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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봉들은 셀카질, 조직위는 헛발질

등록 2014-09-26 20:05수정 2014-09-27 21:13

인천아시안게임이 준비 부족으로 ‘졸속’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지난 20일 밤에는 11시38분부터 12분간 성화가 꺼졌다. 연합뉴스, 박현철 기자
인천아시안게임이 준비 부족으로 ‘졸속’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지난 20일 밤에는 11시38분부터 12분간 성화가 꺼졌다. 연합뉴스, 박현철 기자
[토요판] 르포 / 아시안게임 현장
▶ 인천 아시안게임은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담긴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대회’ 소리를 듣는 중입니다. 준비 부실과 어설픈 대회 운영 때문입니다. 성화가 꺼지질 않나, 조직위가 외신기자들과 다투질 않나, 정전으로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을 취재하는 기자가 현장의 상황을 전해왔습니다.

개막식의 주인공은 배우 장동건과 이영애였지만 아시안게임은 엄연한 스포츠 잔치다. 인구 44억 아시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소수정예 선수들의 몸놀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잔치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 가치를 살리는 게 대회 조직위원회와 대회의 주인인 한국 정부가 할 일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는 개막식에서 감지됐고 하루이틀 일정이 진행되면서 그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물론 스포츠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조직위의 ‘헛발질’쯤이야 애써 외면할 수도 있다. 한국 선수들의 금메달을 응원하는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탁구나 수영, 유도와 체조, 역도 등 아시아 1위가 곧 지구촌 1위인 종목들도 수두룩하다. 묘기에 가까운 세팍타크로의 시저스킥과 ‘격투형 술래잡기’ 카바디의 거친 몸싸움엔 아시아인들만의 쏠쏠한 재미가 숨어 있다.

개막식부터 ‘뭔가 이상하다’

승리의 기쁨 반대편엔 패배의 의미도 있다. 이번 대회 1호 ‘동네북’으로 일찌감치 예선 탈락한 몰디브 여자축구팀은 조별리그 3경기 동안 38골을 내주고 한골도 넣지 못했다. 3경기 동안 슈팅 수가 한개에 불과한 실력이었다. 40만명 안팎의 인구, 수많은 산호초 섬으로 이뤄진 몰디브의 스포츠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긴바지에 히잡을 두른 여자배구팀도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카자흐스탄에 0-3(6:25/10:25/10:25)으로 완패했다. 출전 자격에 실력 제한이 없는 아시안게임이라 가능한 장면들이다. 범상치 않은 그들의 실력에 관중들은 재미를 느끼지만 정작 본인들은 의미를 찾는다. 21일 한국 대표팀과의 3차전이 끝난 뒤 이브라힘 할림 여자축구팀 감독은 “우리가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월드컵에도 나갔던 한국과의 경기는 선수들에게 좋은 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 실업 선수들인 한국 대표팀과 달리 몰디브 선수들은 공무원, 군인들이 대부분이다.

한국 야구 대표팀한테 0-15, 5회 콜드게임 패배를 당한 일본 출신 도쿠나가 마사오 타이 대표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족한 자신들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이겨줘서 고맙다는 뜻이다.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타이 역시 야구 변방이다. 수도 방콕 시내를 아무리 둘러봐도 야구와 관련된 광고나 상품들을 발견하긴 어렵다. 야구 선수는커녕 야구를 하는 인구도 100명 안팎이다. 한국 교민들로 구성된 사회인 야구인들이 ‘올스타팀’을 꾸려 타이 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렀을 정도다. 야구 대표팀 선수들 역시 대학생과 고등학생, 교사들이 주축이다. 수억원 연봉을 받는 선수들로 최정예를 꾸린 한국 야구 대표팀과 ‘만세’(평범한 플라이를 놓치는 일)가 더 익숙한 타이 대표팀의 한판. “이겨줘서 고맙다”는 타이 대표팀과 표면적으론 금메달, 내면적으론 병역혜택이 목표인 한국 대표팀의 한판. 역시 아시안게임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크리켓 불모지인 한국의 여자 크리켓 대표팀은 중국, 홍콩에 2연패를 당했다. 57-92로 진 2차전 홍콩전에선 첫 수비 때 92점을 내줬다. 46살 주부부터 전직 골프선수, 입시생까지 다양한 이력을 가진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패배를 맞이하는 이들의 자세도 몰디브의 여자축구, 타이의 야구와 다를 게 없다. “최선을 다해 행복하다.”

