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섭, 남 경보 20㎞ 6위
이틀전부터 복통 시달려
결승선 통과직후 쓰러져
“런던올림픽선 메달 딸 것”
이틀전부터 복통 시달려
결승선 통과직후 쓰러져
“런던올림픽선 메달 딸 것”
경기 이틀 전 밤. 배가 뒤틀리듯 아팠다. 가벼운 복통인가 싶었는데 통증이 심해져 결국 응급차에 실려갔다. 급성 위경련이었다. 도핑 때문에 약도, 주사도 마음놓고 받을 수 없었다. 이민호 대표팀 경보 코치는 “대회 출전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했다. 다행히 이튿날 아침 통증이 많이 가셨다. “경기를 앞두고 현섭이가 너무 예민했던 것 같다. 그래도 오후에 컨디션을 체크해 보니 80% 정도까지는 올라와 있더라.”
28일 대구 시내에서 열린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20㎞ 경보. 김현섭(26·삼성전자)은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들것에 실려나간 뒤 한참 뒤에야 안정을 되찾았다. 경보는 걷는 경기지만 달리기 종목보다 더 힘들다. 땅을 디딜 때 무릎을 굽혀서는 안 되며, 두 발이 동시에 땅에서 떨어져도 안 된다. 이런 까다로운 자세 규정 때문에 보통 같은 구간을 뛰는 달리기 선수보다 1.5배 체력 소모가 많다. 이 코치는 “딱 보면 안다. 현섭이가 몸상태가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냈다”고 했고, 김현섭은 “14㎞ 지점부터 너무 괴로웠다. 결승선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1시간21분17초. 참가 선수 46명 가운데 6위였다.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1시간19분31초)에 2분가량 뒤졌다. 1위 발레리 보르친(러시아·1시간19분56초)과는 1분 이상 차이가 났다. 내심 기대했던 메달권과도 거리가 있었지만, 이번 대회 한국의 첫 ‘톱10’ 진입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김현섭은 2007년 오사카대회, 2009년 베를린대회에서 20위, 34위에 그쳤다.
들것에 실려나가 안정을 취한 뒤 김현섭이 취재진 앞에 섰다. “아내 뱃속에 둘째가 자라고 있고, 장인어른도 와서 경기를 보셨어요. 정식으로 결혼식을 못 올려서 11월 결혼식 때 꼭 메달을 따서 아내에게 바치려고 했는데….” 김현섭의 눈가에 물기가 스며들었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그는 “메이저 대회에서 늘 20~30위권에 머물렀는데 홈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징크스를 깬 것 같아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국 경보의 자존심 김현섭은 2004년 세계주니어육상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입상하며 한국기록을 처음으로 1시간19분대까지 단축했다. 이번 대회는 그의 세번째 세계선수권 무대였고, 당당히 톱10은 물론 메달까지 노린 대회였다. 김현섭 자신도 “메달이 목표”라며 각오를 다졌지만 실력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이민호 코치는 “10위 안에 들긴 했으나 성에 차지 않는다”며 “이게 한국 육상의 현 위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그동안 김현섭은 체력이 단점으로 꼽혔지만, 이날은 막판에도 선두권에서 뒤처지지 않고 치열하게 순위 싸움을 벌였다. 내년 런던올림픽 전망을 밝게 하는 이유다. 이 코치는 “경보 선수의 전성기는 20대 중반 이후부터다. 체력을 더 보강해 1시간18분대 중반까지 기록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가 끝나고 장인이 김현섭을 맞았다. “환한 표정으로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 사위 잘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 런던올림픽에서 더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김현섭의 종아리는 온 힘을 쥐어짠 탓에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대구/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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