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앞쪽)이 13일 오전 강원도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남자 12.5㎞ 좌식 경기에서 사격하고 있다. 평창/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평창겨울패럴림픽 노르딕스키 종목에서 신의현(38)이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기며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이 종목에는 소리 없이 자신과의 싸움에 도전하고 있는 선수가 있다.
주인공은 이정민(34)이다. 그는 13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바이애슬론 남자 12.5㎞ 좌식 종목에 출전해 9위를 차지했다. 앞서 10일에는 바이애슬론 남자 7.5㎞ 좌식 11위, 11일에는 크로스컨트리스키 남자 15㎞ 좌식 종목에서 10위에 올랐다. 경기를 치르면서 11위→10위→9위로 한 계단씩 상승 중이다.
지난 11일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이정민은 “첫 경기에서 11위를 했고, 두번째 경기에선 10위를 했다”며 “매 경기마다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는데, 공교롭게도 13일 세번째 경기에서 9위를 차지했으니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정민은 5년 전까지 영국계 금융회사를 다니던 잘나가던 ‘금융맨’이었다. 하지만 높은 연봉과 안정된 직장을 마다하고 회사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정민은 10살 때 말초신경이 마비돼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희귀병(길랭바레 증후군)을 앓았다. 양쪽 다리 무릎 아래부터 마비가 된 그는 하지 장애인이 됐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뒤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명문 미시간주립대에서 광고학을 전공하고 현지 회사를 다니던 그는 2010년 1월 귀국해 금융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던 중 2013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조정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이거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버지와 4개월 동안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을 정도로 부모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회사를 박차고 나와 30살에 장애인 조정 대표팀에 발탁됐다. 1년 뒤 그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정 혼성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이정민이 13일 오전 강원도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남자 12.5㎞ 좌식 경기에서 질주하고 있다. 평창/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러다가 비시즌인 겨울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게 됐고 심폐 기능과 근지구력을 기를 수 있는 노르딕스키에 도전장을 냈다. 거친 물살은 새하얀 눈밭으로 바뀌었지만, 상체의 힘과 지구력을 요한다는 점에서 조정과 크로스컨트리는 닮았다. 이정민은 입문 한달 만에 열린 2015년 전국장애인겨울체육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따내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정민은 유창한 영어 실력 덕분에 2014년 소치 겨울패럴림픽에선 통역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다. 대표팀 안에서도 외국 코치진과 선수들 사이에 통역을 담당하고 있다. 경기가 끝난 뒤 믹스트존에서도 외국 기자들과 통역 없이 인터뷰한다. 그는 틈틈이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다니며 스포츠 관련 행정, 국제 협력을 공부했다. 장애인스포츠에서도 선수들의 경기력과 더불어 행정이나 협력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그의 최종 목표는 ‘스포츠 행정 전문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가 좌우명이라는 이정민의 도전은 계속 이어진다. 그는 14일 크로스컨트리 스프린트, 16일 바이애슬론 15㎞, 17일 크로스컨트리 7.5㎞에 출전한다.
평창/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