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문경시청)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 전 라켓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그때, 그는 생각했다.
‘10패는 안 할 거야.’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상대 전적 2승7패. ‘왜 나와 할 때만 잘하지’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밀렸다. 작년에는 7번 맞붙어 한 번밖에 못 이겼다. 초반은 긴장의 연속. 하지만 중반 이후 ‘내가 지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김유진(23·문경시청)은 현 국가대표 이수진(21·옥천군청)을 단식에서 꺾었고, 기세를 몰아 문경시청은 제100회 동아일보기 전국정구대회 여자부 단체전에서 우승(5월10일)했다. 안방에서 열린 100번째 대회 정상이라서 감격이 더 컸다. 주인식 문경시청 감독은 “우승 일등공신은 김유진”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최근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김유진 또한 “제일 기억에 남을 대회”라고 했다.
정구는 테니스와 비슷하다. 경기장은 똑같다. 클레이코트, 하드코트 다 쓴다. 다만 말랑말랑 고무공을 사용한다. ‘소프트 테니스’로 불리는 이유다. 라켓 크기는 테니스보다 작고 무게도 가볍다. 테니스와 달리 라켓 한 면만 사용해 경기한다. 한국은 정구 최강국으로 아시안게임 때마다 좋은 성과를 내왔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때 전 종목(7종목)을 휩쓸었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4종목) 때는 2개 종목에서 정상에 섰다.
김유진의 경우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때부터 정구를 시작했다. 전학을 간 안성 백성초에 정구팀이 있었다. 처음에는 부모님 반대에 부닥쳤지만, “빵 간식도 주고, 운동 끝난 뒤 군것질도 할 수 있어서” 몰래 운동을 나갔다. 열심히 하는 막내의 고집에 부모님도 결국 백기를 들었다. 김유진은 “공을 치면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랠리가 이어질 때 쾌감도 있다”고 했다.
김유진 스스로 말하는 장점은 백핸드 스트로크. 하지만 포핸드 스트로크는 약하다. 김유진은 “백핸드가 100점이라면 포핸드는 30점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연습할 때는 포핸드에 집중해서 하는 편”이라고 했다. 주인식 감독의 말도 다르지 않다. 주 감독은 “(김)유진이는 다른 선수에 비해 스트로크를 한 템포 빠르게 친다. 백핸드에 있어서도 각이 좋은 다양한 공격을 펼치는데 포핸드 때 범실이 많이 나와서 앞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김유진은 클레이코트에서 더 강한데 빠른 템포의 공격으로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어서다. 반면 하드코트에서는 공의 바운드가 커서 상대에게 오히려 역습을 허용하기도 한다.
김유진은 정구를 “인생역전”이라고 표현했다. “정구로 다른 세상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또 다른 세상을 꿈꾼다. 태극마크가 그것이다. 아직까지 성인 대표에 뽑힌 적이 없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코로나19 확산으로 1년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던 이유다. 내년 4월 대표선발전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유진은 “올해는 여러모로 내 정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 백핸드 모자란 70점을 반드시 채워서 내년에 꼭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고 싶다”고 했다. 당장의 목표는 국무총리기(6월10~17일·충북 옥천) 단체전 3연패다. 김유진은 “3연패를 하면 우승기를 가져올 수 있다. 이번에도 꼭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김유진은 인터뷰 말미에 일반인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종목인 정구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정구 라켓을 휘두르며 땀 흘리는 많은 선수들이 있어요. 국내에서는 테니스보다 더 역사가 깊은 것으로 아는데, 테니스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랠리가 있고 힘뿐만 아니라 기교도 필요한 정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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