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스테픈 유스타키오(오른쪽)가 24일(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벨기에와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알폰소 데이비스를 위로하고 있다. 알라이얀/AP 연합뉴스
36년 만에 오른 월드컵 본선. 난민으로 떠돌던 자신을 감싸준 캐나다에 대회 첫 득점을 선물할 기회. 22살 어린 선수에겐 너무 큰 중압감이었을까. 캐나다 에이스는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 얼굴을 감싸 쥐었다. 결과는 0-1 패. 하지만 경기에 졌다고 고개 숙일 필요는 없었다. 월드컵에서 그는 희망을 쏘아 올렸고, ‘조국’ 캐나다 역시 그를 위해 활짝 웃었기 때문이다.
캐나다(피파 랭킹 41위)는 24일(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벨기에(2위)에 0-1로 패했다. 캐나다는 이날 21개 슈팅을 시도하며 벨기에(9개)를 압도했지만, 끝내 승부를 뒤집진 못했다. 무엇보다 전반 8분 핸드볼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고도 득점에 실패한 게 뼈아팠다.
캐나다 알폰소 데이비스가 24일(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벨기에와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 얼굴을 감싸 쥐고 있다. 알라이얀/로이터 연합뉴스
절체절명 순간에 키커로 나선 건 알폰소 데이비스(바이에른 뮌헨)였다. 데이비스는 라이베리아 출신으로 가나에서 태어나 난민 캠프 생활을 했고, 다섯살 때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캐나다에 왔다. 캐나다 국적을 얻은 그는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멕시코, 미국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북중미 예선 1위를 캐나다에 안겼다. 그야말로 캐나다 축구 영웅이다.
이미 2019∼2020시즌 바이에른 뮌헨에 트레블(리그·컵대회·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선물하는 등 큰 무대 경험이 많지만, 그래도 월드컵은 무게가 남달랐을까. 페널티킥 키커로 나선 데이비스는 이날 터무니없이 약한 슈팅을 날렸고, 선제골 기회는 상대 팀 수문장 티보 쿠르투아(레알 마드리드)에 가로막혔다. 캐나다는 이날 전체적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결국 전세를 뒤집진 못했다.
존 허드먼 캐나다 감독이 24일(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벨기에와 경기가 끝난 뒤 캐나다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알라이얀/AFP 연합뉴스
그러나 캐나다 대표팀과 데이비스에게 쏟아진 건 비난이 아닌 찬사였다. 존 허드먼 캐나다 감독은 경기 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이 젊은이들은 변화를 만들었다”며 “우리는 지금 월드컵 무대에 있다. 팬들을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선수들에게 2012 런던올림픽 때 여자 대표팀이 해낸 일을 말해줬다. 캐나다는 당시에도 첫 경기에 졌지만 계속 나아갔고, 끝내 동메달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캐나다 국영 방송 <시비시>(CBC)는 경기 결과를 전하며 “캐나다는 월드컵 개막전에 패했지만(lost), 존경을 얻었다(won)”는 제목을 달았다.
<시비시>는 “캐나다는 피파 랭킹은 39계단 아래였지만 경기 내내 더 나은 팀처럼 보였다”며 “우리는 예선을 1위로 돌파했지만 큰 무대에서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된 뒤 우리는 해답을 얻었다. 우리는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득점 기회를 만들었고 슈팅 개수에서 상대를 압도했다. 이것은 용감한 패배였다”고 했다.
캐나다 축구팬이 24일(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벨기에와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알라이얀/AP 연합뉴스
데이비스는 앞서 지난 8월 트위터를 통해 “캐나다는 나와 우리 가족을 환대했고,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줬다. 나는 덕분에 꿈을 이뤘고, 캐나다 국가대표로 뛰는 건 대단한 영광이다. 캐나다를 위해 나는 이번 월드컵에서 얻는 모든 수익을 기부하겠다”고 썼다. 축구를 통해 캐나다에 보답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이번 대회에서 어디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까.
캐나다는 11월28일 새벽 1시 크로아티아, 12월2일 오전 0시 모로코와 16강 진출권을 둔 대결을 펼친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