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 그거 안 됩니다.”
전국대회 4관왕 사령탑인 김재웅 영등포공고 감독의 선수 코칭 노하우 1번은 ‘끼 살리기’로 볼 수 있다. 최근 한겨레와 서울 영등포공고 운동장에서 만난 그는 “선수들에게 하지 말라는 말 절대 하지 않는다. 그 말 하는 게 문제다. 선수들은 뭐든지 해봐야 하고, 실수하면서 배운다”고 설명했다.
공격수가 최후의 일격으로 골을 터트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홉 번 시도해 여덟 번 막혀도 좋다. 한번 성공하면 그게 승패를 낸다.” 드리블 돌파도 고정된 룰은 없다. 창의적인 플레이는 순간 판단에서 나온다. 존중해야 한다.
이런 신념이 영등포공고를 백운기(2월), 대통령금배(8월), 전국고등리그 왕중왕전 겸 제78회 전국고교선수권(8월), 전국체전(10월) 정상으로 이끈 배경이다. 평생 한 번 우승하기도 힘든 전국대회에서 한해 4번 정상에 올랐고, 고교리그 권역별 대회와 전국체전 서울시 선발전 패권까지 포함하면 6관왕을 일궜다. 도대체 무엇이 다르길래?
오래 대통령금배 대회에서 우승한 영등포공고 선수들. 대한축구협회 제공
김 감독은 “하지 말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선수들이 “해야 할 것”은 많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패스의 속도다. 김 감독은 “패스의 속도가 빠르고 강해야 스피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 패스가 느리면 선수도 느려지고, 템포가 떨어진다”고 했다.
이날 영등포공고 운동장 한쪽에서 벌어진 미니게임은 마치 국가대표팀 연습훈련처럼 긴장감 넘쳤다. 폭 25m의 공간에 골대를 갖다 놓고 1대1, 2대2, 3대3 식으로 대결을 펼쳐 나간 뒤 8대8 상황에서는 좁은 공간에서의 압박과 탈압박, 슈팅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선수들은 드리블과 패스를 허투루 하지 않았고, 틈만 나면 쏘는 슈팅은 골대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했다. “헉~헉”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김 감독도 “걷지 말고” “수비 바짝바짝” “한 명씩 나가야지” “위에서 해줘야지” 등을 외치며 수비 집중력을 강조했다. 김 감독은 “공격은 마음껏 창의적으로 해도 수비는 다르다. 세계적인 공격수라도 리오넬 메시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수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웅 영등포 공고 감독이 선수에게 지시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비진을 끌어올려 상대 진영에서 플레이하는 상황에서 공을 빼앗기면 전방부터 곧바로 압박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중앙이나 후방으로 들어가는 상대의 침투패스를 지연시킬 수 있다. 안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토트넘이 빌드업과 패스, 공격축구를 펼치다가 역습 시 최전방의 손흥민부터 전원이 수비로 전환하는 것과 비슷하다.
독일 레버쿠젠 2부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했던 김 감독은 연례행사처럼 독일 분데스리가 팀들의 훈련을 견학한다. 최근 분데스리가 선두 레버쿠젠의 사비 알론소 감독을 만난 그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조직력을 강조했지만, 결국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로 산하 유스팀(U-18)이 중학 졸업 선수들의 1순위 희망팀인 상황에서, 학원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연구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실전형으로 패스, 전술, 체력을 결합한 훈련을 통해 프로 유스팀에 가지 못한 선수들에게 엄청난 자극을 준다. 올해 각종 대회에서 김천 상무, 전남 드래곤즈, 아산 무궁화,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의 유스팀은 영등포고의 제물이 됐다. 두 명의 선수가 유망주 영입에 적극적인 포르투갈 1부 포르티모넨세와 계약한 것도 돋보인다. 1~2학년 때 평범했던 선수들은 3학년이 될 때까지 살아남으면 특급으로 변모한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느낀 게 많았다. 나는 다르게 가르치고 싶었다”고 했다. 단조로운 체력 훈련에서 벗어나 게임 형태로 재미를 돋우고, 똑같은 훈련 프로그램이라도 날마다 강조점을 달리하는 것은 현대축구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다.
영등포공고는 올해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서 우승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그것은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작업이기도 하다. 평가는 사후적으로 이뤄질 뿐이고, 목표까지 뚝심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 다행히 결과는 만족스럽다. 돌파하고, 강하게 패스하고, 뒤에서 공 돌리지 않고, 상대 진영에서 경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6관왕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프로 유스팀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유스팀에 간 선수들을) 다시 만났을 때는 다를 거야”라는 김 감독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2007년 영등포공고 감독으로 부임해 올해 단 1패(44승2무)만을 기록한 그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18일 열린 고대 축구 100년 기념식에서는 ‘지도자 상’까지 받았다.
학원 축구의 새로운 경쟁력을 보여준 그는 “기술과 체력, 인지능력의 3요소에 더해 선수들의 성격도 플레이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은 반복적인 훈련에 의해 다듬어진다”고 했다. 기본이 가장 중요하며, 성격조차 예외 없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글·사진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