시작으로 2014년 4강, 2018년 8강에서 탈락했다. 2002년 통산 다섯번째 우승을 끝으로 무관의 세월은 어느덧 20년이 됐고, 브라질이 주춤한 사이 월드컵은 유럽 천하가 됐다. 무엇보다 시우바와 네이마르는 브라질 축구사에 가장 치명적인 트라우마인 ‘미네이랑 비극’에 부채가 있다. 2014년 안방 월드컵에서 정상을 향해 달리던 브라질은 4강에서 독일을 만나 1-7로 패하며 궤멸했다. 브라질이 6골 차 패배를 당한 것은 1920년 이후 94년 만이었다. 이날 주장 시우바는 경고 누적으로, 에이스 네이마르는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주장과 에이스를 잃은 브라질은 그라운드 위에서 정처 없이 표류했고 독일의 먹잇감이 됐다. 이어진 3·4위전도 네덜란드에 0-3으로 졌다. 32개 참가국 중 최다 실점(14골) 오욕은 덤이었다. 절치부심 속에 8년이 흘렀고 브라질은 올해 3월 약 5년 만에 피파 랭킹 1위에 복귀했다. 치치 감독 체제에서 2016년부터 76경기를 치르는 동안 다섯번밖에 지지 않았을 정도로 이기는 습관이 들었다. 하나같이 폼도 좋다. 시우바는 38살 나이에 리그 최고 수준 수비를 펼치며 매 경기 첼시의 붙박이 주전으로 노익장을 과시 중이고, 네이마르는 올해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에서 리그 14경기 11골9도움의 성적으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특히 네이마르의 경우, 조국에 여섯번째 별을 안길 수 있다면 생애 첫 발롱도르(프랑스 축구 전문지 <프랑스 풋볼>이 주관해 수여하는 세계 축구 최고 권위 상)까지 노려볼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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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 벤제마 & 모드리치 카림 벤제마는 1987년생으로 올해 35살인데 월드컵은 한번(2014년)밖에 뛰지 못했다. 즉, 그는 올해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의 일원이지만 챔피언은 아니다. 2015년 그는 같은 대표팀 동료 마티외 발뷔에나에 대해 협박 및 금품 갈취를 공모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레 블뢰 군단’에서 퇴출됐다. 재판이 장기화되는 사이 지난해, 2020 유럽축구연맹(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다시 부름을 받았고, 벤제마는 올해 항소를 포기하면서 실형이 확정됐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대표팀에서 영영 외면하기에는 ‘지나치게’ 축구를 잘했다는 게 프랑스축구협회의 암묵적인 변명이다. 축구 실력으로 국가대표의 윤리적 자격을 갈음하는 일을 쉬이 합리화할 수 없겠다. 다만 벤제마가 축구를 잘하는 것은 사실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개러스 베일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왕년의 ‘BBC’ 삼각편대를 이뤘던 그는 나머지 둘이 떠난 뒤 홀로 마드리드의 왕이 되었다. 올해 역사상 두번째로 나이가 많은 발롱도르 수상자에 오른 벤제마의 남은 목표는 이제, 월드컵 정상뿐이다. 벤제마의 소속팀 10년지기인 루카 모드리치는 1985년생으로 월드컵은 이번이 네번째다. 그 역시 벤제마처럼 ‘메날두’(메시+호날두) 장기 집권 시대에 종언을 앞당긴 발롱도르 수상자(2018년)다. 탈세 혐의로 수사를 받은 전력도 있으나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는 영원한 영웅이었다. 벤제마가 열외됐던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모드리치는 경이로운 활동량과 경기 조율 능력으로 크로아티아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준우승팀 출신으로 월드컵 최우수선수(골든볼)에 뽑혔던 모드리치의 꿈 역시 아직 미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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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황금세대: 베일 & 아자르 개러스 베일은 1989년생이다. 월드컵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웨일스에 카타르는 두번째 월드컵이다. 직전 참가는 64년 전인 1958 스웨덴월드컵. 무려 펠레(브라질)가 신인상을 받은 대회다. 