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이지은 부순희 한규철(왼쪽부터)
구릿빛 얼굴 구릿빛 이름 구릿빛 투혼…
대회 한달 전 무릎연골이 파열돼 수술을 해야겠지만 진통제를 맞고 출전한 유도의 김광섭. “저 놈, 매트에서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죠”라던 아버지의 애처로운 눈빛이 떠오릅니다. 전신탈모증이어서 시상대에도 수영모자를 쓰고 오른 이지은. 자괴감에 운동을 그만두려했을 때 “그래도 수영장에서는 모자를 쓸 수 있지 않니?”라고 했다던 그 어머니는 많이 기뻐하시던가요? 위암 수술을 받느라 몸무게가 42㎏까지 줄어든 39살의 부순희. 6년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고 10m 공기권총 사선에서 총을 들었는데, 얼굴이 하도 창백해 많은 이들이 걱정을 했었죠.
그들은 15일 끝난 도하아시아경기대회 시상대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던 ‘동메달리스트’들입니다. 우린 늘 그랬듯 그들의 이름까지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아마도 한국이 따낸 동메달 82개의 하나쯤으로 묻히고 말겠죠.
한국스포츠에서도 그들은 10점 만점 중 1점짜리에 불과한 선수들입니다.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은 10점, 은메달은 2점, 동메달은 1점의 연금혜택 점수를 받습니다. 20점이 돼야 월 30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영의 한규철은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만 4개를 땄습니다. 그는 1998년과 2002년 대회에서 거둔 동메달 7개가 더 있습니다. 아직도 20점이 되려면 9점이 모자랍니다.
한-중-일 3파전으로 치러져온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는 게 어렵지 않아 이렇게 낮은 점수가 채택됐다고 합니다. 출전국이 많지 않은 일부 종목은 한두 경기만 이겨도 동메달을 ‘거저먹는’ 경우가 생겨 점수를 높이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세팍타크로 여자선수들은 2경기를 하고 단체전 동메달을 확보했습니다. “그게 무슨 운동이냐”는 싸늘한 시선에도 이마에 피멍이 들며 훈련해온 그들의 경기를 보며 메달을 ‘거저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동남·중앙아시아의 성장세가 두드러져 이젠 전 종목에 걸쳐 아시아경기대회 3위도 버거워졌습니다. 여자유도 이소연은 은메달을 목에 걸고도 시상대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의 말이 귓전을 맴돕니다. “우리나라는 1등이 아니면 쳐주지 않으니까요.”
다시 유도 김광섭 얘기입니다. 그는 미뤘던 오른무릎 수술을 받습니다. 재활치료까지 3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3개월로 못박은 것도 내년 3월 세계선수권 선발전이 기다리고 있어서입니다. 82개의 동메달. 그 구릿빛이 자아내는 투혼치곤, 우리가 참 야박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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