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여제’ 린지 본이 지난 3일(현지시각)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여자 활강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의 알파인 경기장은 평창 겨울올림픽이 끝나면 철거된다. 그러나 경기장은 사라져도 두 슈퍼스타의 라이벌 대결은 기억될 것이다. 주인공은 ‘스키여제’ 린지 본(34·미국)과 ‘스키요정’ 미케일라 시프린(23·미국)이다.
본은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여자 선수로는 역대 최고인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통산 81승을 이뤘다. 얀 잉에마르 스텐마르크(스웨덴)가 보유하고 있는 남녀 통합 최다 우승 기록(86승)도 눈앞에 두고 있다. 2004년 12월 킬다우라는 결혼 전 이름으로 처음 월드컵 여자 활강 부문에서 우승을 거머쥔 이후 10년 넘게 ‘스키여제’라는 이름을 지키고 있다. 반면 16살이던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한 시프린은 이듬해인 2012년 12월 스웨덴 오레에서 열린 월드컵 회전 종목에서 처음 우승을 차지한 이후 무서운 속도로 우승컵을 쓸어모으고 있는 차세대 여왕이다. 23살 나이에 벌써 월드컵 통산 41승을 거뒀다.
두 선수는 빼어난 실력과 미모를 모두 갖춘 탓에 곧잘 비교되곤 하지만 주력 종목이 다르다. 본은 활강과 슈퍼대회전 같은 스피드 종목의 1인자인 반면 시프린은 짧고 빠른 턴을 요구하는 회전과 대회전 등 기술 종목에서 1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동안 두 슈퍼스타가 스키계에 공존할 수 있었던 이유다.
미케일라 시프린이 지난달 9일(현지시각) 열린 국제스키연맹 월드컵 여자 회전 경기 뒤 시상대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는 맞대결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시프린이 최근 스피드 종목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시프린은 지난해 처음으로 활강에서도 월드컵 대회 정상에 오르며 올라운드 스키어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본 역시 전성기 시절 회전과 대회전 종목에서 6번 월드컵 정상에 오르는 등 기술 종목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냈다. 하지만 시프린이 등장하기 전 얘기다.
본은 지난 10년 동안 스키여제의 지위를 누렸지만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처음 출전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여자 활강 정상에 올랐지만 최전성기를 누리던 2014년 소치 올림픽 때는 대회 직전 발목 부상을 당해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그리고 평창은 본에게 마지막 올림픽이 된다. 최근 본은 평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해 정선 인근에서 복무를 했던 사실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본의 할아버지 돈 킬다우는 본에게 처음 스키를 가르쳐준 사람이다.
반면 시프린은 19살 나이에 첫 출전을 한 소치 대회에서 여자 회전 부문 금메달을 목에 걸며 자신의 올림픽 커리어를 순조롭게 시작했고, 이번 대회에서는 본도 이루지 못한 다관왕에 도전하고 있다. 현재까지 여자 스키에서는 야니차 코스텔리치(크로아티아)의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3관왕이 최다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