라이언 긱스라는 희대의 축구 신동을 배출하고도 월드컵 문턱 한번을 넘지 못했던 웨일스에 베일은 또 다른 축복이었다. 그는 긱스의 최연소 국가대표 데뷔 기록을 갈아치웠고, 유로 2016 대회에서는 팀을 4강에 올려놓았다. 에런 램지, 조 앨런 등 걸출한 웨일스의 황금세대가 그를 보좌했다. 마침내 월드컵이라는 염원에 뜻이 닿았으나 황금세대가 예전 같지 않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챔피언스리그 4연패의 주역으로 맹위를 떨쳤던 베일은 이후 불성실한 태도로 팬심을 죄다 까먹고 쫓겨나듯 팀을 옮겼다. 잉글랜드 2부 리그 팀에서 뛰는 앨런(스완지 시티)과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프랑스 리그를 전전하는 저니맨이 된 램지 역시 기량이 많이 떨어졌다. 다만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에서 로스앤젤레스 FC의 우승을 일군 ‘말년 베일’의 마지막 불꽃에는 작은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빈손으로 저물어가는 황금세대의 또 다른 대표는 벨기에이고, 그 표상이라고 할 수 있을 선수는 에덴 아자르다. 아자르는 1991년생으로 월드컵은 이번이 세번째다. 그는 2010년대 초 피파 랭킹 50위권에 머물렀던 벨기에를 5년 만에 1위(2015년)로 올려놓은 벨기에 황금세대의 기수였다. 그러나 벨기에는 2014년 8강, 2018년 4강(3위)으로 우승 적기를 놓쳤고, 아자르는 그보다 더 빠르게 실력을 잃었다. 동갑내기 에이스 케빈 더브라위너만 손 놓고 바라보기에는 왕년의 유럽 최고 ‘크랙’의 면이 서지 않는다. 아자르에게 도하는 재기의 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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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신계: 호날두 & 메시 호날두는 모드리치와 동갑(37살)이고 메시는 벤제마와 동갑(35살)이다. 카타르는 둘 모두에게 다섯번째 월드컵이다. 메시는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고, 호날두도 유사한 전망을 내비친 적이 있다. 호날두가 21살, 메시가 19살이던 2006년 둘은 첫 월드컵에 나갔고 이후 16년 동안 축구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함께 갈아치웠다. 다만 월드컵에 관해서는 몇가지 불명예를 공유하는데 첫번째는 우승컵이 없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둘 다 그동안 토너먼트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다는 점이다. 월드컵에서만 작아지는 ‘신계’지만 처한 맥락과 이력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상황이 좋지 않은 쪽은 호날두다. 올 시즌 호날두는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리그 10경기를 뛰면서 고작 1골을 넣었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벤치 출발 하거나 아예 명단에서 제외되는 일이 잦다. 호날두가 쉬면 맨유는 경기를 잘 풀고 호날두가 선발로 나오면 경기를 진다. 급기야 소속팀에서 ‘쓸모없는 선수’가 되어버린 호날두는 언론에 대고 공개적으로 구단과 감독을 흉보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포르투갈과 호날두는 2006년 월드컵에서 4강, 이후로는 16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반면 올해 메시의 페이스는 비범하다. 파리 생제르맹 소속으로 리그 13경기 7골10도움을 올렸다. 맨체스터시티의 엘링 홀란(18골3도움)과 네이마르를 제외하면 유럽 5대 리그에서 그보다 많은 공격포인트를 생산한 선수는 없다. 아르헨티나는 16일 아랍에미리트(UAE)를 상대로 한 최종 평가전에서도 5-0 대승을 거두며 36경기 무패를 이어갔다. 메시의 월드컵 최고점은 2014년 월드컵 준우승. 이후 메시는 두번의 코파 아메리카까지 국가대항전 결승에서만 세번을 내리 졌다. 잇따른 준우승의 상실감에 대표팀 은퇴까지 선언했지만 곧 돌아왔고, 어느덧 ‘진짜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도하/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느 선수가 심판을 속였는지,
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는 위선이 숨을 구석이 없다.