선수들 못지않게 인천아시안게임이 보람있는 사람들은 대회를 꾸려나가는 일꾼들이다. 그중에서도 이번 대회의 최대 ‘화두’는 ‘자봉’(자원봉사자의 줄임말)이다. 대회 초반 본분 대신 경기 관람에 집중하거나 경기를 마친 선수들과의 ‘셀카’ 찍기에 여념이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속출했다. 메달리스트를 불러 기자회견을 열면서 정작 메달리스트가 쓰는 언어를 통역할 담당자가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통역을 위해 모집한 자원봉사자들이 부실한 처우에 불만을 품고 100여명이 그만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조직위는 “자원봉사자에겐 교통비와 식비로 하루 1만7000원, 통역 전문 요원들에겐 하루 5만원 이상을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직위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기자회견장이나 믹스트존 등 ‘공식적인 장소’에서 셀카 찍는 걸 자제하라”고 전달하기도 했다.

3경기 38골 먹은 몰디브 축구
한국에 0-15로 진 타이 야구
내리 2연패 당한 한국 크리켓
“최선 다해 행복했다” 값진 패배
스포츠잔치다운 재미도 있지만

‘셀카’ 삼매경 빠진 자원봉사자
접속 안되는 대회 공식 누리집
안내 책자 하나 없는 경기장
온통 준비부실에 불만 폭주
북한 불러서 인공기는 왜 금지?

인천아시안게임이 준비 부족으로 ‘졸속’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19일에는 제조업체를 알 수 없을뿐더러 유통기한이 5일이나 지난 도시락이 운영요원 등에게 배달됐다. 연합뉴스, 박현철 기자
인천아시안게임이 준비 부족으로 ‘졸속’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19일에는 제조업체를 알 수 없을뿐더러 유통기한이 5일이나 지난 도시락이 운영요원 등에게 배달됐다. 연합뉴스, 박현철 기자
‘자봉’ 교육 안 시킨 조직위 문제

셀카 찍기가 숨쉬기만큼이나 자연스러운 20대 자원봉사자들에게 조직위의 자제 권고는 약발이 약하다. 23일 사이클 남자 옴니엄 결승전과 기자회견이 끝난 뒤 한국의 조호성을 기다리는 이들이 두 부류가 있었으니 한마디라도 더 듣고 싶은 일군의 기자들과 한컷이라도 더 찍고 싶은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공식 일정인 기자회견이 끝났으니 ‘우선권’이 특별히 어느 쪽에 있는 건 아니었다. 먼저 움직이는 게 임자인 ‘대원칙’에 따라 대표팀 마지막 경기를 치른 사이클 스타 조호성은 자원봉사자들이 선점했다. “위에서 저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다른 자원봉사자의 혼잣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공무원’도 아닌 자원봉사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들의 일탈이 이렇게 부각된 배경 중엔 셀카를 찍은 믹스트존이나 기자회견장이 기자들의 주된 활동 영역이라는 이유도 있다. 신성한 일터에서 놀이를 즐기는 그들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좀더 눈치 있게 기념 셀카를 찍었으면 이렇게 ‘무개념 자봉’으로 비난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죽했으면 자원한 ‘봉사자’들을 비난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은 말 그대로의 봉사를 성실히 하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의 준비가 부족했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불편을 겪는다면 그건 자원봉사자들도 마찬가지다. 경기장에 가보면 제대로 된 식당조차 없는 곳이 대부분이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경기장 한쪽 구석, 간이의자에 앉아 짜장면, 짬뽕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까칠한 기자들과 깐깐한 관중을 가장 먼저 상대하는 이들도 자원봉사자들이다. 기자가 까칠하기는 내국인이나 외국인이나 마찬가지여서 벽에 등을 기대고 있거나 하품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몰래 찍어 전송하는 사진기자들을 미디어센터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봉사자들을 모집하기만 하고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않은 조직위 탓이 가장 크다. 준비가 부족했다기보다 정성이 부족했다고 보는 게 더 현실에 가깝다. 경기 상황과 결과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대회 공식 누리집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접속이 안 됐다. 낮경기를 관람하러 온 관중은 땡볕에서 2~3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다. 크리켓이 열린 연희크리켓경기장엔 관중석에 차양막이 없이 일부 팬들이 기자석에 앉아 관람하다 이를 제지하는 진행요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인천국제벨로드롬에서 만난 한 사이클 팬은 “2010년 광저우 대회도 갔었는데 그땐 응원 도구도 주던데 여긴 아무것도 없다. 입장료도 냈는데 생수 한병쯤 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크리켓이나 사이클 등 진행 방식이 생소하고 복잡한 경기장을 찾은 관중을 위한 배려도 없었다. 유치원생들을 데리고 사이클 경기장을 찾은 한 교사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어디서부터 기록을 재는 거예요?”라고 묻기 바빴다. 순위 선정 방식이 세부 종목별로 차이가 큰 게 사이클의 특성 중 하나임에도 이를 설명하거나 안내해 놓은 책자 따위를 발견하긴 어려웠다. 곳곳에 배치된 자원봉사자들도 모르긴 마찬가지. 이틀에 걸쳐 6개 경기로 승부를 가리는 사이클 옴니엄의 세부 종목 중 하나를 “금메달이 걸린 결승전”이라고 설명하는 자원봉사자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게 조직위의 일관된 태도지만 이미 대회는 절반이 지났다. 조직위는 여러 불만과 문제점들이 터져나오자 24일부터 매일 오전 브리핑을 열어 사건 사고를 해명하고 기자들을 대상으로 ‘민원’을 접수 중이다. 이 브리핑 역시 변명으로 일관한다는 게 현장에 참석한 기자들의 반응이다. 문제 해결 방식도 거칠기 짝이 없다. 한 예로 셔틀버스 운전기사들의 난폭운전 사례가 늘어나자 25일 조직위 건물 앞 버스 승차장에 “몰지각한 기사들의 난폭운전을 신고해달라. 신고시 정직에 10만원의 과태료 처벌이 가능하다”고 적힌 안내장을 붙였다. 기자들에게 ‘난폭운전 사례를 알려달라’는 알림을 운전기사들이 가장 보기 쉬운 곳에다 붙여놓은 것이다. 빡빡한 셔틀버스 정차 시각을 맞춰야 하는 운전기사들의 사정은 알 바 아니라는 태도다. 취재 중 만난 한 셔틀버스 기사는 “퇴근 시간대인 오후 6~7시 사이엔 교통량이 많아 정해진 시각을 맞추기 어렵다. 운행허가증을 남발한 탓에 2부제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셔틀버스 운행 일정이나 정류장 위치 등에 대한 기사들의 불만에 “사장님은 우리가 지시하는 대로만 하시면 된다”며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일부 현장 운영요원들도 볼 수 있었다. ‘돈 받았으니 시키는 대로만 하는’ 셔틀버스 기사에게 대회의 주인의식을 기대하긴 어렵다.

