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23일 밤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연장 끝에 승리를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강릉/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영미~ 영미~.”
경기 막판 김은정(28)이 ‘영미’를 부르는 목소리가 다급했다. 연장 접전 끝에 마지막 스톤이 버튼(하우스 정중앙부)에 붙지 않으면 결승 진출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영미 콜’에는 “영미야, 승부가 났다”는 뜻이 담겼다. ‘안경선배’ 김은정의 이날 경기 마지막 스톤은 느린 회전을 먹은 채 하우스 정중앙 ‘티’에 조용히 멈춰섰다.
23일 한국의 극적인 승리로 끝난 일본과의 여자컬링 준결승은 경기 전부터 한국의 승리를 점치는 예상이 많았다. 세계순위에서 한국(8위)이 일본(6위)보다 두 계단 아래이고 예선 맞대결에서도 졌지만, 한국은 일본에 일격을 당한 뒤 ‘패배를 모르는 팀’으로 달라졌다. 한국은 예선 8승1패로 조 1위에 올랐고, 특히 예선 마지막 3경기를 모조리 기권승으로 가져왔다. 출전국 가운데 최고인 경기당 8.3득점, 4.8실점의 완벽한 공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뒷공격(후공) 기회에서 차곡차곡 점수를 따내던 한국은 6-4로 앞선 7엔드에서 승부를 걸었다. 후공이던 한국은 마지막 공격에서 하우스 안에 두 팀 스톤을 하나도 남지 않게 하는 작전을 폈다. 이렇게 되면 무승부 엔드가 되지만 다음 8엔드, 10엔드 후공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다. 연장에 접어들 경우에도 후공으로 공격적인 경기를 치를 수 있다. 작전은 맞아떨어졌다. 한국은 8엔드 후공 기회에서 1점을 추가해 7-4로 앞섰다. 하지만 일본이 후공인 9엔드에서 2점을 얻으며 7-6으로 쫓겼다. 이어 후공 기회를 잡은 10엔드에서 뜻밖의 ‘스틸’을 당하면서 연장을 허락했지만, 이어진 11엔드에서 극적인 결승점을 뽑아 결승행 티켓을 따냈다.
이날 경기는 두 팀 ‘스킵’인 김은정과 후지사와 사쓰키의 ‘자존심 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 스킵은 팀을 이끄는 주장인 동시에 마지막 점수가 걸린 투구를 하는 선수로 일종의 ‘골게터’ 구실을 한다. 김은정은 앞선 경기에서 162개 스톤을 던져 투구 성공율 78%로 한국의 연승행진을 이끌어왔다. 후지사와(167개 투구·73%)보다 5%포인트가량 정교한 투구를 자랑했다. 김은정은 마지막 10엔드에서 치명적인 실수로 동점을 허용했지만, 11엔드에서 특유의 승부사 기질과 마법 같은 투구로 사상 첫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국민 영미’라는 별명을 얻은 김영미도 리드 주자로 상대 ‘가드’를 완벽히 제거하는 ‘수훈갑’ 구실을 했다. 김은정은 이번 대회에 앞서 “한국 컬링의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날도 완벽한 투구를 선보이며 은메달을 예약했다.
강릉/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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