하늘이 내려다보는 푸른 잔디 위에
너희들의 기쁨과 슬픔을 묻어라. ― 최영미,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중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느 선수가 심판을 속였는지,
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는 위선이 숨을 구석이 없다.
하늘이 내려다보는 푸른 잔디 위에
너희들의 기쁨과 슬픔을 묻어라. ― 최영미,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중
15일 저녁 카타르 도하 시티센터 인근 건물 외벽에 걸린 손흥민 사진. 도하/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3. 17일(현지시각)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오후 훈련 중인 손흥민. 연합뉴스
아시아 출신 EPL 득점왕: 손흥민 손흥민은 1992년생으로 월드컵은 이번이 세번째다. 지난 몇년간 손흥민이 숨 가쁘게 바꿔낸 아시아 축구의 역사는 이렇게도 요약할 수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8시즌 96골. 뤼트 판 니스텔로이, 데니스 베흐르캄프, 페르난도 토레스, 에리크 캉토나보다 많고,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35번째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적 정보 누리집 ‘트란스퍼마르크트’가 추산한 그의 가치는 이달 초 기준 7천만유로(약 965억원). 축구 천재가 몰려 있기로 소문난 92년생 중에서도 무함마드 살라흐와 네이마르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다만 손흥민과 월드컵 사이에는 앙금이 있다. 손흥민은 지난 두번의 대회를 눈물로 마감했다. 2014년 브라질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알제리전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넣고도 2-4로 패했고 끝내 무승(1무2패)으로 짐을 쌌다. 4년 뒤 러시아에서는 3경기 2골을 넣었으나 1승2패로 탈락했다. 손흥민은 그때마다 그라운드에서 오열했다. 본선 1년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교체된 감독 아래서 체계적 지원 없이 어수선한 팀의 에이스 노릇을 해야 했던 세월이다. 누군가는 그의 불운을 연민하고 누군가는 그의 능력에 물음표를 그린다. 월드컵 악연을 정산하러 11년 전 국가대표 데뷔골을 넣었던 ‘약속의 땅’에 돌아온 손흥민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본선 첫 경기까지 3주를 앞두고 얼굴 왼편 눈 주변에 골절상을 당했다. 수술을 받은 뒤 약 2주 만에 도하의 훈련장에 선 그는 검은색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는 첫 대표팀 훈련을 마친 뒤 “월드컵에 오면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저는 잘 안다”며 “1%가 안 되는 가능성이라도 가능성만 있다면 달려갈 것”이라고 했다. _______
미네이랑의 빚: 시우바 & 네이마르 치아구 시우바는 1984년생으로 이번이 네번째 월드컵, 네이마르는 손흥민과 동갑으로 이번이 세번째 월드컵이다. 호나우두·호나우지뉴·히바우두의 ‘3R’ 시대 이후 세계 최강 브라질을 대표하는 공수 기둥이지만, 월드컵에 관한 한 선배들 앞에서는 면목이 없다. 브라질은 2010년 8강을 시작으로 2014년 4강, 2018년 8강에서 탈락했다. 2002년 통산 다섯번째 우승을 끝으로 무관의 세월은 어느덧 20년이 됐고, 브라질이 주춤한 사이 월드컵은 유럽 천하가 됐다. 무엇보다 시우바와 네이마르는 브라질 축구사에 가장 치명적인 트라우마인 ‘미네이랑 비극’에 부채가 있다. 2014년 안방 월드컵에서 정상을 향해 달리던 브라질은 4강에서 독일을 만나 1-7로 패하며 궤멸했다. 브라질이 6골 차 패배를 당한 것은 1920년 이후 94년 만이었다. 이날 주장 시우바는 경고 누적으로, 에이스 네이마르는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주장과 에이스를 잃은 브라질은 그라운드 위에서 정처 없이 표류했고 독일의 먹잇감이 됐다. 이어진 3·4위전도 네덜란드에 0-3으로 졌다. 32개 참가국 중 최다 실점(14골) 오욕은 덤이었다. 절치부심 속에 8년이 흘렀고 브라질은 올해 3월 약 5년 만에 피파 랭킹 1위에 복귀했다. 치치 감독 체제에서 2016년부터 76경기를 치르는 동안 다섯번밖에 지지 않았을 정도로 이기는 습관이 들었다. 하나같이 폼도 좋다. 시우바는 38살 나이에 리그 최고 수준 수비를 펼치며 매 경기 첼시의 붙박이 주전으로 노익장을 과시 중이고, 네이마르는 올해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에서 리그 14경기 11골9도움의 성적으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특히 네이마르의 경우, 조국에 여섯번째 별을 안길 수 있다면 생애 첫 발롱도르(프랑스 축구 전문지 <프랑스 풋볼>이 주관해 수여하는 세계 축구 최고 권위 상)까지 노려볼 법하다.