인천아시안게임이 준비 부족으로 ‘졸속’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셔틀버스 정류장에는 난폭운전·욕설 논란이 있어 신고를 부탁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연합뉴스, 박현철 기자
인천아시안게임이 준비 부족으로 ‘졸속’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셔틀버스 정류장에는 난폭운전·욕설 논란이 있어 신고를 부탁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연합뉴스, 박현철 기자

북한 선수들 주변 둘러싸고 접촉 차단

잔치를 주최하는 주인장의 아량도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 대표팀을 불러놓고 우리 국민들에게 인공기를 흔들지 말라며 위협하는 검찰(정부)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북한 대표팀이 출전하는 경기장엔 국가정보원 직원부터 경찰서 보안과 형사, 시·구청 담당자까지 ‘국가 보안’이 지상과제인 각종 공무원들이 총출동해 있다. 이들은 관중석에서 동료들을 응원하는 북한 선수들 주변을 에워싸고 감시한다. 인공기를 흔들거나 북한 사람들과 얘기를 하면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 이적표현물 소지(이상 7조), 회합·통신(8조) 등의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경고로 읽힌다. 손님을 불러놓고 그들 주변에 장벽을 치는 주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고무·찬양,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 등을 규정한 국가보안법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인공기를 흔드는 것이 한반도기를 흔드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인공기를 흔드며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이 국가의 존립이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인지 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양학선-리세광(북한)의 남자 기계체조 도마 결승이 열렸던 25일 인천 남동체육관에 응원을 온 이아무개씨는 “한국 국민 어느 누구라도 양학선이 금메달, 리세광이 은메달을 따길 바랄 것이다. 이왕 북한 선수들을 초대한 마당인데 속좁게 경기장에서까지 인공기를 흔들지 못하게 하는 건 주인답지 못한 태도”라고 꼬집었다.

사정이 이러니 금메달을 딴 뒤에도 기자회견장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북한 선수들도 이해가 간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도 북 선수들은 단답형 대답만 짧게 하고 자리를 뜨거나 주체사상,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하는 고리타분한 소감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이 아닌 제3의 나라에서 열렸던 대회 때보다 더 까칠한 모습이다. 잔치에 초대된 손님의 칭찬받을 태도라고 할 순 없지만 손님을 불러놓고 손님 대접을 해주지 않는 주인장을 향한 항의처럼 들렸다.

인천/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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