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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서 현실로 레이싱…제 ‘꿈의 속도’엔 한계 없죠

등록 2022-04-27 08:59수정 2022-04-27 23:20

[별별스타] 프로 드라이버 이정우
시뮬레이터 게임 통해 프로 된 사례
비용 부담돼 카트 대신 게임 매달려
초등생 때부터 매일 3시간 ‘랜선 주행’

실제 레이서 될 기회 얻으려 일본행
알바하며 주말 경기서 우승 등 경력
한국 와서 슈퍼레이스 폭풍 질주 중
이정우(엑스타레이싱)가 2022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22일 자신의 스톡카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박강수 기자
이정우(엑스타레이싱)가 2022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22일 자신의 스톡카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박강수 기자

‘심레이싱’은 시뮬레이터 레이싱의 줄임말이다. 가상의 레이싱. 즉, ‘레이싱 게임’이지만 카트라이더, 마리오카트와는 장르가 다르다. 실제 운전 감각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차종별 가속력과 브레이크 느낌, 심지어 엔진 소리까지 재현한 ‘극사실주의’ 게임이다. 따라서 심레이싱은 카레이싱의 입문로가 되기도 한다. 위닝일레븐(축구게임)을 잘한다고 축구 선수가 되긴 힘들지만 레이싱 게임을 통해 프로가 된 드라이버는 있다. 한국에서는 이정우(27·엑스타레이싱)가 그렇다.

한국의 최상급 모터스포츠 대회 슈퍼레이스 슈퍼6000 클래스에 참가하는 프로 드라이버 이정우는 ‘랜선 출신’이다. 올 시즌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22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서킷에서 만난 그는 “8살 무렵 시작된 ‘자동차 앓이’가 끝나질 않더라. 초등학생 때부터 하루 2∼3시간씩 게임을 하고, 결국 이 지경까지 왔다”며 웃었다. 카레이서를 희망하는 아이들은 보통 카트를 타면서 조기교육을 시작한다. 이정우도 카트를 타긴 했지만 연 1∼2천만원의 비용이 부담돼 게임을 더 열심히 했다.

이정우가 지난해 슈퍼6000 클래스 5라운드를 3위로 마무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슈퍼레이스 제공
이정우가 지난해 슈퍼6000 클래스 5라운드를 3위로 마무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슈퍼레이스 제공

그는 게임에서 길을 찾았다. 일종의 우회로였지만 십대 이정우가 보기에는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목표는 GT아카데미. 그란투리스모라는 심레이싱 게임을 통해 우수자원을 선발하고 실제 프로 드라이버로 훈련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국제 오디션이다. 주로 해외에서 열리는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정우는 모험수를 뒀다. ‘한국은 어렵지만 일본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전부 일본어 공부에 쏟아부었고, 1년 반 만에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 자격증을 취득한 후 대학에, 그리고 일본에 교환학생을 갔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던 것일까. 그가 무작정 일본 유학을 시작한 2015년, 소문만 무성했던 GT아카데미가 처음으로 아시아 대회를 열었다. 곧장 출사표를 낸 이정우는 온·오프라인 누적 참가자 6만여 명이 몰린 일본 예선에서 랩타임 상위 20위 안에 들었고, 마침내 1등으로 최종 6명에 뽑혔다. 그는 일본 대표로 아시아 챔피언을 가리는 영국 실버스톤행 비행기에 올랐다. 실버스톤 서킷은 F1 대회가 처음으로 열렸던 모터스포츠의 성지다. 아쉽게도 이정우는 실제 드라이빙 능력을 겨루는 마지막 문턱을 넘진 못했다.

2015년 GT아카데미 일본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한 이정우. 슈퍼레이스 제공
2015년 GT아카데미 일본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한 이정우. 슈퍼레이스 제공

눈 앞에서 프로의 길을 놓쳤지만 경험은 그의 시야를 틔워줬다. 영국에서 돌아온 뒤 2년 반 동안 더 일본에 머물면서 카레이서의 길을 모색했다. 평일에는 이삿짐 센터, 일식당, 노래방을 전전하며 새벽부터 자정까지 알바를 뛰었고, 주말마다 짬짬이 아마추어 대회에 나갔다. 이정우는 “지금 돌아보면 미친놈처럼 살았다. (차 탄 기억보다) 알바한 기억이 더 많다”면서도 “아마추어 레이스하면서 드라이빙 감각과 스킬을 몸에 많이 익혔다”고 돌아봤다.

일본에서 차근차근 우승과 포디움 경력을 쌓은 이정우는 2019년 한국에서 CJ로지스틱스 공개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프로 드라이버가 됐다. “지금 제 실력의 80%는 게임에서 왔다. 하지만 나머지 20%를 채우지 못하면 프로가 될 수 없다. 이 20%의 반은 일본에서 배웠고 나머지 반은 엑스타레이싱(현 소속팀)에서 채우고 있다.” 이정우가 뚫어낸 우회로는 이제 대로가 됐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은 2019년부터 직접 디지털 모터스포츠 대회를 연다. 심레이싱 출신 드라이버도 늘어가는 추세다.

이정우의 스톡카 내부 모습. 슈퍼레이스 제공
이정우의 스톡카 내부 모습. 슈퍼레이스 제공

2022시즌 개막을 앞두고 테스트 주행 중인 이정우. 슈퍼레이스 제공
2022시즌 개막을 앞두고 테스트 주행 중인 이정우. 슈퍼레이스 제공

올해로 슈퍼6000 3년차, 아직까지는 2∼3위로 라운드 포디움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다. 데뷔 시즌 1등으로 달리다 차가 멈춰선 적도 있고, 지난 24일 개막전 1라운드 결선에서도 차에 이상이 생겨 순위를 놓쳤다. “경기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도 생긴다. 개막전도 좋은 테스트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초조함은 없었다. 랜선 최강자는 올해 ‘오프라인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까. 이정우는 다음달 21일 슈퍼레이스 2라운드에서 질주를 이어간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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