5. 16일 저녁 월드컵 우승컵 조형물이 서 있는 카타르 도하 알투마마 스타디움 들머리. 도하/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8. 16일 카타르 도하 국제축구연맹(FIFA) 팬 페스티벌 행사장에서 전시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한 참석자가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롱도르: 벤제마 & 모드리치 카림 벤제마는 1987년생으로 올해 35살인데 월드컵은 한번(2014년)밖에 뛰지 못했다. 즉, 그는 올해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의 일원이지만 챔피언은 아니다. 2015년 그는 같은 대표팀 동료 마티외 발뷔에나에 대해 협박 및 금품 갈취를 공모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레 블뢰 군단’에서 퇴출됐다. 재판이 장기화되는 사이 지난해, 2020 유럽축구연맹(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다시 부름을 받았고, 벤제마는 올해 항소를 포기하면서 실형이 확정됐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대표팀에서 영영 외면하기에는 ‘지나치게’ 축구를 잘했다는 게 프랑스축구협회의 암묵적인 변명이다. 축구 실력으로 국가대표의 윤리적 자격을 갈음하는 일을 쉬이 합리화할 수 없겠다. 다만 벤제마가 축구를 잘하는 것은 사실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개러스 베일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왕년의 ‘BBC’ 삼각편대를 이뤘던 그는 나머지 둘이 떠난 뒤 홀로 마드리드의 왕이 되었다. 올해 역사상 두번째로 나이가 많은 발롱도르 수상자에 오른 벤제마의 남은 목표는 이제, 월드컵 정상뿐이다. 벤제마의 소속팀 10년지기인 루카 모드리치는 1985년생으로 월드컵은 이번이 네번째다. 그 역시 벤제마처럼 ‘메날두’(메시+호날두) 장기 집권 시대에 종언을 앞당긴 발롱도르 수상자(2018년)다. 탈세 혐의로 수사를 받은 전력도 있으나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는 영원한 영웅이었다. 벤제마가 열외됐던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모드리치는 경이로운 활동량과 경기 조율 능력으로 크로아티아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준우승팀 출신으로 월드컵 최우수선수(골든볼)에 뽑혔던 모드리치의 꿈 역시 아직 미완이다.
