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000m 경기에 출전한 박승희가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박승희가 생애 마지막 올림픽 트랙을 힘차게 질주했다.
박승희(26·스포츠토토)에게 이번 대회는 3번째 올림픽이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 쇼트트랙 대표로 출전해 동메달 2개(1000m·1500m),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는 금메달 2개(1000m·3000m 계주), 동메달 1개(500m)를 땄다. 특히 우리나라 쇼트트랙의 취약 종목인 500m에서 1등으로 달리다 두번이나 넘어졌지만 끝까지 달려 ‘오뚝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올림픽 전 종목에서 메달을 따낸 최초의 여자 선수가 선수됐다.
쇼트트랙의 새로운 역사를 쓰며 정상에 오른 박승희는 소치올림픽이 열렸던 그해 여름, 돌연 롱트랙(스피드스케이팅)으로 방향 전환을 선언했다.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은퇴를 고려하다가 빙판에서의 마지막 도전을 결심한 것이다. 초등학생 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운동을 시작한 박승희는 당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막연하게 롱트랙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이걸 안 하고 은퇴를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걸 받아들일 수 있다면 도전해보라”는 언니(스피드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박승주)의 묵직한 조언을 듣고 2개월 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지만 박승희는 종목 전환 뒤 3개월 만인 2014년 10월 치러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1000m 기록 1분21초16. 이상화보다 2초 정도 뒤진 2위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도 꾸준한 성적을 내면서 평창올림픽 출전권까지 땄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두 종목에 걸쳐 올림픽 무대를 밟은 것은 남녀 통틀어 그가 처음이다.
박승희는 14일 저녁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000m 경기에서 1분16초11(16위)을 기록하며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펼쳤다. 요린 테르모르스(네덜란드)가 1분13초56의 올림픽 기록으로 우승했고 일본이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기대했던 고다이라 나오는 은메달, 다카기 미호가 동메달을 땄다.
1990년대 간판 스프린터였던 제갈성렬 <에스비에스>(SBS) 해설위원은 “박승희는 매우 밝고 대인관계도 좋으며 승부욕도 강해서 선수로서 좋은 자질을 모두 갖췄다. 종목을 바꿔 후배들을 이끌어준 점도 선배로서 매우 고맙다”고 했다. 박승희는 올림픽 이후 오랫동안 꿈꾸던 의상 디자이너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할 예정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화보] 빛나는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