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겨울올림픽 성화 점화자로 나선 김연아(오른쪽)가 9일 밤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정수현(왼쪽·북한), 박종아(가운데) 선수한테서 성화를 넘겨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결국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 하이라이트인 성화 점화자는 ‘피겨여왕’ 김연아(28·은퇴)였다. 하지만 점화자에게 전달하는 성화 최종 주자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22살 동갑내기 선수인 남쪽 박종아와 북쪽 정수현이었다.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쪽은 성화 점화 관련 내용을 일부 공개했지만, 최종 주자와 최종 점화자만큼은 마지막까지 ‘극비 사항’이었다.
개막식장에 나타나는 성화는 역대 겨울올림픽 한국인 최다 금메달에 빛나는 전이경(쇼트트랙)이 들었다. 이어 미국여자프로골프투어(LPGA) 커리어골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골프), 2002 한일 월드컵 4강의 주역 안정환을 거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박종아와 정수현이 이어받았다.
가파른 슬로프를 오를 수 있는 계단에 불이 들어왔고 두 선수는 사이좋게 성화를 들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가장 높은 곳에서 마지막 성화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대한민국이 낳은 불세출의 피겨 여왕 김연아였다. 철저히 베일에 싸였던 최종 점화자로 김연아가 나타나자 경기장에는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 김연아는 개최국 한국의 겨울스포츠 최고 스타이자, 평창올림픽 개최까지 내내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한국이 피겨 불모지였던 2007년부터 10여년간 국제빙상연맹(ISU) 그랑프리 파이널, 2010 밴쿠버겨울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를 휩쓴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다. 201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올림픽을 꿈꾸던 작은 소녀”라는 취지의 연설로 평창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큰 구실을 했고, 이후엔 평창 홍보대사로 활약했다.
성화대 앞 링크에 선 김연아는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채 피겨스케이트를 신고 연기를 펼쳤다. 이어 박종아·정수현 두 선수에게 성화를 건네받은 뒤, 곧바로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김연아의 손끝에서 번진 불꽃은 성화대에 옮겨붙었다. 다섯 손가락이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떠받친 모양의 성화대까지 순식간에 타올랐다. 1988년 10월2일 서울올림픽 폐막식에서 올림픽 성화가 꺼진 뒤 서른해 만에 다시 불꽃이 타오른 것이다.
이날 올림픽스타디움을 밝힌 성화는 지난해 10월24일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지 101일 만에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 도착했다. 국내에서 남북 인구(7500만명)를 상징하는 봉송자 7500명이 성화를 들고 전국 2018㎞를 달려 마침내 ‘달항아리’에 꺼지지 않는 열정과 도전의 불을 밝혔다.
평창/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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