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겨울올림픽 자원봉사자 정봉열(왼쪽부터)·박영희·임오선씨가 12일 오전 강릉 아이스아레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독일 방송에 평창올림픽 뉴스가 나올 때마다 너무 설레고 신이 나서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오고 싶었어요.”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 경기가 열리는 강릉 아이스아레나에는 독일에서 온 할머니 자원봉사자 삼총사가 있다. 파독 간호사로 한국을 떠나 독일에 정착한 박영희(68), 정봉열(66), 임오선(74)씨다. 지난해 인터넷을 통해 평창올림픽 자원봉사를 지원한 이들은 “1960~70년대 가난했던 고국 한국이 겨울올림픽을 치르게 된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빙상경기가 열리는 강릉이 고향인 박씨는 2016년부터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강릉올림픽파크의 공사 진행 상황을 사진으로 남기며 평창올림픽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고향 강릉에서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그는 빠듯한 근무 일정에 지칠 법도 하지만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 9일 피겨스케이팅 팀이벤트(단체전) 차준환 선수 경기를 가슴 졸이며 봤다. “자리를 지키느라 전광판으로 보는데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점프가 다소 불안하면 나도 모르게 ‘어머, 어쩌면 좋아’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3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는 정씨는 “독일과 비교해도 한국은 너무 잘사는 나라가 됐다”고 했다. 그는 “독일인 남편이 1976년 고향집에 처음 왔을 때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할 줄 몰라 식구들이 양쪽 벽에 손잡이를 만든다고 난리도 아니었다”며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감탄을 연발했다.
임씨는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자원봉사자로 꼭 참가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땐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 동포 중에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지도 몰랐다. 이젠 손자·손녀를 본 나이인데, 홀가분한 마음으로 강릉에 왔다”며 자부심과 만족감을 드러냈다.
강원도 태백시 철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정씨는 이번 대회 기간 동안 꼭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머나먼 독일 땅으로 떠나던 자신에게 한복을 빌려준 친구 손정윤씨다. 정씨는 “학교 다닐 때 연탄불이 꺼지면 새 연탄이 없어 라면을 못 끓여 먹고 생라면을 부숴 먹을 만큼 가난했다. 그러니 비싼 한복을 살 돈이 어디 있었겠느냐”며 “그 무렵 약혼식을 치른 정윤이가 독일 갈 때 입으라며 한복을 줬다”고 했다.
봉사활동을 하며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한국보다 독일에서 살아온 세월이 더 긴 이들은 대화 중간중간 독일어가 입에서 먼저 나온다. 이 때문에 선수들의 입·퇴장을 돕는 업무 외에 통역 봉사도 할 수 있길 바란다.
“아직 대회 초반이다 보니 진행이 원활하지 못한 점도 있죠. 그래도 힘든지 모르고 재밌게 일하고 있어요. 그 옛날 독일에서 어려운 시절도 버텼는데 이까짓거 못 참겠어요?” 파독 간호사 출신 삼총사 할머니의 봉사정신은 ‘금메달감’이었다.
글·사진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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