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환이 25일 중국 항저우 샤오산 린푸 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유도 남자 81kg급 결승에서 타지키스탄의 소몬 막메드베코프와 싸우고 있다. 항저우/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저 중국말로 해도 될까요.”
유도 결승전에서 져 기분이 가라앉았겠다는 예상은 빗나갔다.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쳤지만 2002년생 유도 스타 이준환(21·용인대)는 달랐다. “중국 팬들한테 인사하고 싶다”는 그는 미디어 중계 카메라 앞에서 능숙한 중국어로 인터뷰를 했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번역한 그의 말은 이렇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의 이준환입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25일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 유도 81㎏ 결승전에서 타지키스탄 선수한테 통한의 업어치기 되치기 절반패를 당한 이준환은 위축됨이 없었다. 마음은 쓰리겠지만, 밖으로 티를 내지 않고 ‘쿨’했다. 오히려 “금메달 땄으면 좋았겠지만, 파리올림픽 전초전이라 생각한다. 더 노력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준환은 한국 유도계에서 보기 드문 선수다. 지난해 대표선발전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했고, 국제대회에서 일본의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2년 연속 물리쳤다. 이날 4강전에서도 10분의 싸움에서 결국 또 다른 일본 선수를 따돌렸다.
고교 시절 연속 5연패를 안긴 선배를 5전6기 만에 따돌린 경험은 그의 끈질긴 투혼을 보여준다. 그것은 운동 경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튜브를 보고 피아노를 독학해 자연스러운 연주를 하는 그는 음악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푼다.
25일 저녁 중국 항저우 샤오산 린푸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유도 시상식에서 이준환(왼쪽)과 북한의 문성희가 은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항저우/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어려서 배운 중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카메라 앞에서는 당당하다. 이런 재능의 원천이 무엇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운동선수의 가치를 높이고 싶었다. 운동만 잘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잘 하는 ‘롤 모델’이 되고 싶었다”고 답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날 21살 동갑내기인 북한의 문성희도 여자 70㎏급에서 은메달을 딴 신세대다.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선수단끼리 대화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문성희나 같은 나이 또래의 북한 응원단과 접촉해보면 신세대의 발랄함을 느낄 수 있다.
유도는 매우 격렬한 운동이다. 보통 사람은 두툼한 옷깃을 제대로 잡기도 힘들다. 선수들은 뼈마디가 비틀어지는 듯한 고통의 길에서 그야말로 승부를 봐야 한다. 다만 승패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대한유도회 관계자는 “준환이는 전형적인 신세대다. 자유롭다. 하지만 최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좀 더 강한 멘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4강과 결승전에서 이준환은 기술을 걸 때 너무 정직하게 직진하거나 쉽게 들어가 상대방의 반격을 허용했다.
이에 대해 그는 “외국 선수 스타일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 훈련만으로는 안 된다. 변칙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세계 3위권인 신세대 유도 선수 이준환의 톡톡 튀는 발상이다. 이준환이 다양한 준비를 거쳐, 파리올림픽 무대에서 크게 포효했으면 좋겠다.
항저우/김창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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