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에 출전한 김보름이 24일 밤 강원도 강릉시 강릉스피드스케이트경기장에서 은메달을 확정지은 뒤 관중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 강릉/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메달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김보름(25·강원도청)은 24일 저녁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전에서 은메달을 딴 뒤 복받치는 울음을 숨기지 못했다. 올림픽 첫 메달을 땄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탓이다. 그는 경기 뒤 “메달은 생각하지 않았다. 죄송한 마음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고 밝혔다.
김보름의 은메달은 극한의 시련 속에서 일군 승리였다. 김보름은 19일 팀추월에서 팀 동료 노선영을 떨구고 먼저 들어왔다는 비난과, 이후 방송 인터뷰에서 노선영을 탓하는 듯한 발언과 웃는 모습이 오해를 사면서 큰 심적 부담을 받았다. 21일 팀추월 7~8위전에 나선 그에게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정신적으로 쇼크를 받았다. 매스스타트에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식음을 전폐한 그를 위해 선배들이 데리고 나가 식사를 챙겼고, 윤영길 교수 등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동원됐다. 끊어진 리듬을 끌어올리기 위해 코치진이 운동량을 조절했다. 결국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와 경기 시작 때부터 이름을 연호하며 응원한 팬들의 격려로 이날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2위로 들어올 수 있었다. 김보름은 “응원 소리가 들려 힘이 됐다. 응원 덕에 잘 달릴 수 있었다”고 했다.
김보름은 지난해 같은 장소에서 열린 매스스타트 세계대회에서는 이날 금메달을 딴 다카기 나나(26·일본)를 따돌리고 우승했다. 이후 부상으로 주춤했지만 정상급 기량을 유지해왔다. 대표팀의 한 선수는 “보름이가 평상시에도 웃는 것 때문에 선배들한테 혼난 적이 있다. 보름이만이 지닌 표정이 있는데 이번에 큰 문제가 됐다”고 했다. 텔레비전 화면이 대중에게 전달될 때의 영향력을 미처 생각 못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보름은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우호적이지 않은 주변 환경에서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낸 정신력은 돋보인다. 심신이 지친 김보름은 당분간 국제 대회에 나가기보다는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릉/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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