16일 저녁 카타르 도하 카타라 문화마을에 있는 축구공 모양 조형물을 구경하고 있는 어린이들. 도하/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빛바랜 황금세대: 베일 & 아자르 개러스 베일은 1989년생이다. 월드컵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웨일스에 카타르는 두번째 월드컵이다. 직전 참가는 64년 전인 1958 스웨덴월드컵. 무려 펠레(브라질)가 신인상을 받은 대회다. 라이언 긱스라는 희대의 축구 신동을 배출하고도 월드컵 문턱 한번을 넘지 못했던 웨일스에 베일은 또 다른 축복이었다. 그는 긱스의 최연소 국가대표 데뷔 기록을 갈아치웠고, 유로 2016 대회에서는 팀을 4강에 올려놓았다. 에런 램지, 조 앨런 등 걸출한 웨일스의 황금세대가 그를 보좌했다. 마침내 월드컵이라는 염원에 뜻이 닿았으나 황금세대가 예전 같지 않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챔피언스리그 4연패의 주역으로 맹위를 떨쳤던 베일은 이후 불성실한 태도로 팬심을 죄다 까먹고 쫓겨나듯 팀을 옮겼다. 잉글랜드 2부 리그 팀에서 뛰는 앨런(스완지 시티)과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프랑스 리그를 전전하는 저니맨이 된 램지 역시 기량이 많이 떨어졌다. 다만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에서 로스앤젤레스 FC의 우승을 일군 ‘말년 베일’의 마지막 불꽃에는 작은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빈손으로 저물어가는 황금세대의 또 다른 대표는 벨기에이고, 그 표상이라고 할 수 있을 선수는 에덴 아자르다. 아자르는 1991년생으로 월드컵은 이번이 세번째다. 그는 2010년대 초 피파 랭킹 50위권에 머물렀던 벨기에를 5년 만에 1위(2015년)로 올려놓은 벨기에 황금세대의 기수였다. 그러나 벨기에는 2014년 8강, 2018년 4강(3위)으로 우승 적기를 놓쳤고, 아자르는 그보다 더 빠르게 실력을 잃었다. 동갑내기 에이스 케빈 더브라위너만 손 놓고 바라보기에는 왕년의 유럽 최고 ‘크랙’의 면이 서지 않는다. 아자르에게 도하는 재기의 땅이 될 수 있을까.
16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아랍에미리트의 친선 경기에서 골을 터뜨리고 있는 리오넬 메시. EPA 연합뉴스
14일 포르투갈 오에이라스에서 훈련 중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신화 연합뉴스
엇갈린 신계: 호날두 & 메시 호날두는 모드리치와 동갑(37살)이고 메시는 벤제마와 동갑(35살)이다. 카타르는 둘 모두에게 다섯번째 월드컵이다. 메시는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고, 호날두도 유사한 전망을 내비친 적이 있다. 호날두가 21살, 메시가 19살이던 2006년 둘은 첫 월드컵에 나갔고 이후 16년 동안 축구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함께 갈아치웠다. 다만 월드컵에 관해서는 몇가지 불명예를 공유하는데 첫번째는 우승컵이 없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둘 다 그동안 토너먼트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다는 점이다. 월드컵에서만 작아지는 ‘신계’지만 처한 맥락과 이력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상황이 좋지 않은 쪽은 호날두다. 올 시즌 호날두는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리그 10경기를 뛰면서 고작 1골을 넣었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벤치 출발 하거나 아예 명단에서 제외되는 일이 잦다. 호날두가 쉬면 맨유는 경기를 잘 풀고 호날두가 선발로 나오면 경기를 진다. 급기야 소속팀에서 ‘쓸모없는 선수’가 되어버린 호날두는 언론에 대고 공개적으로 구단과 감독을 흉보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포르투갈과 호날두는 2006년 월드컵에서 4강, 이후로는 16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반면 올해 메시의 페이스는 비범하다. 파리 생제르맹 소속으로 리그 13경기 7골10도움을 올렸다. 맨체스터시티의 엘링 홀란(18골3도움)과 네이마르를 제외하면 유럽 5대 리그에서 그보다 많은 공격포인트를 생산한 선수는 없다. 아르헨티나는 16일 아랍에미리트(UAE)를 상대로 한 최종 평가전에서도 5-0 대승을 거두며 36경기 무패를 이어갔다. 메시의 월드컵 최고점은 2014년 월드컵 준우승. 이후 메시는 두번의 코파 아메리카까지 국가대항전 결승에서만 세번을 내리 졌다. 잇따른 준우승의 상실감에 대표팀 은퇴까지 선언했지만 곧 돌아왔고, 어느덧 ‘진짜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도하/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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